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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연극 리뷰] `렁스`, 100분을 꽉 채운 배우들의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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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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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치면 연극 '렁스'는 여백 가득한 동양화다. 나뭇잎 조금 놓은, 좌우로 긴 흰 박스가 무대의 전부다. 조명은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어둠을 비추는 본연의 기능에 가장 충실하다. 음악도 필요할 때만 잠깐씩 나온다.

'남자'와 '여자'를 맡은 두 배우가 여백 바깥을 칠하는 붓 역할이다. 서로를 향해 속사포로 대사를 퍼붓다가도, 이따금 정적 속에 마주 보며 긴장감을 고조한다. 퇴장·암전 한 번 없이 이렇게 100분을 채운다.

장면과 장소 전환은 외부 장치 없이 이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이뤄진다. 다소 헐거운 이음새를 메우는 건 관객 몫이다. 작품은 애써 전부를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절제함으로써 상상하게 만든다. 연출가 박소영은 영국 작가 던컨 맥밀란의 희곡을 이토록 동양적으로 구현해냈다.

배우 입장에선 '모 아니면 도'다. 모든 눈동자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가운데 날것의 연기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이 매혹적이면서도 망설여지는 자리에 김동완·이동하·성두섭이 '남자' 역으로, 이진희·곽선영은 '여자' 역으로 나섰다.

곽선영의 '여자'는 내내 왕성하다. 막대한 대사량을 남김 없이 소화해 또박또박 내뱉는다. 말미의 손가락 욕설 장면에선 압도하는 에너지가 있다. 이 거대한 힘을 김동완의 '남자'는 능숙하게 받아낸다. 오래 함께해 온 것처럼 합이 잘 맞는다. 미리 듣지 않았다면 그룹 '신화' 멤버 김동완의 연극 데뷔작인 줄 알아채지 못했겠다.

제목은 허파를 뜻하고 포스터는 이를 나뭇가지로 표현했지만, 작품은 환경 보호 외에도 여러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재활용은 하는데 생수는 사 마시고, 짧은 거리는 자전거를 타도 음악을 듣기 위해 차 시동을 켜두는 남녀의 모습은 우리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불완전함을 알고 나아지려는 점에서 커플은 더 훌륭하다. 진보를 이끄는 건 '새 생명'이다. 결혼하고 아기를 낳으며 여자와 남자는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끊임없이 대화한다. 극은 그 과정을 따뜻하게 그려낸다. 다 보고 나면 결혼하고 싶어질 수 있다. 오는 7월 5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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