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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긴급재난지원금

회사가 정한 재난지원금 '자발적 기부'... 당사자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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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한 긴급재난지원금을 다음주부터 배포하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사회 곳곳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을 기부하자는 선의가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강제 기부’ 논란도 있어 잡음이 불거지고 있다.

지난 4일 농협은 긴급재난지원금 자발적 기부에 농협중앙회 및 지역 조합 등 계열사 임직원 5000명의 자발적 기부 동참 사실을 발표했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은 "국가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기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조선비즈

이성희 농협중앙회장. /조선DB




하지만 정작 기부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한 농협 직원은 "언론을 통해 재난지원금을 기부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임직원들의 개별적인 의사도 확인하지 않은 채 자발적 기부에 동참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와 관련해 농협 측은 "중앙회와 계열사의 임원 및 국장급 간부, 지역농협 상무급 이상 임원이 기부하기로 한 것"이라며 "그들이 기부를 강요받는 것은 아니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기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방침"이라고 했다.

뒤늦게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기부할 수 있다고 해명했지만, 농협은 임직원의 참여 의사를 묻지도 않고 5000여명의 기부사실을 기정사실화했다. 농협 관계자는 "5000명이라는 숫자가 임의적인 것은 사실"이라며 "동의서를 미리 받거나 한 것은 아니고 그 정도가 참여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있어 어림잡아 발표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29일엔 메리츠금융그룹도 연봉 5000만원 이상 임직원 2700여명이 재난지원금 기부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역시 개인의 동의를 받지 않고 결정한 사항이었다. 논란이 일자 메리츠금융그룹은 노사 합의로 기부를 결정했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되 기부 후 지원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회사가 따로 돈을 지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메리츠금융그룹의 한 직원은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며 회사 분위기를 전했다. 직장 내 익명 앱인 블라인드에는 "다음 기업은 어딜까"라며 공무원이나 공기업, 고소득 업종인 금융권 등에서 일하는 직장인들 사이에 느끼는 ‘무언의 압박’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정부는 오는 11일부터 긴급재난지원금 기부 접수를 받을 예정이다. 1인 가구는 40만원, 2인 가구 60만원, 3인 가구 80만원, 4인 이상 가구는 100만원이 지급된다. 일부나 전액을 기부할 수 있고, 기부 금액에는 최대 16.5%의 세액 공제가 적용된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을 전액 기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등 전국 시도 단체당도 전원 기부를 표시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 고위 관료도 기부 의사를 밝히며 국민들의 기부 행렬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이상빈 기자(seetheunsee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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