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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5·18 계엄군 대대장의 증언 ③"주남마을 버스, 여학생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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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도 진압' 왜곡한 주남마을 버스 학살 사건

대대장도 알고 있었다, 폭도가 아닌 여고생을…



[앵커]

당시 광주에선 시민이 탄 버스가 공격받는 일도 벌어집니다. 계엄군은 '폭도 진압 사건'으로 기록했습니다. 이 작전을 수행한 게 바로 이제원 씨가 대대장인 62대대였습니다. 하지만 이제원 씨는 버스에 탄 사람들을 폭도로만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유일한 생존자인 여고생도 기억을 하고 있었습니다. JTBC가 만난 생존자의 진술과도 일치하는 부분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지은 기자입니다.

[기자]

1980년 5월 23일.

계엄군은 광주 주남마을 앞길을 가던 버스에 무차별 사격을 가했습니다.

18명 중 15명이 즉사했고, 3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이 중 2명은 인근 뒷산에서 총살을 당했습니다.

총상을 입은 여고생 홍금숙 씨만 살아남았습니다.

[홍금숙/'주남마을 사건' 생존자 : 막 콩 튀듯이 총 소리가 다다다다 하니까, 차 바닥에 내장이 쫙 퍼져서. (옆에 여고생은) 엉덩이 아파 죽겠다고 하는데 엉덩이가 없다는 거야 만지니까.]

총격을 가한 건 11공수여단 62대대 소속 부대원들이었습니다.

신군부는 이를 폭도를 진압한 사건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62대대장이었던 이제원 씨는 이들을 폭도로만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제원/11공수 62대대장 : 홍금숙이라고 알죠. 여학생이 경운기에 앉혀서 실려 왔더라고. 두 명은 숨이 까딱까딱하고. 야 빨리 헬기 불러라.]

부상자를 살려 보내려고 했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이제원/당시 11공수 62대대장 : 나는 얘네들(부상자 3명) 전부 다 보내려 그랬거든. 그래야지 CAC(전투교육사령부)에서 (시민군) 정보도 얻고.]

2명을 총살한 것이 자기 부대 책임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제원/11공수 62대대장 : (헬기로) 인계하라 그랬더니 그 옆에 7공수 군수장교가 있었대. 우리 아이들보고 '인마 뭐하러 얘들 데리고 왔어? 데려가 처리해' 라고. 나는 다 보내려 그랬는데 그 모양이 돼 버렸다고.]

생존자 홍금숙 씨가 JTBC에 설명한 당시 상황도 이제원 씨 기억과 거의 같습니다.

[홍금숙/'주남마을 사건' 생존자 : (어떤 군인이) 어쩌라고 이런 사람을 또 데리고 왔냐고 (하더라고요.) 오전에도 이렇게 데려오고. 부상자들 데려와서 나보고 어쩌라고 무전으로. (부상자) 호주머니에 있는 거 싹 꺼내라고 하더라고요.]

홍씨는 살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는 이야기도 전했습니다.

[홍금숙/'주남마을 사건' 생존자 : 옆에 군인한테 혹시 둘 죽인 거 아니냐고 물으니까 그런 거 같다고. 나보고 절대 누가 뭔가를 물어봐도 알아도 몰라요, 몰라도 몰라요, 무조건 모른다고 하라고, 살려면….]

(VJ : 손건표)

이지은 기자 , 박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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