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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윤훈열의 공감과 소통] 전염병이 바꾼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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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꿈이 있었다. 환갑을 넘기면 여러 나라를 돌면서 해외에서 몇 달씩 살아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지구적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겪으며 '그 꿈이 과연 앞으로 이뤄질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오랫동안 꿔왔던 꿈을 지워야 하는가! 인간의 이동이 바이러스란 변수에 의해 세계적으로 제한되는 특이한 상황이 됐다.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며 갑갑한 도심 속 집에 갇혀 지내다 보니 강아지를 벗 삼아 산책이라도 즐길 수 있는 뜰이 딸린 시골집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이 새로이 생겼다. '그런 집이 있다면 이런 상황이 아니라도 평소에 적당한 거리 두기가 가능하고 이렇게 갑갑하지 않겠지'라는 꿈으로 자연스레 바뀌어 가고 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이전에 좋아 보였던 것이 나빠지고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던 일들이 좋아졌다. 사람이 붐비고 땅값 집값이 비싼 대도시가 하찮아졌고 평소에 눈길도 두지 않았던 한가롭고 조용한 장소가 눈에 들어온다.

코로나19는 내 개인적 소박한 가치의 변화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의 근원인 집중화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사회적 동물인 우리 인간은 모여 살면서 협력을 통해 발전을 이뤄왔다. 사람이 모여 도시가 형성되고 문명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그렇게 도시는 인류 문명 자체를 의미하게 됐고 또 모임을 뜻하게 됐다. 우리는 협력을 통해 진화하고, '모임'을 통해 발전해 왔다. 더 모이고 더 집중하면서 문명은 고도화된 것이다.

뉴욕, 홍콩, 서울 등 글로벌 대도시의 인구밀도와 그 땅값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모여 있고 그것을 통한 부가가치를 얼마나 창출해왔는지 알 수 있다. 집중을 통해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효율을 강조하면서 집중화가 가속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집중화와 효율성은 새로운 전염병의 출현으로 그 중대한 가치가 흔들리고 있다. 집중화는 우리 인간만의 장점이 아니고 바이러스와 세균에도 자신의 영역을 순식간에 확산시킬 수 있는 좋은 생태환경이 돼버렸다. 더 집약돼 있을수록 전염력은 더 빨라지고, 새로운 전염병이 창궐할 수 있는 물 좋은 매장이 돼버린 것이다.

과거 우리 인류에게 닥쳐왔던 세기적 팬데믹 현상은 우리 인간에게 새로운 삶의 가치와 환경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고 도전과 응전을 하면서 인류는 발전을 거듭하게 된 것이다. 흑사병이 르네상스 발현의 원동력이 됐고, 스페인 점령군의 천연두는 아메리카의 '천년제국'을 몰락시켰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은 자본집약 발전으로 미국 경제 도약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전염병은 인류를 한때 절망 속으로 빠뜨리지만, 그것을 극복하면서 인류는 자신들의 삶과 사회구조를 통째로 바꾸기도 했다.

권력의 독점적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분권화와 민주주의라는 훌륭한 제도와 솔루션을 만들었듯이, 코로나19 위기도 우리가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삶의 가치와 문화를 잉태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커다란 재앙이나 어려움을 겪고 난 뒤에는 또 새로운 문화가 자연스럽게 발생하게 마련이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대책으로 새롭게 등장할 사회 현상에 대한 대안이 강구돼야 한다. 벌써 시대정신처럼 돼버린 '4차 산업혁명'의 이면 속 부작용, 비대면과 온라인 사용 정착으로 훼손된 인간의 가치 손상과 소외 현상도 주목해야 한다.

바이러스라는 공공의 적을 지혜롭게 대처하면서 그로 인해 돌발된 새로운 문화에 대한 틀을 우리 스스로 정립시켜야 한다. 또 국가, 종교, 문화, 이념을 뛰어넘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연대의식을 갖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생각도 삶의 형식도 바뀌어야 할 때다. 집중에서 분산으로, 독점에서 분권으로, 양극화에서 연대로 생활과 사고의 틀을 바꿔 코로나19에 대한 위기 극복이 인류 발전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깨닫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윤훈열 정동 동아시아 예술제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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