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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추가경정예산 편성

나라빚 현기증…한국만 치솟는 부채비율에 수퍼추경 덮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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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5일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어 ‘전시(戰時) 재정’을 주문했다. “전시 재정을 편성한다는 각오로 정부의 재정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며 “불을 끌 때도 초기에 충분한 물을 부어야 빠른 진화로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같은 회의에서 한 ‘적극 재정’보다 훨씬 강도 높은 발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제 위기와 전쟁을 치르고 있으니 나랏돈을 쏟아부으란 얘기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말을 보탰다. “위기의 조기 극복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 선제 대응을 위한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 차원에서 편성했던 2009년 28조원 규모 ‘수퍼’ 추가경정예산을 뛰어넘는 40조~50조원 안팎 3차 추경을 예고하는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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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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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곳간은 이를 버텨낼 수 있을까. 상황은 좋지 않다. 재정 악화의 ‘바퀴’는 이미 돌아가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단골처럼 내놓는 설명이 ‘다른 나라보다 부채 비율이 낮다’는 얘기다. 국제통화기금(IMF) 지난달 6일 발간한 재정 점검(Fiscal Monitor)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 평균은 신흥국 53.2%, 선진국 105.2%다. 미국 달러화를 기준으로 한 한국의 부채 비율은 지난해 40.7%로 평균 아래다. 나라빚 규모가 한국 경제 전체가 1년간 벌어들인 돈의 40%가량이란 의미다.

하지만 평균의 함정이 여기에 도사리고 있다. 선진국 통계는 일본(237.4%), 그리스(179.2%), 포르투갈(117.7%), 미국(109.0%) 등 재정위기를 겪고 있거나 기축통화국(자국 통화가 국제 금융 거래와 결제에 통용되는 나라)이라 부채 비율에 신경을 덜 써도 되는 나라까지 포함한다.

신흥국 통계도 마찬가지다. 베네수엘라(232.8%), 앙골라(109.8%), 브라질(89.5%), 아르헨티나(88.7%)처럼 부채 문제가 심각한 국가가 들어가 있다. 평균 수치, 일부 국가 통계만 가지고는 한국 재정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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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채 비율 변화.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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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직시하려면 속도를 봐야 한다. 한국의 재정 잠식 속도는 빨라도 너무 빠르다. IMF ‘재정 점검’ 통계에 따르면 2011년 30.3%였던 한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불과 8년 만인 지난해 40% 선을 뛰어넘었다. 올해와 내년 전망은 더 어둡다. 46.2%, 49.2%다.

한국의 재정 악화 속도가 얼마나 빨라졌는지는 IMF 전망에 잘 드러난다. 2011년만 해도 한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30.3%)은 노르웨이(29.8%), 뉴질랜드(34.7%)와 비슷했다. 72개국 가운데 노르웨이가 52위, 한국이 53위, 뉴질랜드가 54위를 나란히 차지했다. 순위가 아래일수록 국가부채 비율이 낮고 재정 건전성이 좋다는 의미다.

IMF 예상을 기준으로 노르웨이ㆍ뉴질랜드의 국가부채 비율 수치 자체는 올라가긴 하지만 순위는 50위 중반에서 큰 변화가 없다. 한국만 나쁜 쪽으로 질주 중이다. 2011년 72개국 중 53번째였던 한국 국가부채 비율은 지난해 48위로 처음 40위권에 들었고, 2021년 45위를 기록할 전망이다. 불과 10년 사이 8계단 뛰어올라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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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가부채 비율 순위 변화.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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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저도 12조2000억원 규모 2차 추경, 40조원 이상이 예상되는 3차 추경안은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여기에 문 대통령이 주문한 ‘전시 재정’ 편성으로 국가부채 비율 50% 돌파는 기정사실화 했다. 수퍼 추경 편성과 세수(세금 수입) 악화로 60% 돌파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GDP 대비 40~50%로 잡았던 한국 국가부채 비율 마지노선도 의미가 없어졌다.

문 대통령도 이런 지적을 의식했다. 이날 회의에서 “재정 건전성 악화를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면서도 “지금의 심각한 위기 국면에선 충분한 재정 투입을 통해 빨리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성장률을 높여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는, 좀 더 긴 호흡의 재정 투자 선순환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길게 볼 때 오히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악화를 막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이런 설명은 낙관론에 가깝다. 재정은 물가나 실업 통계와 다르다. 한번 나빠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매년 나가야 하는 필수 지출 비중이 높아서다. 빚이 빚을 부르는 ‘눈덩이’ 효과도 무시 못 한다. 코로나19 위기가 이제 막 시작한 시점에서 한번 사용하면 되돌릴 수 없는 재정 건전성 카드를 너무 빨리 소모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에선 나라별로 쫙 펼쳐 횡단 비교해 재정 건전성이 양호하다는 논리를 펼치는데 사실 부채 비율 상승 속도를 봐야 한다”며 “신용카드 쓰듯이 재정 카드를 미리 써버리면 ‘이 국가는 불안하고 발행하는 통화도 약해질 것’이라며 외국인 투자가 빠져나가고 기업까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종=조현숙ㆍ임성빈 기자, 윤성민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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