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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머슴이라고? 경비원들 갑질 참지말라" 강북구 경비원 유족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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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들 폭언 폭행 시달려 정신적 질환도

용역 통해 계약직…고용 불안해 신고 못 해 악순환 지속

유족, 갑질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최희석법' 추진

아시아경제

'단지 내 주차 문제'로 시작된 한 주민과의 갈등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아파트 경비원 A씨가 근무하던 서울 강북구의 아파트 초소 앞에 지난 11일 주민들의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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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참지 마세요, 절대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주민 갑질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원 고(故) 최희석 씨 유족은 갑질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당부했다.


유족은 "다른 경비원들도 이렇게 갑질을 많이 당하는 걸로 알고 있다"면서 "욕설은 물론 부당한 지시 등 갑질이 일상이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폭언 폭행 등 갑질을 당하면 주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응해달라"고 당부했다.


주민과 경찰 등에 따르면 경비원 최 씨는 지난 10일 오전 2시께 자신의 집 주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자신이 억울하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주민들에 따르면 최 씨는 지난달 21일 오전 11시께 아파트 단지 내 주차 문제로 50대 주민과 시비가 붙었다. 이 주민은 최 씨를 폭행한 뒤 관리사무소로 끌고 가 경비 일을 그만두라고 요구했다.


최 씨는 결국 이튿날 상해 등 혐의로 주민을 경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최 씨는 고소인 조사를 받기 전에 극단적 선택으로 숨졌다. 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주민은 '코뼈가 부러질 정도로 폭행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씨 상황과 같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물론 폭행 등 갑질에 시달리는 경비원들은 상당하다. 그러나 대부분 신분이 용역업체 등을 통한 계약직이다 보니, 해고될까 두려워 제대로 신고조차 할 수 없다.


일부 관리사무소는 아예 대놓고 참으라고 하는 경우도 있어, 갑질에 시달리는 경비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정부는 부당한 지시를 할 수 없는 규정을 마련했지만, 이번 사건과 같이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유족은 갑질 방지법인 고인의 이름을 딴 '최희석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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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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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먹고 따귀 맞고 폭언·폭행 갑질 당하는 경비원들


2018년 11월 서울 서대문구 한 아파트 경비원이 입주민에게 폭행당해 숨졌다. 술에 취한 입주민이 층간 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던 경비원을 무차별 폭행해 사망하게 했다.


같은 해 7월 경기도 화성시 한 아파트에 근무하는 70대 경비원은 입주민에게 주차장 차단기를 곧바로 올려주지 않고 "입주민 차량으로 등록해야 차단기가 열린다"고 설명했다가 "경비면 경비답게 짖어야지, 아무 때나 짖느냐. 주인한테도 짖느냐, 개가"라는 폭언을 듣고 폭행을 당해 전치 2주의 진단을 받았다.


2014년에는 입주민 폭언에 시달린 50대 아파트 경비원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또 2016년에는 광주의 한 아파트 입주민이 조용히 통화해달라고 요구한 경비원의 얼굴에 담뱃불을 갖다 대 2도 화상을 입힌 일도 있었다.


사실상 경비원들은 입주민들의 갑질은 물론 폭언·폭행 등에 시달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피해도 상당하다.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아파트 경비원 10명 중 3명(35.1%)은 주민들로부터 폭언을 들은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정신적·언어적 폭력은 심각한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심지어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를 지속해서 당하는 경우 불안장애·우울증 등의 원인이 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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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연합뉴스]


◆ 용역업체 통해 계약직 신분…밉보이면 해고될까 신고 못 해


그러나 경비원들은 주민들의 갖은 갑질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아파트 경비원들 대부분은 용역업체 등에 의해 간접적으로 고용되는 계약직이다. 고용이 불안정하다 보니, 인권침해 상황에서 신고는 생각도 할 수 없다.


'아파트 노동자 지원방안 연구'(서울노동권익센터/2015)에 따르면 서울지역 아파트 중 관리회사에 위탁 관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곳은 85.9%에 달했다. 아파트 관리업무를 위탁해서 관리하는 경우 위탁계약기간은 평균 1.3년인 것으로 나타났다.


용역업체가 교체될 때 경비원 고용상황을 보면 재고용 51.2%, 전원 재고용 25.9%, 계약해지 17.1%, 전원 계약해지는 5.8%로 조사됐다.


생계가 달린 경비원들이 주민들의 갖은 폭언과 폭행을 참고 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해 4월 한국주택관리연구원이 아파트 근로자 272명을 조사한 결과 근로자의 26.5%가 입주민으로부터 부당한 지시를 받았다고 응답했다. 이들 중 72.3%가 인사 불이익 등 보복 때문에 부당한 지시에 따라야 했다.


또한 '아파트 경비원 직업 건강 가이드라인'(안전보건공단이/2016년)에 따르면 아파트 경비원 대부분이 생계비 마련과 노후대책 목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아 폭언이나 폭행을 당해도 참는 경우가 많았다. 또 관리사무실이나 용역업체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참으라고 하는 경우가 있어,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때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2017년 공동주택관리법을 개정해 입주자 등 관리 주체가 경비원에게 업무 외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명령을 하지 못하게 규정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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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서울 노원구 상계백병원에 마련된 故 최희석 씨 빈소에서 유족이 갑질 방지법인 '최희석 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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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경비원들을 대상으로 한 인격 무시나 욕설 등 갑질은 여전히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아예 이런 갑질 자체를 끊을 수 있는 보다 강력한 법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족은 고인의 이름을 딴 이른바 '최희석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유족은 "이 법은 우리 사회 사각지대에서 멸시받고 무시 받는 직종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법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법으로 인해 식당에서는 더는 반말을 하는 손님을 볼 수 없고, 서로 존중하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면서 "최희석법 통과를 위해 국회서 기자회견도 할 수 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할 것이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 더는 갑질로 울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고통받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그동안 갑질 방지법 등 많이 있었지만, 제대로 된 법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번 경비원 일도 처음이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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