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인 이용수 할머니는 7일 오후 대구시 남구 한 찻집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수요집회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며 관련단체를 비난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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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피드백도 있었다.”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청와대·외교부·민간 관계자들은 윤미향 당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현 정의기억연대) 대표가 합의결과를 알았다고 밝혔다. 당시 2017년 합의 재검토가 한창일 때 취재한 내용이었다.
다만, 합의 발표 직전 일본 측에서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대한 조치가 없으면 최종 합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알려와 조율이 이뤄졌고, 청와대 지시에 따라 ‘소녀상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는 사안이 추가됐다. 외교부는 윤 당시 대표에게 소녀상 문제에 대해서는 직접 내용을 전달할 수 없었다.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문이 발표된 직후 나눔의 집에 있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즉각 내용에 반발했다. 당시 정대협은 “정부와의 상의는 없었다”며 “피해자들의 의사도 전혀 물어보지도 않았다”고 규탄했다.
정부는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정대협에서 ‘할머님들과 소통하려면 정대협을 통해서 하라’는 입장을 강하게 유지했기 때문에 오히려 피해 할머님들과 직접 대화할 수 없었다는 해명이 나왔다.
소통을 둘러싼 진실공방은 2017년 위안부합의 태스크포스(TF)를 통해 “피해자 쪽에 때때로 설명했다”라는 선에서 정리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외교부는 한일 국장급협의 개시 결정 뒤 전국의 피해자 단체, 민간 전문가 등 2015년 한 해에만 모두 15차례 이상 피해자 및 관련 단체를 접촉했다. 하지만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확인’의 의미에 대해서는 피해자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명을 하지 못했다는 게 당시 TF의 판단이었다.
이후 이른바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표현이 부상했지만, 그 개념이 확실히 정립된 건 아니었다. ‘피해자중심성’을 두고 피해자 할머니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달랐고, 각 단체들의 입장도 달랐다. 화해치유재단에 일본 정부가 갹출한 10억 엔의 지급대상이 된 피해자 47명과 199명 중 위안부 피해자 36명과 유족 71명이 지원금 수령을 희망했다는 통계는 이 이견을 부각시키는 자료로 악용되기도 했다.
시민단체는 시민단체로서의 역할이 있다.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에 정대협이 한 역할은 높게 평가돼야 한다.
그러나 단체의 존속이나 정당성, 존재감만 등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2015년 위안부 합의 당시 발생한 소통균열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에 대한 대응 역시 아쉬움으로 남는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기억은 객관적이지 않다'는 논리는 그동안 수구세력이 펼쳐왔던 논리다. 어떤 폭로가 있을 때마다 '부추기는 세력이 있다'는 논리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위안부 문제를 다루면서 피해자들의 기억에 차이가 있어도 외교 전문가들과 학자 등은 이를 외부에 크게 언급하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주체성을 부정하는 빌미로 작용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기억이 왜곡됐다', '기억이 달라졌다'는 표현을 쓰는 순간, 선입견이 생기고 되레 일본에 빌미를 잡힐 수 있다.
이 할머니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 정의연은 무엇이 사실이고 어느 부분에서 오해가 있는 것인지 상세하게 설명하면 된다. 이 할머니와의 갈등은 대화로 풀릴 수 있다. 하루 빨리 정의연과 이 할머니 사이의 오해가 풀리기를 바란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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