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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문 대통령 참배 이연 열사, 불의에 끝까지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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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 상흔 여전, 육체적·정신적 고통 호소

뉴시스

[광주=뉴시스]박영태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제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인 18일 광주 북구 5·18 민주묘지 제2묘역에서 고(故) 이연 씨 묘를 참배하고 있다. 고인은 전남대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0년 5월 27일 YMCA 회관에서 계엄군과 총격전 중 체포되어 전신 구타를 당했다. 2020.05.18.since1999@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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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 신대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직후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돼 있는 이연 열사를 참배하면서 이 열사의 행적에도 관심이 쏠린다.

18일 이연 열사의 유족 등에 따르면, 1961년 전남 해남에서 6남2녀 중 일곱째로 태어난 이 열사는 유년기부터 배려심이 깊고 모든 일에 신중한 편이었다.

다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다. 고등학생 때 부당한 교육 행위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쓰고 자퇴했다.

검정고시를 거쳐 1980년 전남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같은 해 5월 31사단에서 병영 집체 교육을 받던 중 훈련 중지로 귀가하자마자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정권 찬탈용으로 광주를 무력 진압한 전두환 신군부 세력의 만행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청년·학생들의 투쟁본부였던 광주 금남로 YWCA를 거점으로 5·18의 실체를 알리는 가두방송, 대자보 작성을 했다.

신군부가 상무충전작전을 펼친 5월 27일 새벽 YWCA에서 마지막까지 투쟁하다가 계엄군에게 붙잡혔다. 상무대로 연행돼 마구 구타를 당했다.

이 열사는 맏형이 유신 체제 아래 저항운동을 촉발시켰다는 이유로 남들보다 더한 고문을 당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의로운 시민을 폭도로 몰아간 계엄사의 끼워맞추기식 수사에 강하게 저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거짓 자백을 하느니 죽어버리겠다. 보고 듣고 느낀 진실만을 말하겠다"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고 항쟁 동료들은 설명했다.

그는 1982년 서강대 사학과에 입학했고 1991년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국가폭력이 남긴 상흔은 컸다.

5·18 당시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후 항쟁 때 숨진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국가폭력의 트라우마로 힘들어했다.

그는 2019년 3월 아내와 함께 심리 상담을 전공하는 모 교육대학원에 입학했으나 같은 해 7월 급작스런 지병으로 숨졌다.

직접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을 치료해주겠다는 그의 마지막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민주화를 열망한 그의 의로움은 남아 있다.

뉴시스

[광주=뉴시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최후 항전에 참여했던 이연 열사. (사진 = 가족 제공) 2020.05.18.


이 열사의 가족은 "40년이 흘렀지만 5·18은 끝나지 않았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정신적 외상을 치료하기 위한 체계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 열사는 5·18구속부상자회 서울지부에서 활동하며 5·18 글짓기 대회를 주관하기도 했다. 그의 가족 8남매 중 6명이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감언론 뉴시스 sdhdream@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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