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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 (목)

[ESC] 네 키보드를 골라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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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 매력에 빠진 이들 늘어

‘한국 표준입력장치 협회’ 회원들 추천

벗이 되는 키보드, 고양이 집사용 키보드 등

재밌고 다양한 키보드의 화려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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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공학 키보드 ‘키네시스 kb600-ls3a’. 출처 키네시스사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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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는 단순한 입력장치 이상이다. 인간의 오감 중 시각, 촉각, 청각 세 가지가 맞물려서 개인마다 느끼는 편차가 크다.” 키보드 애호가 김재근씨의 말이다. 컴퓨터 저장장치 등은 용량이 클수록 비싸고 신제품이 좋으니 구매가 간단하지만, 키보드는 비싸고 이름난 제품이라도 사람마다 취향이 나뉠 수 있다. 나에게 맞는 키보드. 어떻게 고를까?

딸각딸각, 다각다각 소리와 찰진 손맛. 기계식 키보드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으려고 하니 문턱이 있다. 기계식 키보드 스펙마다 등장하는 청축, 적축, 갈축, 흑축은 무슨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자칫 낯선 용어들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애초 기계식 키보드라는 분류부터 아리송하다. 사람들 대부분이 사용하는 멤브레인 키보드가 하나의 고무 시트를 사용하는 방식이라면, 기계식은 키마다 금속 스프링이 들어간 독립된 스위치가 작동한다. 스위치 구조물의 특성이 손맛과 소리의 차이를 만든다. 키를 누를 때 딸각 소리가 나고 걸림이 있는 클릭 방식, 소리는 덜 나고 걸림은 느껴지는 ‘논 클릭’, 걸리는 느낌 없이 직선으로 내려가는 스위치로 구성한 리니어 방식으로 나뉜다. 스위치 안에 스프링과 키캡을 연결하는 플라스틱 기둥의 색깔로도 구분한다. 키캡은 표면에 문자를 인쇄해 컴퓨터 자판의 각 키에 씌운 플라스틱 조각을 말한다. 대표적인 스위치 제조사인 독일 체리사 기준으로, 파란색 기둥을 뜻하는 청축은 찰칵 소리가 나는 클릭 방식이다. 갈색인 갈축은 ‘논 클릭’. 빨간색인 적축과 흑축은 리니어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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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엠 ‘빔스프링(IBM beamspring)’. 사진 카라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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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를 누를 때 찰칵거리는 소리를 즐긴다면 청축. 클릭 음이 없고 사각거리는 느낌을 원한다면 갈축, 걸림이 없이 타자를 하려면 적축을 선택하면 된다. 전자 상가 등에 가서 “체리 청축 키보드 주세요”라고 말하면 체리사의 스위치로 만든, 스위치 기둥의 색이 청색인 키보드를 달라는 소리다. 키보드에 대한 이야기는 이게 끝이 아니다. 2013년께 체리사의 여러 특허가 만료되면서, 중국의 오테뮤와 카일사 등에서 제조한 ‘유사 축’이 시장에 등장했다. 프로게이머나 소수의 마니아가 전유물이었던 고가 기계식 키보드의 대중화와 가격이 내려간 데는 유사 축의 공이 크다.

‘키캡 놀이’(키캡을 마음대로 바꿔 꾸미는 놀이) 하는 이도 많아지는 요즘, 입문자들을 위해 자신의 상황에 맞는 키보드에 관해 알아봤다. ‘한국 표준입력장치 협회’는 엄숙하고 진지한 이름이지만, 실은 키보드를 사랑하는 86명의 비공개 대화방 이름이다. 지난 18일, 모임을 개설한 김재근씨를 통해 입장해 회원들과 얘기를 나눴다. 적게는 2~3대, 많게는 수십대의 키보드를 보유하는 이들은 “키보드에 입문하면 졸업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키보드마다 다른 특유의 느낌이나 개성 때문에 ‘키보드 놀이’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상황별 키보드 추천을 부탁했다.

―혼자 일하는 사무원이다. 오고 가는 사람마다 참견을 한다. 일의 흐름이 끊긴다. 이들을 차단하는 데 도움이 되는 키보드는?

여럿이 일하는 사무실에서 체리 청축 키보드로 딸각딸각 소리를 내다간 폐가 될 확률이 높다. 저소음 적축이 대안이다. 하지만 혼자 일한다면 청축의 경쾌한 소리도 문제없다. 이밖에 기계식 키보드 특유의 소리를 한껏 즐기기 좋은 키보드가 궁금하다. 애호가들 사이에서 전설로 꼽히는 아이비엠의 ‘모델엠’(IBM model M)은 중고품밖에 없지만, 마니아들 사이에서 높은 시세에 거래되는 명품이다. 1980년대 생산품인데, 매우 튼튼하다. 모델엠의 스위치는 스프링이 옆으로 꺾이는 버클링 방식으로 철걱철걱 소리가 나고 구형 타자기를 치는 듯한 손맛이 난다. 참견쟁이가 많은 환경이라면 청축의 딸각거리는 소리에 화려한 엘이디조명이 더해진 키보드로 그들을 물리칠 수 있다. ‘커세어 케이95 알지비 플래티넘(Corsair K95 RGB Platinum)’가 그런 키보드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천재 해커’에게 어울릴 만한 키보드는?

다독가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 책장에 눈이 가듯이, 키보드 덕후들은 키보드를 유심히 살핀다. 자신이 쓰는 키보드가 등장하면 반갑고 뿌듯하다. ‘한국 표준입력장치 협회’ 회원들은 천재 해커의 파트너로 일반적인 키보드보다는 이목을 끄는 제품을 골랐다. 빈티지 키보드 중에서 ‘아이비엠 빔스프링’(IBM beamspring)은 큼지막한 모양에 확실히 눈길이 간다. 일반 키보드의 키 개수가 104개 안팎이라면 ‘모델에프122’(IBM Model F122)는 키가 122개다. 이와 반대인 키보드도 있다. 일반 배열 키보드의 수보다 40% 적은 미니 배열 키보드다. 하지만 보기엔 깜찍해도 사용자가 기능키를 등록하는 방식이라서 쓰기엔 조금 까다롭다. 볼텍스코어가 미니 배열 키보드 여러개를 출시했다. 체리사의 ‘어고플러스 엠엑스5000’(ErgoPlus mx-5000)은 키보드 판 중앙이 갈라지면서 사용자의 팔과 손목 각도에 맞추게 되는 구조다. 생김새 때문에 ‘오징어’라고도 불린다. 이것과 유사한 인체공학 키보드로 키네시스사 키보드도 다수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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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배열에서 키 숫자를 줄인 미니배열 키보드. 사진 카라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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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집사다. 키보드에 털과 먼지가 낀다. 고양이가 물도 자주 엎는다. 청소하기 쉽고 방수가 되는 키보드는?

최근 나온 광축 키보드는 전기 장비의 방수·방진 등급으로 최고인 ‘아이피(IP)68’ 등급을 자랑한다. 광축 키보드는 적외선 센서로 입력을 인식한다. 장점은 내구성과 방수다. 이 때문에 요즘 피시방은 관리하기 쉬운 광축 키보드를 배치한다. 키보드 중, 상판 프레임이 없어 청소가 용이한 ‘비키 스타일’에 대한 의견은 사용자마다 달랐다. 머리카락이나 먼지가 더 신경 쓰인다면서 더 자주 털게 되는 게 불편하다는 의견이다. ‘비키 스타일+광축 키보드’를 사용하는 회원은 세면대에서 통째로 씻을 수 있어 쓰기 편하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밤에 주로 일하는 작가다. 키보드 소리가 소음처럼 느껴진다.

듣기 좋은 키보드 소리는 혼자 일하는 이의 벗이 되기도 한다. 적막함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된다. 다수 회원이 토프레사의 리얼포스 키보드를 언급했다. ‘키보드 끝판왕’이라 불리는 리얼포스는 ‘정전용량 무접점’ 혹은 ‘축전식 무접점’ 방식의 토프레 스위치를 사용한다. 기계식 키보드와 원리가 다르다. 토프레 스위치는 특유의 자판을 치는 맛과 소리가 독특한 게 특징이다. 애호가들은 흔히 ‘얇은 초콜릿 판을 부러뜨리는 느낌’, ‘또각또각 나는 소리’라고 표현한다. 기성품 중 최고가인 리얼포스의 키보드는 30만원 중반으로 가격도 ‘끝판왕’이다. ‘엔아이제트 이시(NIZ EC) 스위치’(노뿌 Noppoo)는 토프레 스위치 키보드의 저가 버전인 셈인데, 가격이 3분지의 1이다. 노뿌 스위치는 치는 맛이 좀 더 부드럽고 보글보글거리는 소리가 난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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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의 틀을 플라스틱이 아닌 티타늄으로 제작한 키보드. 사진 카라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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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군데 가만히 있질 못 하는 사람이다. 데스크톱 컴퓨터, 노트북, 스마트기기 등을 두루 사용하는 편이다. 연결선이 없는 기계식 키보드가 있을까?

얇고 휴대가 편한 펜타그래프 키보드는 여러 종류의 무선 제품이 출시됐다. 복잡한 책상과 선 하나도 거슬린다면 유무선을 겸하는 기계식 키보드를 고르자. 두대 이상의 기기를 연결하는 멀티페어링이 가능한 블루투스 키보드가 유용하다. 로지텍의 ‘지(G)613’은 전용 수신기를 사용하는 무선과 블루투스 한 대씩을 등록할 수 있고, 한성컴퓨터의 ‘지케이(GK)993B(기계식)’ ‘지케이(GK)868B(무접점)’는 블루투스기기 3대, 다이텍의 ‘필코 마제스터치 컨버터블2’는 4대의 블루투스 기기를 등록할 수 있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ESC] 키보드 만져보고 고르자

키보드 동호회 등에 널리 퍼진 말 중에 ‘백문이 불여일타’가 있다. 글로 아무리 설명해도 직접 자신이 쳐보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관심이 있는 키보드가 생겼다면 블로그나 유튜브 등에서 해당 모델의 영상을 참조하면 도움이 된다. 물론 영상의 소리가 실제와 차이 나는 경우가 많다. 키보드 계의 전설이자 ‘끝판왕’이어도 내 손에 마땅치 않으면 오래지 않아 중고장터 매물이 된다. 기계식의 다양한 축과 무접점 방식의 느낌은 제조사마다 차이가 있어서 직접 경험해 볼 것을 권한다.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 인근 ‘리더스키’와 용산 선인상가 ‘피씨기어’ ‘구산컴넷’ ‘리썬즈몰’, 광진구 테크노마트 ‘타건샵’, 부산 사상구 주례동 ‘컴퓨터프라자’에선 직접 쳐보면서 키보드를 고를 수 있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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