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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영상]기억에 갇힌 40년, 청년들의 5·18은 안녕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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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세대 청년 4명이 말하는 5·18 민주화 운동

"5·18을 낯설어하는 건 당연하지만, 무관심한 건 아냐"

"무조건 무겁게 다가가는 건 오히려 역효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5·18 떠올렸으면"

전문가들, "후세대가 공감하고 성찰하는 분위기 만들어줘야"

CBS노컷뉴스 차민지 기자


역사를 흔히 기억과의 '투쟁'이라고 말한다. 기억은 켜켜이 쌓인 세월만큼 희미해지고, 누군가는 잊히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5·18 민주화 운동도 마찬가지다. '그날을 겪은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의 기억은 차이가 있다. 이제는 머리마저 희끗희끗해진 항쟁의 주역들은 청년들에게서 그들의 비극이 잊힌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을 내비친다.

1980년 5월 18일 광주로부터 40년의 세월만큼 멀어진 2020년 지금, 5·18은 정말 희미해졌을까. CBS노컷뉴스가 만나본 청년들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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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사옥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요즘. 광주. 생각>의 저자 오지윤씨. (사진=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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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5·18에 무관심하다고요? 편견이죠"

사람들은 청년들이 5·18에 무관심할 것이라고 말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소리다. 교과서로만 5·18을 배운 청년 세대들이 5·18을 낯설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5·18에 대한 갈증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2030세대 10명을 인터뷰해 <요즘. 광주. 생각.>이라는 책을 쓴 오지윤(31)씨가 만난 10명의 청년은 제각기 다양한 시각으로 5·18을 기리고 또 기억하고 있었다.

광주의 7년 차(책 인터뷰가 이뤄진2018년 당시) 초등학교 교사 서희와 민지씨는 아이들에게 잔혹했다는 사건 자체보다 당시 사람들이 '왜' 싸웠고,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를 가르치기 위해 노력한다. 도시연구가 준영씨는 5·18이 정치적인 의미로 박제되지 않고 다양한 가치로 승화되기를 바랐다.

오씨는 "'잊힌다'는 건 더 이상 이야기할 소재로 오르내리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면서 "하지만, 책을 쓰면서 청년들이 여전히 5·18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수민(전남대 사학·24)씨는 지난해까지 문화재청이 주관하는 '청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킴이' 광주 지역 대표인 '주먹밥'팀 팀장으로 활동했다. 지난 한 해 동안 3명의 팀원과 함께 중·고교생 등을 대상으로 5·18 알리기 활동에 나섰던 이씨는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배지' 등 굿즈를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광주나 전남 지역에서만 굿즈를 구매하실 줄 알았어요. 그런데 배송지가 제주·부산·서울·대구 등 너무 다양하더라고요. 최근에는 부산에 사시는 분이 5·18 국립민주묘지에 와서 인스타그램에 굿즈 인증샷을 남기신 걸 보고 놀랐어요."

'5·18이 더 이상 광주 안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구나'를 깨닫게 된 이 경험은 이씨가 포기하지 않고 각종 역사 알리기 활동을 이어갈 원동력이 됐다. '주먹밥'팀의 활동은 지난해 12월을 기점으로 끝났지만, 이씨가 역사 콘텐츠 제작동아리 '광희'의 팀장으로 활동을 이어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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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를 방문한 '5·18NOW' 팀원들 (사진=5·18NO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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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5·18에 관심을 갖게된 각자의 '계기'

물론, 청년들이 어느 날 갑자기 5·18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니다. 5·18을 떠올리게 하는 각자의 '계기'가 있었다.

문화기획단 '5·18 NOW'의 팀원으로 활동 중인 유지원(24)씨에게는 '홍콩 민주주의 시위'가 촉매였다. 청년 11명이 모여 만들어진 '5·18 NOW'는 최근 국립5·18민주묘지 시내버스 정류장 2곳의 부동산 매매 광고를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5·18 40주년 기념 이미지로 바꿔 화제가 된 바 있다.

인천 출신으로 광주에 연고가 없던 유씨는 "홍콩 시위에 참여하고 연대하면서 광주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됐다"며 "정부와 국가가 폭력적으로 시민들을 진압하고 억압했던 일이 40년 전에 우리나라에도 똑같이 벌어졌구나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5·18 청춘서포터스 전 대학생 총회장 박경록(20)씨에게는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옛 전남도청 앞에서 우연히 만난 '어머님'(5·18민주화운동 기념재단 소속 김정숙 해설사)의 역할이 컸다. 당시 불의의 사고로 친구를 잃었던 박씨에게 '5·18'과 광주 시민들의 희생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박씨는 "당시 한겨울이었는데도 어머님께서 너무 열심히 오월의 진실에 대해서 설명해주셨다"며 "그 이후 (5·18을 알리겠다는) 어머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등학교 시절 역사 동아리와 건축 동아리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활동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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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전남대 축제에서 부스를 운영하고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지킴이 '주먹밥'팀(사진=주먹밥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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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적인 '엄숙주의'말고,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청년들은 5·18과 광주를 너무 무겁게만 접근하는 건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5·18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들이 5·18에 스스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려면 다양한 가치관과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5·18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청년 세대들이 엽서를 만들고, 오르골을 판매하는 등 '문화적'으로 접근하는 이유도 같다.

유씨는 "청년 세대가 5·18을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을 하고, 조금씩 주변 사람들한테 전파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5·18을 너무 무겁게만 받아들이지 않도록 카카오톡 프로필 바꾸기, 관련 홈페이지 만들기 등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5·18을 직접 경험한 세대들은 눈을 감아도 그날이 상상이 간다지만, 청년 세대들은 영화를 찾아보지 않는 이상 그 당시를 공감하기가 어렵다"며 "미래세대에 5·18이라는 자산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5.18 기록물 등을 바탕으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이를 통해 공감을 얻어내는게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오씨는 5·18을 같이 떠올리려는 '분위기'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오씨는 "광주 안에는 5·18이 민주화의 상징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다 보면, 청년들도 5·18에 대해 '무조건 이건 해야 하는구나' 같은 기본 전제가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오씨는 "역사라는 것이 미래세대, 청년 세대가 느끼지는 못하지만, 촛불혁명처럼 같이 경험한 역사도 있다"며 "촛불혁명과 5·18의 공통점인 저항정신과 공동체 의식 등을 연계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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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은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 추모객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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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원래 '미래세대'의 몫…'공감'할 여지 줘야

청년들의 고언(苦言)에 전문가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5·18에 대해 후세대가 공감하고 성찰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김정인 교수는 "원래 과거사는 당사자들이 나와서 교육을 하는 게 아니다"며 "후세대들이 '당시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출발점에서 시작해 민주주의와 인권의 차원에서 풀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우리나라 5·18 같은 경우는 왜곡도 많고 논쟁도 많다 보니, 젊은 세대들이 스스로 성찰하고 자신의 '간접경험'으로 받아들여가면서 공감하는 문화가 성숙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지난 18일 진행된 '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의 한 장면을 꼽았다. 김 교수는 "기념식에 젊은 학생들이 나와서 청년 세대들이 느끼는 5·18의 의미를 발표했는데, 50대가 써준 원고를 읽는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이런 방식이 아니라 10대의 정서, 20대의 정서 등 세대별로 다르게 5·18을 접근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려대학교 사학과 최호근 교수는 "5·18에 대한 세대적 접점을 넓혀가야 한다"며 "문화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드라마 '홀로코스트'의 예를 들었다. 1978년 미국에서 방영된 홀로코스트는 메릴 스트립을 주연으로 내세웠고 대성공을 거뒀다. 최 교수는 "드라마 홀로코스트가 대성공을 거두고, 이후에 영화 쉰들러 리스트가 나오면서 독일의 역사적 문제에 대한 전 세계적인 인식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다행히 이 첫 단추 역할을 한국에서는 택시 운전사가 해냈다"며 "청년 세대가 역사에 무관심할 수도, 냉담할 수도 있는 세대인 만큼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연성화시키는 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40년 밖에 안된 광주를 벌써 그만두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아요. 역사는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제대로 볼 수 있잖아요. 고려시대, 조선시대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도 있는 걸요."(이수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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