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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불꽃 전개 대신 심리 묘사… 영화보다 느리게 달리는 ‘설국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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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드라마 ‘설국열차’에선 형사 출신 레이턴(다비드 디그스ㆍ왼쪽)과 열차 관리자 멜라니(제니퍼 코넬리)가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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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말하자면, 드라마 버전으로 다시 태어난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의 원작 영화에 비해 ‘너무 느리게’ 달린다.

지난 25일 동영상서비스업체(OTT)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설국열차’ 1ㆍ2화를 접한 시청자들은 “답답하다” “원작만 못하다”는 비판적 평가를 쏟아내고 있다. 넷플릭스 공개 이전 미국 케이블 채널(TNT)에서 방영됐을 때 혹평을 받은 것과 똑같다.

‘설국열차’의 드라마 버전은 원작 영화는 물론, 영화의 원작이었던 프랑스 만화책의 세계관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빙하기로 모든 것이 얼어버린 지구에서 기차에 탑승해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들 사이의 계급투쟁, 그리고 불평등 문제를 다룬다. 10회분 방영이 끝나면 시즌2 제작도 예고된 상태다. 아카데미상 4관왕으로 ‘기생충 신드롬’을 일으킨 봉 감독의 영화가 원작이란 점에서 시작 이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평가가 박한 이유는 무엇보다 드라마와 영화라는 장르 차이 때문으로 보인다. 압축적인 서사와 강렬한 상징들이 촘촘하게 자리잡은 영화에 비해 수십 시간 분량을 채워야 하는 드라마는 상대적으로 사건이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열차세계 균형을 유지하려는 지배층과 반란을 시도하는 ‘꼬리칸’ 사람들의 대결구도는 여전하지만, 불꽃 튀는 전개보다는 인물 묘사가 아직은 더 많다. 꼬리칸 사람들이 “계급 체계의 견고한 요새”를 무너트리는 순간에 다다르려면 시청자들의 인내심이 좀 더 필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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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에선 악독한 관리자 메이슨(틸다 스윈튼)의 면모가 돋보였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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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 배우들의 강렬함도 영화만 못하다. 틸다 스윈튼은 영화에서 기득권층의 파수꾼 역할을 했던 메이슨의 기이하고 악랄한 면모를 잘 살려냈지만, 드라마에서 같은 역할을 하는 멜라니(제니퍼 코넬리)는 이성적이고 차분한 인물이다. 꼬리칸 지도자인 레이턴(다비드 디그스) 역시 분노에 가득 찬 혁명가라기보다 인간미 넘치는 재주꾼처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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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설국열차’에 등장하는 ‘나이트카’ 객실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눈길을 끌었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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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도 있다. 사건보다 인물 묘사에 집중하다보니 풍부한 볼거리가 더해졌다는 주장이다. 드라마 도입부에는 지구가 얼어붙고 기차가 출발하는 과정이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표현됐다. 영화에는 간단히 처리되고 끝난 장면이다. 이 외에도 관능적인 나이트클럽 장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곡을 들으며 눈시울을 붉히는 노인 등 열차 안 풍경을 다양하게 비춰주는 장면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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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공개된 드라마 ‘설국열차’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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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다 드라마로서의 차별화 전략이 빛을 발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영화와 달리 드라마 ‘설국열차’에는 열차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살인사건이란 소재가 들어갔다. 드라마 1ㆍ2회를 보고 오랜 고전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떠오른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하는 이유다. 이 이야기가 ‘설국열차’의 핵심 주제인 불평등과 어떻게 접목되느냐는 아직은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다.

등장 배우들의 면면도 주목할 만하다. 김효정 영화평론가는 “드라마엔 남자 주인공을 비롯해 영화보다 더 많은 유색인종이 등장하는데, 미국의 오랜 쟁점인 인종 간 갈등을 함축하는 연출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드라마 ‘설국열차’는 느리다 해도, 이제 달리기 시작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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