박정희 목소리 배역 녹음 연습 중 뇌경색
2019년 9월 21일 서울 교보문고 앞에서 열린 아사탈북모자시민장례식 사회를 보는 성우 김영민 씨의 생전 모습. 앞은 탈북인들이 쓴 혈서다. 그는 2013년 월간 ‘창조문예’로 등단해 시집 ‘사랑 배달 왔습니다’를 펴낸 시인이다. |
지난 4월 20일 김영민(본명 김제용)씨로부터 온 카톡 문자다. 김씨는 “처음 제안을 받고 망설임 없이 수락을 하였다”면서 “저의 이런 작은 용기(?)가 대한민국 역사를 바로 알려 세우고 진정한 정의를 살릴 수만 있었으면 하는 희망과 바람으로 허현준 시공간 대표와 뜻을 같이하기로 하였다”고 그간 사정을 설명하며 박정희 배역을 맡은 걸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좋아했다.
그가 첫 번째 박정희 연설 배역은 ‘박정희 대통령 중공 핵실험 규탄 범국민 궐기대회 격려 연설’이고, 두 번째 연설은 ‘박정희 대통령 한일회담 타결에 대한 담화문 연설’이다. 각각 허현준 대표의 짧은 해설에 이어 김영민 성우의 초롱초롱하면서도 낯익은 박정희 음성이 흘러나온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카톡으로 안부를 주고 받던 대한민국 대표 성우이자 시인인 김영민 씨가 26일 황망히 우리 곁을 떠났다. 아직 청춘도 맘껏 누리기 전인 향년 61세다. 평소 지병인 당뇨를 앓았고, 당일은 혼자 작품 연습 중 뇌경색으로 쓰러져 응급조치를 받지 못한 채 영면해 주위 사람들을 더욱 슬프게 하고 있다.
김 씨를 알게 된 건 지난해 9월 21일 서울 교보문고 앞에서 열린 탈북인 한모씨김모군시민장례식 때였다. 서울에서 굶어 죽은 탈북인 모자의 시민장례식 사회를 봐달라는 당시 시민장례위원회 대변인을 맡고 있던 기자의 부탁에 “고인 모자 가시는 길 경건하고 엄숙하며 외롭지 않게 가시도록 저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며 흔쾌히 재능 기부를 했다.
아사탈북모녀대책위원회 김태희 총무가 수고비를 주겠다고 연락했을 때는 “총무 분이 저에게 전화해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기에 ‘가르쳐 주지 않는다’ 하고 끊은 다음 허광일 위원장께 전화해 나에게 돈을 주려면 몇 백만 원으로 안 될 테니, 꼭 주시려면 줬다 치고 후원금으로 하시라고 했다”고 농담조로 출연료를 사양했음을 알려오기도 했다. 그만큼 소탈하고 인권 현장과 애국 운동에 헌신적이었다.
김 씨는 그 후에도 종종 필자와 카톡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나의 재능이) 필요하면 무조건 불러주세요”하고 말했다. 김 씨는 지난해 9월 28일 역시 광화문에서 열린 ‘반 대한민국세력 축출, 나라지킴이고교연합 200여명 집단 삭발식’ 때도 사회를 보았다.
당시 그는 “알려진 신분으로 저의 개인을 생각해서는 절대 나서지 않아야 되겠지만 많이 망설이고 고민하다 옳은 일이라 여기고 결정한 것입니다. 죽기야 하겠습니까만은 두렵기는 합니다. 나선 이상 죽으면 죽으리라 하겠습니다. 응원하여 주십시오” 하고 문자에 남겼다.
지난해 추석 김영민 씨가 보내준 전자 우편. |
그런 그가 이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났다.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니 온 답변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케이 와이 엠 제이 와이 오 엔지 골뱅이 한메일 넷입니다. 꾸벅.”
부음 소식을 듣고 그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봤다. 언제나처럼 “반갑습니다. 김영민입니다” 하고 금세라도 김 씨의 목소리가 튀어 나올 것 같았지만 대답이 없다. 한참 신호음을 듣다 조용히 전화를 껐다.
고인은 방송작가를 하다 1983년 KBS 공채 성우 18기로 데뷔했다. 이후 1990년대 초부터 SBS ‘생방송 TV가요20’ ‘SBS 8 뉴스’, MBC ‘기인열전’ 등 지상파 방송 3사를 오가며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내레이션을 맡아 활약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외화와 애니메이션 더빙을 맡기도 했다. 특히 외화에서는 할리우드 배우 웨슬리 스나입스의 목소리를 전담했다.
지난해 4월에는 동료 성우들과 함께 오디오북 전문회사 ‘오디오북위즈’를 설립해 대표로 취임하기도 했다.
김 씨의 유족은 아내 최선우 씨와 두 딸인 김하람, 김예지, 그리고 아들 김단이 있다. 빈소는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학병원 3층 7호실이고, 발인은 29일 오전이다. (02)792-1634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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