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금 회계부실 논란 기로에 선 정의연
"그래도 수요집회는 계속돼야 한다"
피해자 생계·복지 중심과
사회운동 큰 틀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 찾아야
정의기억연대에 대한 후원금 회계 관련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13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제1439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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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동훈 기자, 이정윤 기자] "인권과 평화, 화해와 용서, 연대와 화합 등 가치를 세워나가는 길에 남은 여생을 미력이나마 함께 할 것입니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2)가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입장문 속 다짐이다. 7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에 대해 날을 세운 파장이 확산되자, 사안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당부로도 읽힌다. 이 할머니는 "다시는 이런 행위가 있어선 안 된다는 공감과, 참여와 행동을 이끌어낸 (위안부 운동의) 성과에 대한 폄훼와 소모적 논쟁은 지양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회계부실, 후원금 부정'과 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친 여론을 환기시키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한일 학생교류', '정의연 사업방식 오류 극복', '2015년 한일협정 과정 공개' 등 3가지 요구사항을 통해서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결성 후 30년째를 맞은 위안부 운동에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관련된 논의가 재개될 기대감이 나온다.
14일 여성운동 활동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번 논란은 활동가와 할머니간 단체 성격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후원금 사용처에 대해 정의연은 진상규명과 전시성폭력에 대한 문제 제기와 외교적 해결 등에 중점을 두는 반면, 이 할머니를 비롯한 정의연 비판 입장 쪽에선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우선 아니냐는 이견을 보이는 게 대표적이다.
이 같은 인식 차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피해자 당사자만의 문제라고 여기는 사회 분위기도 한 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이지은 문화평론가는 최근 한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많은 사람들은 정의연이 할머니의 뜻을 '받들거나' 혹은 '대변'하는 단체라 여기고, 그것이 '옳은'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면서 "문제의 '당사자'가 피해 생존자 할머니로 한정되기 때문에 할머니의 뜻이 곧 운동의 방향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정의연의 활동은 일본군 성노예제 진실과 사죄를 요구하게 만드는 인권운동"이라며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정부와 일본이 해야할 일"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피해자 중심의 인식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위안부 사회운동을 젠더폭력에 대응하는 여성인권운동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의기억연대에 대한 후원금 회계 관련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13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열린 제1439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이 마스크를 벗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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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현재 사회적 논란은 '후원금이 왜 할머니에게 쓰이지 않느냐'에서 시작돼 '정의연이 부실한 회계처리로 돈을 함부로 쓰는 것 아니냐'는 쪽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해선 피해자 중심과 사업적 지향점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 위해 정의연이 '사회적 합의나 소통'에 얼마나 관심을 가져왔는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로도 이어진다.
그러나 엇갈리는 의견 속에서도 위안부 사회운동의 상징인 '수요집회'는 계속돼야 한다는 생각은 시민사회단체 사이에서 지배적으로 보인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최근 배포한 성명에서 "일본군 위안부 운동은 정의연이나 특정인이 만들어온 운동이 아니다"고 했다. 여성민우회도 "위안부 운동을 분열시키고 훼손하려는 움직임에 강한 우려를 표하며, 정부와 시민사회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각자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런 시각들은 이 할머니의 페이스북 입장문과도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계속 방치한 탓에 논란을 키웠다는 지적도 있는 만큼 정부 차원의 추가 대책도 필요해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가 2015년 체결한 한일 위안부 협상을 비판하며 일본이 위로금 명목으로 건넨 1억엔을 토대로 만든 화해치유재단도 2018년11월 해산시켰다. 그러나 이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별다른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2015년 한ㆍ일 합의 타결 당시 46명이던 생존 할머니는 이제 18명 남았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이정윤 기자 leejuy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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