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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범죄단체죄 적용 박사방 회원…구속됐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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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지능범죄 범죄단체조직죄 엄격 판단

중앙일보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중앙포토]


조주빈(25)이 운영한 '박사방'은 여성 성착취를 목적으로 생긴 조직된 범죄단체일까. 아니면 악질 성착취범 개개인의 범행이 누적된 텔레그램방일까. 서울중앙지법이 25일 범죄단체조직죄가 처음 적용된 박사방 유료회원 2명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이 논쟁에 불이 붙었다.



범죄단체조직죄 처음 적용돼 구속



닉네임 '오뎅'을 포함해 이날 구속된 이들은 아동·청소년 음란물 제작배포 혐의도 받고 있다. 범죄단체조직죄만이 영장 발부 사유였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검찰은 범죄단체조직죄가 적용된 박사방 회원이 구속된 첫번째 사례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구속된 2명과 함께 범죄단체조직죄로 입건한 다른 34명의 박사방 회원(조주빈 포함)에게도 같은 혐의 적용을 검토 중이기 때문이다. 검찰 측은 "이번 건은 범죄단체조직죄가 없었다면 영장발부를 확신할 수 없었던 사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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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및 범죄단체 가입 혐의로 '박사방' 가담 정도가 큰 유료회원이 2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뒤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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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조직폭력범을 엄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범죄단체조직죄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보면 검찰이 안심하긴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은 보이스피싱 조직을 제외한 다른 지능범죄에 대해선 범죄단체조직죄 적용을 엄격히 판단해왔다. 죄의 구성 요건이 까다롭고 피고인의 형량이 대폭 올라가서다.



방이 폭파돼도 조주빈과 움직였던 회원들



경찰과 검찰이 조주빈을 포함한 박사방 회원 36명을 특정해 범죄단체조직죄로 입건한 것은 이들이 텔레그램 방이 폭파될 때마다 한 몸처럼 움직였기 때문이다. 조주빈이 박사방을 새로 만들 때마다 이들은 텔레그램방 링크 등을 공유했다고 한다. 25일 구속된 유료회원 2명도 단순 가담을 넘은 핵심 박사방 회원들이었다.

대법원은 범죄단체조직 및 집단죄의 구성 요건으로 ▶다수의 결합체 ▶최소한의 통솔체계 ▶공범을 구별할 일정한 체계 또는 구조 등을 요구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공언한대로 박사방 회원들에게 범죄단체조직죄가 적용된다면 해당 법령에 따라 종범들도 조주빈의 공범으로 묶여 형량이 올라갈 수 있다. 법무부와 검찰, 경찰은 이를 통해 성착취범죄를 엄단할 수 있다고 본다. 수사권 조정으로 갈등을 벌이는 검경이 이 사건에선 긴밀히 협력하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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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20일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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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판단은 왜 엄격하나



법원은 역설적이지만 이런 이유로 지능범죄에 대한 범죄단체조직죄 적용을 엄격히 판단해왔다. 조직폭력배의 경우 살인과 폭력을 저지른 말단 조직원을 통해 보스를 잡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지능범죄의 경우 일반 가담자들에게도 총책의 형량이 적용되는 역작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법원이 범죄단체조직죄 적용을 인정한 것도 2017년이 처음이었다.

당시 대법원은 보이스피싱으로 53억원을 챙긴 조직원 36명에게 각각 징역 1년∼20년을 확정했다. 나머지 조직원 43명도 1·2심에서 징역 10월∼6년이 확정됐다. 법원은 보이스피싱의 경우 점조직일지라도 피고인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범행에 성공할 수 있는 구조라 판단했다.



법원 "모두가 역할해 범행이 이뤄져야"



박사방 유료회원들이 범죄단체조직죄로 기소될 경우 법원이 이와 같은 판단을 할지는 미지수다. 검찰은 2018년 42억원대의 중고차 사기를 저지른 중고차 판매조직원 30여명에게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했다. 보이스피싱이 아닌 중고차 사기 판매조직에 이 범죄단체조직죄가 적용된 것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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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박사방'에서 운영자 조주빈을 도와 대화방 운영 및 관리에 관여한 공범 '부따' 강훈이 지난달 17일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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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심에서 범죄단체조직죄는 무죄가 나왔다. 검찰은 이후 항소심에서 단체보다 기준이 낮은 범죄집단조직죄를 적용했지만 이 역시도 무죄가 나왔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이번 사건은 보이스피싱과 달리 피고인 각자가 역할을 다해야 범행에 성공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며 "(피고인들이)일을 그만두고자 할 때도 별다른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박사방의 경우 사무실 등 유형의 조직이 있었던 중고차 사기조직과 달리 텔레그램방이란 무형의 조직이라 범죄단체조직죄 적용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김정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는 "박사방 회원에게 범죄단체조직죄가 적용될 경우 현재 판례로는 재판부마다 판단이 다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태인·김수민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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