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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이슈 인공위성과 우주탐사

‘허블 우주망원경의 어머니’ 암흑 에너지 실체 탐사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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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우주망원경 기획·제작 참여’ 로먼 박사 이름 딴 새 망원경 준비

허블의 100배 성능…우주 구성 물질 68% ‘미지의 존재’ 규명 기대

경향신문

낸시 그레이스 로먼 박사가 기획과 제작을 주도했던 허블우주망원경. 1990년 발사돼 30년째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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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150만㎞ 떨어진 우주에 떠 있는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 상상도. ‘암흑 에너지’ 등을 연구하기 위해 2020년대 발사가 추진되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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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개봉한 미국 영화 <콘택트>는 외계 지적생명체가 보낸 메시지를 지구인이 지상의 전파망원경으로 수신해 의미를 알아내고, 메시지 속에 들어 있던 설계도대로 순간이동장치를 제작해 외계 생명체와 접촉한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천문학자이며 유명한 과학 대중화 운동가인 칼 세이건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영화를 보면 주인공인 앨리 애로위(조디 포스터)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밤하늘의 별을 관측하며 천문학에 대한 호기심을 키웠지만,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아버지를 떠나보낸 아픔을 간직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런 성장 배경을 토대로 천문학적 이론으로 무장한 앨리는 지적생명체에 대한 탐색 작업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외계에서 날아든 신호를 수신하는 데 성공한다. 앨리가 성공한 건 지칠 줄 모르는 끈기와 뚝심 때문이다. 인간 외에 지적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가정을 부인하며 자신을 과학자로 보지 않는 외부의 눈길에 아랑곳없이 할 일을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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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자신의 NASA 사무실에서 연구 중인 낸시 그레이스 로먼 박사. NAS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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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항공우주국(NASA)에는 실제로 인류가 이전엔 생각지도 못했던 천문학적 업적을 남긴 여성이 있다. 2018년 세상을 떠난 낸시 그레이스 로먼이 바로 그다. 1925년생인 로먼은 시카고대에서 천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우주시대가 막 개막하기 시작한 1959년 NASA에 합류했다. 당시만 해도 여성이 과학자가 되는 걸 백안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했지만, 그는 NASA의 첫 수석천문학자에 오를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로먼을 가리켜 과학계에선 ‘허블 우주망원경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1990년 발사된 사상 첫 우주망원경인 허블망원경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데 깊숙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허블망원경은 ‘망원경은 지상에 설치한다’는 공식을 바꿔버린 혁신적인 발명품이다. 고도 약 600㎞에서 지구 궤도를 돌면서 대기의 흐름과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별을 관측하는 허블망원경은 모두 5차례 정비를 거쳐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시광선과 근적외선 등으로 우주를 촬영하고 있는데, 우리가 보아온 성운이나 성단 사진 대부분이 허블망원경의 작품이다. 100억년에서 200억년 정도로 헐렁하게 추정되던 우주의 나이를 ‘137억년’으로 정확히 특정한 것도 허블망원경 덕분이다.

허블망원경의 탄생을 주도했고, 이젠 전설 속 인물이 된 로먼이 1년 반 만에 부활하게 됐다. 장소는 바로 우주다. NASA는 지난주 로먼의 이름을 현재 개발 중인 차세대 우주망원경 ‘WFIRST’의 정식 명칭으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새롭게 명명된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은 주로 원적외선을 이용해 우주를 관측한다. 이 때문에 성간 물질에 가린 천체도 탐지할 수 있다. 지구가 빤히 보이는 저궤도를 떠다니는 허블망원경과는 달리 지구에서 150만㎞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운영된다. 지구와 달 사이의 4배가 넘는 원거리다.

이번 새 우주망원경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탑재된 관측기술이 애초 과학 연구용이 아니었다는 이력이다.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름 2.4m짜리 반사경 등 핵심 부품이 스파이 위성용으로 개발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2년 미국 정보기관인 국가정찰국(NRO)이 NASA에 일종의 기술 이전을 한 것이다. 안보 목적으로 적국의 지상을 향하려던 렌즈가 우주로 방향을 튼 셈이다.

스파이 위성 기술을 토대로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은 허블 우주망원경의 관측 범위보다 100배나 넓은 우주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광각 촬영 기능을 갖췄다. 허블이 우주의 영역을 잘게 나눠 100번을 찍어야 겨우 만들 수 있던 사진을 낸시 그레이스 로먼으로는 한 번에 만들 수 있다.

이런 우수한 성능을 총동원해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은 ‘암흑 에너지(Dark energy)’의 실체를 규명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암흑 에너지는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 가운데 68%를 차지하는 미지의 존재다. 과학계는 암흑 에너지가 중력과 반대되는 힘을 갖고 있고, 이 힘이 우주 팽창을 가속화한다고 보고 있다. 물질을 서로 끌어당기는 중력과 달리 서로 밀어내는 ‘척력’을 지닌 것이다. 이상한 힘이지만, 실체는 무엇이고 왜 이런 힘이 생기는지는 오리무중이다.

짐 브라이덴스틴 NASA 국장은 “NASA가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생산적인 우주망원경을 운영하게 된 건 로먼의 리더십과 식견 때문”이라며 “허블 우주망원경의 후계자가 될 망원경으로 이보다 적절한 이름을 찾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NASA는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을 대략 10년 안에 발사할 예정이다. 인류의 시야를 확장한 허블 우주망원경 기획자의 이름을 딴 또 다른 우주망원경이 어떤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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