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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담아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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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우리말 쓰기

연재ㅣ1회 박물관 속 우리말


박물관이 살아 있으려면 관람자와 전시물 사이에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져야 하겠지요. ‘출입금지’와 ‘입장불가’보다 더 친절한 표현은 없을까요? 어떻게 띄어 읽어야 할지 도통 알 수 없는 ‘금제사리내호’보다 더 알기 쉬운 말로 써주면 안 될까요?

‘언어감수성을 높이는 것이 진정한 소통의 시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언어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무심히 쓰던 표현이 적절했는지 함께 고민해보면 어떨까요? 박물관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공익광고’도 비슷한 실정입니다. 오늘부터 16차례에 걸쳐 ‘쉬운 우리말 쓰기’를 이어가는 까닭입니다.


지난 주말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다. 코로나19로 한동안 문을 닫았던 박물관이 지난 6일부터 다시 문을 열어 반가운 마음으로 가보았다.

1층 관람 안내소 쪽에 꽂혀 있는 박물관 안내(리플릿)를 읽어보았다. 안내가 자세하고 친절하다. 다만 ‘박물관 관람 에티켓’이라고 쓰인 부분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 플래시·삼각대를 이용한 사진촬영, 흡연, 음식물 반입 및 애완동물의 출입을 금지합니다.

→플래시·삼각대를 이용한 사진 촬영과 흡연은 삼가시기 바랍니다. 음식물과 반려동물은 들여오실 수 없습니다.

* 바퀴달린 신발을 신은 고객은 전시관 입장이 불가합니다.

→바퀴 달린 신발을 신은 분은 전시관에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애완동물’이라는 말에는 동물을 장난감처럼 여긴다는 뜻이 들어 있다. 생명을 가볍게 보는 시선이 담긴 말이라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반려동물’로 바꿔 쓰자고 이야기해온 지 오래다. 반려동물이라는 말 속에는 사람과 동물이 평등하다는 정서가 깔려 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라기보다, 모든 생명 중에 사람도 속해 있고 다 함께 존중받아야 한다는 마음. 이 마음이 집에서 기르는 동물의 이름을 바꿨다. 반려동물이라고 이르는 순간부터 개나 고양이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된다.

한겨레

지난 6일 다시 문을 연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마스크를 쓴 관람객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렇게 말에는 마음이 담긴다. 말에 담기는 마음을 예민하게 느끼는 것을 ‘언어 감수성’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사람이 얼추 1천만 명을 넘었다고 들었다. 그들은 동물을 장난감 삼아 기르는 사람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것보다 동물을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생명체로 존중하는 사람으로 인정해주기를 바라지 않을까.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뿐만 아니라 키우지 않는 사람도 생명을 그런 마음으로 대해주기를 바라지 않을까.

‘금지합니다’ ‘불가합니다’는 딱 잘라 안 된다고 하는 투인데, 대화를 단절하는 느낌이 든다. 조금 길어지기는 하지만 ‘삼가시기 바랍니다’라고 하면 정중하게 부탁하는 느낌이 든다. 지시나 명령의 말투는 반발을 불러오지만, 부드럽게 부탁하는 말에 어깃장을 놓거나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말의 뜻만큼이나 말을 전달하는 방법과 태도가 중요하다.

예문에 든 ‘반입’ ‘출입’ ‘입장’ ‘고객’은 모두 일본식 한자말이다. 같은 뜻을 가진 더 쉽고 뜻 전달이 잘되는 우리말이 있는데 굳이 이런 말을 써야 할까. 이런 말이 모두가 꺼리는 ‘공공기관에서 쓰는 일본말 잔재’다. 공무원들은 공공기관에서 예전부터 이런 말을 써왔으니 별생각 없이 습관처럼 쓸 수 있다. 하지만 공공기관에서 쓰는 말은 권위를 갖게 되므로, 표준이 되어 민간에서도 널리 따라 쓰게 된다. 공공 도서관 같은 곳에서 ‘음식물 반입 금지’라고 쓰니 민간 도서관에서도 따라 쓰고, 이 표현이 하나의 관용문처럼 굳어져 시민들이 일상으로 이용하는 일반 카페에서조차 ‘음식물 반입은 안 됩니다’ 같은 표현을 쓰고 있다.

‘고객’은 가게에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을 최대한 높여서 부르는 말로 쓰이고 있다. 박물관은 물건을 사고파는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라, 문화생활을 누리기 위해 가는 문화생활공간이다. 고객은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고객 대신 ‘손님’ ‘분’ ‘시민’을 쓸 수 있다. ‘손님’은 집에 오시는 분, 가게에 물건 사러 온 사람,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참석하러 온 사람, 공연이나 전시회를 구경하러 온 사람, 영업 행위를 하는 교통편을 이용하는 사람도 모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공기관에서 시민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말하려고 애쓰다 보면 예전의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말투를 무심히 쓰는 일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신정숙 교열부 기자 bom1@hani.co.kr, 감수 상명대학교 국어문화원 특임교수 김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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