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측 "구속 사유 미고지, 자백 강요 등 위법 수두룩"
일각에선 "재심사유 요건 까다로워…속단 일러" 의견도
성폭력 피해자 정당방위 인정하라 |
(부산=연합뉴스) 이종민 기자 = 성폭행을 피하려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가 오히려 가해자로 몰려 징역을 살았던 70대 여성이 6일 정당방위를 인정해 달라며 56년 만에 재심을 청구하면서 재판이 다시 열릴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형사사건에 있어 재심은 이미 확정된 판결에 흠결 사유가 있는 경우 피해 당사자 등의 청구로 이뤄진다.
법원은 청구가 들어오면 재심사유를 따져 보고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한다.
재심사유가 없다고 판단하면 청구를 기각하고 사유가 있다고 판단하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린다.
재심사유가 되기 위해서는 증거의 위조·변조가 증명될 때, 증언·감정 등의 허위가 증명될 때, 무고죄가 증명될 때 등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
이번 재심 청구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개시 결정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피해 여성 최말자(74) 씨 재심을 돕는 김수정 변호사는 "최 씨의 증언을 들어보니 수사 과정에서 위법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피해자 주장대로 정당방위를 인정해 무혐의로 검찰에 사건을 넘겼다.
하지만 검찰은 이를 뒤집고 조사 첫날 출두한 피해자를 구속했다.
김 변호사는 "검찰은 당시 구속 이유와 변호인 선임권, 진술거부권 등을 전혀 고지하지 않고 불법적으로 감금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또 "검찰은 조사 기간 내내 고의로 혀를 절단한 것이 아니냐며 자백을 강요하고, 엄벌에 처하겠다고 말하는 등 강압적이었다"며 "이처럼 불리한 진술을 강요한 행위 등은 당시 헌법상 불법체포 감금죄, 타인의 권리행사 범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재심사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56년 만의 재심 청구 |
김 변호사는 또 "당시 판결은 피해자에게 행실 책임을 묻는 등 범죄 유발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성인지 감수성이 과거에는 달랐다는 일각의 지적을 의식한 듯 김 변호사는 "최근 법원 판결에서 언급되고 있는 성인지 감수성은 변화된 시대 상황에 따라 등장한 새로운 가치가 아니라 보편적 가치"라고 분명히 했다.
법조계에서는 최 씨 증언 등을 종합해 보면 재심사유가 충분히 될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재심 개시 결정은 요건이 까다롭고 엄격한 자료가 필요한 만큼 속단할 수 만은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당시 사건기록이 얼마나 남아있는지와 재심 청구인이 제출하는 자료가 얼마나 충실한지 등이 개시 여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최 씨는 1964년 5월 6일(당시 18세),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노모(당시 21세) 씨에게 저항하다 노 씨의 혀를 깨물어 1.5㎝ 자른 혐의(중상해죄)로 부산지법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최 씨는 정당방위임을 주장했으나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2018년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 용기를 얻어 여성의전화와 상담했고 여성단체 등의 도움으로 이날 56년 만에 재심을 청구했다.
"정당방위 인정하라" |
ljm70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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