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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최초증언] 505보안대 대공과장 서의남 "전두환, 광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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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저희는 지난주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군과 가장 가까이에 대치했던 11공수 62대대, 이제원 당시 대대장의 인터뷰를 보도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제원 전 대대장 발언엔 전두환 신군부의 주장을 뒤집는 부분도 적지 않았습니다. 오늘(18일) JTBC는 당시 광주에 있던 또 다른 장교의 말을 보도합니다. '전두환 보안사' 직속인 광주 505보안대 대공수사과장이었던 서의남 씨입니다. 광주 지역 방첩 업무를 총괄했던 서씨는 전씨가 당시에 광주에 왔었다고 얘기했습니다.

[서의남/당시 505보안대 대공수사과장 : 헬기로 왔을 거야. (광주) 전교사에 바로 그 연병장에 내렸어. 그러니까 파악을 하러 내려오신 거야. 파악을 하러.]

이 내용 먼저, 봉지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신군부가 작성한 88년 광주 5·18 청문회 대비 문건입니다.

보안사 출신 서의남 씨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5.18과 관련해 비중 있는 인물임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서씨는 전두환 씨가 광주 방문을 부정한 걸 의아해했습니다.

[서의남/당시 505보안대 대공수사과장 : (자긴 광주에 간 적이 없다고 한 이유가 뭘까요?) 전두환이가? 전두환이 광주에 안 왔다 그래?]

그러면서 전씨의 광주 방문을 구체적으로 말했습니다.

[서의남/당시 505보안대 대공수사과장 : 광주사태가 좀 더 심각해지고 그러니까 파악을 하러 내려오신 거야, 파악을. (누구 만나고 갔습니까 와서?) 전교사령관을 만나러 왔었다니까, 전교사령관을. (그때 이재우 (505보안)부대장도 갔습니까?) 갔지.]

전교사는 계엄사령관이 정점인 '공식 라인'인데, 지휘라인이 아닌 보안사령관이 상황이 심각한 시점에 광주를 방문했단 겁니다.

[서의남/당시 505보안대 대공수사과장 : (그러면 뭐 타고 왔습니까? 거기까지.) 헬기로 왔을 거야. 전교사에 바로 그 연병장에 내렸어.]

이후 주요 지휘관 회의가 열렸다고 합니다.

[서의남/당시 505보안대 대공수사과장 : 전두환이가 (전교)사령관을 만나러 들어갈 때 못 들어갔어 내가. 못 들어가고 바깥에 있었어. (회의할 때 밖에서 대기하셨어요?) 응. 연병장에서 대기했어. (그럼 뭐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네요?) 그렇지.]

서씨는 시점이 21일인지, 22일인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심각한 상황 이후'였단 말은 21일 집단발포 이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서 김용장 전 미 정보여단 요원과 공군 보안부대장 운전병 오원기 씨는 집단 발포 21일 당일 오전을 지목했습니다.

며칠 후 서씨는 본인이 검찰에 제출했던 문건을 보여주자 갑자기 "이젠 모르겠다"며 말을 바꿨습니다.

[서의남/당시 505보안대 대공수사과장 : (전두환이 온 사실 없다?) 아니 온 사실이 있는지 없는지 그건 난 아직 몰라. 이제는 몰라. (기억이 안 나시는 거예요?) 기억이 안 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모르겠다고.]

자필진술서엔 자신은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을 본 적 없다'고 써있습니다.

5.18 진상규명조사위 관계자는 "인터뷰가 구체적라 의미가 있다"며 "말을 바꾼 경위까지 포함해 대면조사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앵커]

서의남 씨는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직접 목격했다고 JTBC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헬기 조종사를 불러서 사격의 경위도 물었다고 했습니다. 당시 보안부대 중령 서씨의 말은 매우 구체적이었습니다.

박준우 기자입니다.

[기자]

서의남 씨는 전남도청 2층에서 헬기사격 장면을 직접 봤다고 말했습니다.

[서의남/당시 505보안대 대공수사과장 : (헬기 사격은 아예 없었다 그러던데?) 아니야, 그건 거짓말이야. 헬기 사격 있었어. (쏘는 걸요?) 응, 서로 교전하는 걸 봤다니까 나는.]

무기에 대해서도 얘기했습니다.

[서의남/당시 505보안대 대공수사과장 : (뭘로 쐈는지는 혹시 아세요?) 기관단총으로 쏜 거 같아.]

당시 상황을 자세히 묘사합니다.

[서의남/당시 505보안대 대공수사과장 : 도청 건너편에 3층인가 4층 건물이 있어. 헬기가 그 3~4층 건물로 이렇게 도니까 그 건물에서 막 총을 쏘더라고. 총을 쏘니까 헬기에서 쏘더라고.]

헬기 조종사를 직접 불러 경위를 물었다고도 했습니다.

[서의남/당시 505보안대 대공수사과장 : (헬기) 조종사들한테 불러다가 물어봤어. 누구 지시 받고 하냐 그러니까 아니다 이거야.]

서씨는 조종사들이 우발적, 자위적 사격을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말했습니다.

[서의남/당시 505보안대 대공수사과장 : (헬기 사격이) 여러 번 있었어. (여러 번?) 그 건물에서 막 헬기도 사격을 했다니까? 사격을 하니까 그 헬기에서 맞고 가만 있겠어? 거기다 대고 사격을 한 거지.]

사격 자체를 전면 부인한 기존의 전두환 신군부 주장과 다릅니다.

[서의남/당시 505보안대 대공수사과장 : (왜 안 남아 있죠 기록에?) 상황일지에 안 나와 있어? 헬기사격이 나와 있을 텐데?]

전두환 씨는 회고록에서 헬기 사격을 봤다는 고 조비오 신부의 말은 파렴치한 거짓말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이재의/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위원 : 당시 조종사들은 그걸 끝까지 부인하고 있는데, 모든 정보의 핵심에 있었던 사람이 서의남이란 사람입니다.]

서씨 발언이 구체적이어서, 향후 전두환 씨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앵커]

또 서의남 씨는 '북한군 개입설'은 근거 없는 거짓말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서씨는 광주 지역의 방첩 업무 책임자였습니다. 당시 광주에서 북한군이나 간첩의 움직임은 없었단 겁니다. 지만원 씨를 콕 집어서 엉터리 같은 소릴 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임지수 기자입니다.

[기자]

'5.18은 북한 특수군 600명과 계엄군의 싸움이었다.' 40년간 광주 시민을 괴롭힌 '북한군 개입설'입니다.

일부 극우 인사들은 당시 광주 시민을 '북한군 광수'로 몰아 가짜 뉴스를 만들어왔습니다.

[김영훈/5·18 민주유공자유족회 회장 : 너무 황당해요. 두 번 죽이는 거죠, 유가족을. 살아 있는 유족까지도 우리는 희생자가 된 거죠.]

광주의 방첩 업무를 책임졌던 서의남 당시 대공수사과장은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

[서의남/당시 505보안대 대공수사과장 : (북한 특수군은 전혀 없었나?) 없어. 그거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엉터리 같은 소리. (북한군 침투설 주장 어떻게 보시는지?) 지만원이가 그렇게 얘길 하면 확실한 근거를 대라 이거야. (북한 특수군 600명이 와서…) 그건 거짓말이야. 전혀 거짓말이야. 북한군 간첩을 잡은 사실이 없어.]

지난 2월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해 온 지만원 씨가 명예훼손 혐의로 징역 2년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법원 판결 이후에도 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5.18 가짜뉴스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군 개입설'은 지난주 본격 조사를 시작한 5.18 진상규명조사위의 주요 규명 과제이기도 합니다.

[이명자/오월어머니집 관장 : (5·18 역사 왜곡) 처벌을 위한 법안이 좀 만들어져가지고. 중죄인으로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이번만큼은 정말 저희들이 좀 한이 좀 풀어지듯 했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지금 이 시각 5.18 민주광장에 있는 분수대의 모습입니다. 1980년 5월, 분수대에 둘러선 시민들은 억압에 대한 저항을 분출했고 미래를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모았습니다. 꼭 40년이 지난 5월, 분수대를 찾은 시민들은 그때의 마음에 공감하고 가슴에 담고 있습니다. 옛 전남도청을 찾은 사람 가운데는 계엄군 장교도 있습니다. 80년에 5월 현장을 지휘한 채수봉 씨입니다. 당시 중위였습니다. 40년 만에 옛 전남도청을 찾은 채씨는 JTBC에 그때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유선의 기자입니다.

[기자]

80년 5월 11공수 63대대 10지대장이던 채수봉 씨는 21일 집단발포 전날 밤을 전남도청에서 보냈습니다.

[채수봉/당시 11공수 63대대 10지대장 : 20일 마지막 보루로서 여기서 아침까지 먹고 나오게 됐습니다.]

채씨는 계엄군 맨 앞줄에 배치됐습니다.

[채수봉/당시 11공수 63대대 10지대장 : 62대대가 왼쪽을 맡았고, 63대대 우리 팀만 62대대의 오른쪽을 맡았던…]

시민들이 김밥을 줬다는 이제원 62대대장의 말과 거의 같은 이야기도 했습니다.

[채수봉/당시 11공수 63대대 10지대장 : (시민들이) 빵을 던져주고 농담도 하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계엄군 권용운 일병이 숨지면서 상황은 급변합니다.

전두환 씨는 회고록에서 권 일병이 시민군 장갑차에 숨졌다고 했지만, 채씨와 이 대대장은 모두 계엄군 장갑차에 숨졌다고 했습니다.

[채수봉/당시 11공수 63대대 10지대장 : 우리 장갑차에 우리 병사가 희생을 당했다는 건 바로 그 즉시에. 그렇게 됐다는 얘기는 직접 들었습니다.]

[이제원/당시 11공수 62대대장 : 우리 장갑차에 그 하나가 깔려 죽은 건 아마 사실일 거예요.]

이후 계엄군 쪽에서 사격이 시작됐다는 겁니다.

[채수봉/당시 11공수 63대대 10지대장 : 이 뒤쪽에서 저지선이 뚫리면서 트럭이 들어오니까, 시민들이 들어오니까 (계엄군의) 공포가 나간 겁니다.]

하지만 시민을 조준해서 쏜 건 아니었고 일제 사격을 한 것도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채수봉/당시 11공수 63대대 10지대장 : 애국가가 끝나자마자 모든 군인이 실탄을 장전해서 무릎쏴 자세로 일시에 사격을 했다, 여기에는 동의하기가 좀 어렵네요.]

이후 계엄군 장갑차 사격을 봤다고 했습니다.

[채수봉/당시 11공수 63대대 10지대장 : (APC 장갑차에서 기관총을 쐈던 상황은) 저희 측 왼쪽에 APC가 한 대 서 있었어요. 그러면서 APC에서 캘리버 50으로 사격을 목격했습니다.]

40년 만에 찾은 광주에서 애도를 표했습니다.

[채수봉/당시 11공수 63대대 10지대장 : 애도를 표하고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고 기록이 사실에 근거해 기록될 수 있도록…]

봉지욱 기자 , 박준우 기자 , 임지수 기자 , 전건구, 구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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