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기업들이 모여 있는 자카르타 중심부 SCBD의 한 코워킹 스페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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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아시아-55] 2019년 5월 말쯤의 기억이다. 은행, 증권회사 등 금융기관이 밀집된 자카르타를 대표하는 상업지구인 SCBD(Sudirman Central Business District)의 한 호텔에서 지인과 오랜만에 점심 식사를 같이했다. 라마단(Ramadan) 금식 기간을 맞아 평소보다 한가했던 레스토랑 밖을 내다보면서 지인이 문득 이런 말을 꺼냈다. "이렇게 앉아 있으면 여기가 뉴욕 맨해튼인지, 서울 여의도인지, 자카르타 금융 중심지인지 알 수가 없죠?"
그랬다. 다국적 기업들의 간판이 즐비한 고층 빌딩과 넉넉하고 깔끔하게 정돈된 도로, 세련된 옷차림의 젊은 직장인들 모습은 여느 세계적 대도시의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2018년 8~9월 56년 만의 하계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면서 대대적으로 정비된 시내 탐린(Thamrin) 지역 대로변을 지나칠 때는 싱가포르에 와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2010년대 들어서 연평균 5%를 웃도는 건실한 성장세를 지속해 온 인도네시아 수도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이는 수준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아세안(ASEAN) 회원국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달라진 위상에 다름 아니었다.
2020년 상반기 아세안은 전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그동안과는 사뭇 달라진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지구촌을 강타한 코로나19 사태의 충격을 피해 가지 못하면서 거침없던 기세가 한풀 꺾였기 때문이다. 실제 아세안 최대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인도네시아의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은 분기별로는 18년 만의 최저인 2.97%를 기록했다. 이 밖에 싱가포르에는 5월 14일 기준 이미 역내에서 가장 많은 2만6098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아시아의 강소국' 명성에 금이 갔다. 각국 정부가 잇달아 경기 부양책을 내놓았지만, 열악한 공공 의료 시스템과 아세안 국내총생산(GDP)의 25%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일용직 노동자와 가사 도우미, 노점상 등 비공식 경제 부문이 우려감을 키운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10년대 중반 이래 눈부신 발전 가도를 달리며 아세안의 디지털 사회로 전환을 이끌었던 스타트업계에도 먹구름이 드리우기는 마찬가지다. 2019년 하반기 무렵부터 수익성 이슈가 불거진 가운데,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비즈니스가 위축되고 신규 투자도 급감하면서 생존 위기에 내몰린 현지 스타트업들의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고 있다. 매년 동남아시아 지역 스타트업 25~30곳에 투자해 온 세계 최대 벤처캐피털 세콰이어캐피털의 고위 임원이 "2020년에는 아무도 성장을 바라보지 않는다"며 포트폴리오 스타트업들이 기본에 충실할 것을 거듭 당부할 정도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위치한 아세안 사무국(ASEAN Secretariat) 신청사 내에 전시된 그림. 아세안의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로 불리는 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네시아·태국·필리핀 외무장관 5명이 1967년 8월 8일 태국 방콕에서 창립 선언문에 서명하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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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을 필요는 없다. 숱한 고난을 이겨내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한 걸음씩 전진해 온 아세안의 저력이 역사적으로 주목받아왔기 때문이다. 전 인도네시아 외교 장관이자 유엔 주재 인도네시아 상주대표를 역임한 마르티 나탈레가와는 "동남아는 인종, 종교 등 측면에서 항상 다양성을 표방해 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코로나19 사태가 차츰 안정화되면 아세안 구성원들은 '사람 중심(Human-Oriented)' 가치로 재무장하고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의 앞날을 다시금 설계해 나갈 것이다. 다양성 사회를 지탱하는 합의와 상호 존중 정신을 바탕으로 외부의 시각에는 더디게 비춰져 온 2025년 아세안공동체(ASEAN Community) 비전 실현에 한층 속도를 내기 위해서다. 더불어 번영하는 5년 뒤, 10년 뒤를 향해 한국과 아세안이 손잡고 힘차게 달려가기를 기대해 본다.
[방정환 YTeams 파트너 / '왜 세계는 인도네시아에 주목하는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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