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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ESC] 키캡 놀이 어디까지 해봤니? 궁극의 몰입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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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키보드 키 제작하는 이들

예술의 경지에 오른 ‘아티산 키캡’ 작가들

난파선·디아블로 캐릭터·레몬 등

해외에선 이미 문화로 자리 잡아

누구나 할 수 있는 ‘키캡 놀이’…도전할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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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이 산뜻해지는 다양한 배색의 키캡들. 사진 키아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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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으나 희나 입력만 되면 장땡이라 여겼던 키보드. 몰라보게 예뻐졌다. 다양한 색감, 개성 있는 배색의 키캡(표면에 문자를 인쇄해 컴퓨터 자판에 각 키에 씌운 플라스틱 조각)에 눈이 확 열린다. 기계식 키보드 사용자들은 키만 손쉽게 빼내서 ‘키캡 놀이’를 즐긴다. 작가들이 만든 수제 키캡인 ‘아티산 키캡’은 키캡 놀이의 화룡점정. 데스크테리어(데스크+인테리어)족이라면 책상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키보드에 주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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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식 키보드 키 하나를 살짝 눌러본다. 아기의 통통한 볼 같다. 보송보송하니 말캉하게 눌리다 이내 스프링의 반발력이 손가락을 밀어 올린다. 다른 키보드를 누르면 이번엔 한지를 쓰다듬듯 기분 좋고 까슬까슬한 느낌이 손끝에 전해진다. 키보드 덕질에서 키캡은 무척 중요한 요소다. 촉감은 키캡의 재료인 플라스틱의 재질과 제조 방법에 따라 달라진다. 각 키에 문자가 인쇄된 방식도 꼼꼼히 따진다. 키캡의 두께는 타이핑하는 소리에도 영향을 미치니 소홀히 할 수 없다. 손에 착 붙는 키보드에 애착이 생기면서 키보드를 장식하고 싶은 욕구도 생긴다. ‘키캡 놀이’에 나선 이들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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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산 작가 샌던의 ‘공포의 군주’의 키캡. 사진 박재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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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캡 하나에 우주와 바다를 담아…아티산 키캡 작가들

오밀조밀 모여 있는 문자키와 기능키 무리에서 외따로 떨어진 ‘ESC’ 키는 키캡들의 대장님처럼 보인다. 키캡 놀이를 구경하다 보면 종종 대장님 자리에 특이한 키캡을 끼운 것을 보게 된다. 포인트 키캡 중에서도 기성품이 아닌, 별도의 디자인이 가미된 키캡을 ‘아티산 키캡’(Artisan Keycap)이라 한다. 국내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작가는 열명 남짓. 2017년 말, 아티산 키캡 제작자들의 모임 ‘아키모(akimo.kr)’를 만들고 수제 키캡을 세상에 알린 지원근씨(작가명 우왕)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도 예전엔 컴퓨터 살 때 딸려오는 키보드 한대면 평생 충분하다하고 생각했던 쪽이었단다. “커스텀 키보드를 제작하시는 분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쪽에 관심이 갔는데, 저는 아기자기한 키캡 쪽이 적성에 더 맞았다.”

국내외로 탄탄한 팬을 가진 박재용씨(작가명 샌던)의 키캡은 질이 높기로 명성이 자자하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게임 디아블로의 대표 캐릭터 ‘공포의 군주’ 두상 모양으로 만든 키캡은 스리디(3D) 조형을 거쳐 섬세한 채색으로 무시무시한 위용을 드러낸다. “키보드 위에서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 처음에는 국내에서 활동하다 ‘레딧(영어권 대형 커뮤니티)’을 통해 알려지면서 해외에서 주문하는 이가 많아졌다.” 박재용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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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라온누리의 과일 키캡. 사진 두보키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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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디 조형 외에도 키캡을 만드는 방법은 다양하다. 목재와 염료를 푼 레진을 섞은 우드레진 키캡 작가 ‘오브젝트개라지’는 구름이 끼고 눈이 내리고 때로 별이 반짝이는 웅장한 산맥의 다채로운 풍광을 키캡에 담는다. 그의 키캡은 현재 일본과 미국 판매처에서만 구할 수 있다.

우주나 바다를 표현한 레진 키캡들은 자판의 엘이디 조명을 만나면 신비로움을 더한다. ‘라온누리’, ‘하오디’, ‘아야야포’ 등 세 작가가 자신이 만든 수제 키캡을 판매하는 ‘두보키캡’에서 해저에 가라앉은 난파선 키캡을 발견했다. “보물을 가득 싣고 바다를 항해하던 해적선의 쓸쓸한 최후를 떠올리며 만들었다.” 아야야포 작가의 설명이다.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키캡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침샘을 자극하는 키캡도 있다. 라온누리의 과일 키캡은 자몽, 오렌지, 키위, 레몬, 라임까지 새콤한 과일만 골라 담았다. 가격은 대략 개당 2~4만원 정도지만, 은으로 만든 키캡 등도 판매돼 천차만별이다. 대량생산이 어렵다는 점이 가격에도 반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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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하오디와 아야야포의 난파선 키캡. 사진 두보키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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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근씨는 수제 키캡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카페를 열었다. “해외에서는 디아이와이(DIY)로 키캡을 제작하는 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국내에서도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제작기와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스리디 프린팅이 대중화된 시점이라서 어렵지 않게 키캡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영롱한 레진키캡은 키캡의 틀인 실리콘 몰드에 액상 레진과 조색제를 넣어 만든다. 전문 작가가 자신의 작업 과정을 사진을 곁들여 상세하게 설명한 게시물도 많다. 키캡 만들기에 도전하고 서로 응원하는 분위기라서 질문과 답변도 활발하다.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키캡을 내 손으로 만드는 것도 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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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라온누리 우주키캡. 사진 두보키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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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캡 놀이’ 해볼래요?

기분에 따라 옷을 갈아입듯, 키보드의 키캡을 바꾸는 것을 ‘키캡 놀이’라고 한다. 키캡 놀이는 키보드 판 전체를 바꾸지 않아도 된다. 중앙 문자키 양옆의 명령키와 보조키, 방향키 몇 개만 포인트 컬러로 교체해도 밋밋한 키보드가 확 살아난다. 여러 세트의 키캡을 섞어서 배치해도 멋스럽다. 키보드 본체 한대로 다양한 키캡을 즐길 수 있으니 컴퓨터 여러 대를 가진 기분도 나고, 오래 써도 키캡만 바꾸면 금방 새것이 되니 경제적이다. 5만원짜리 키보드에 십만원이 넘는 고급 키캡 세트를 끼워 넣는 이도 있다. 놀이란 그런 거니까. 키캡 놀이용으로 키보드를 구매한다면 스위치와 키캡이 물리는 부위가 십자형태(+)인 체리사 스위치나 같은 형태를 가진 ‘유사 축’ 스위치 키보드를 고르는 것이 좋다. 가장 대중적인 스위치라서 그에 맞는 키캡도 종류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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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우왕의 유령 키캡. 사진 지원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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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누르는 감각을 즐기는 기계식 키보드 사용자 대부분은 ‘키스킨’(실리콘 등으로 만든 키보드 덮개)을 쓰지 않는다. 키보드와 손가락 사이에 아무것도 두지 않는다. 그래서 키캡의 감촉과 재질이 중요하다. 플라스틱 키캡 재료인 ‘에이비에스(ABS) 수지’는 완구에도 많이 쓴다. 색이 선명하고 제조 공정이 간단해서 마감도 깔끔하다. 다만 피비티(PBT) 재질보다 마모가 빠른 것이 단점이다. 키보드 커뮤니티가 선호하는 재질은 에이비에스 수지보다는 피비티다. 에이비에스 수지는 구매 당시 보송보송하던 표면이 닳아서 번들거리는 현상이 생긴다. 하지만 꼭 이에 휩쓸릴 필요는 없다. 키보드는 사용자 각자의 습관과 취향이 밴 기기다. 가볍고 얇은 에이비에스 키캡과 도톰한 두께의 피비티가 만나 자판 안에서 다른 느낌을 연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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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사출 방식의 키캡의 뒷면. 사진 키아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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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를 쓰다 보면 유독 잘 닳는 키가 있다. 한글 문서작업을 주로 한다면 이응이나 니은이 흐릿해지고, 게임을 하는 용도라면 방향키로 사용하며 손을 내내 올려두는 ‘더블유에이에스디’(WASD)가 닳는다. 실크 인쇄나 레이저 각인방식 키캡은 잦은 접촉으로 쉽게 마모되기 마련인데, ‘이색사출(이중사출·더블샷)’ 방식 키캡은 문자 각인이 지워지지 않는다. 염료를 플라스틱에 스며들게 해 마치 문신과 같은 효과를 내는 염료 승화 키캡도 있다. 열에 잘 견디는 피비티 제작에서 가능한 방식이다. 이런 특성을 살려 재미있는 시도를 하는 이들도 있다. 옷감 염료인 다이론에 매염제 소금을 섞은 다음 피비티와 함께 삶아서 물들이는 것이다. 누구나 도전이 가능한 ‘키캡 놀이’는 이제 새로운 취미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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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 마니아 김성래씨가 만든 키캡.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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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키캡 어디서 구하지?

키캡 놀이 사진을 구경하다 보면 군침이 돈다. 탐난다! 해외의 유명한 키캡 제작사로 독일의 지엠케이(GMK)와 미국 에스피(SP·시그니처 플라스틱)가 있는데, 이들의 키캡은 일정 수의 구매자를 모아 제작하는 공동제작(그룹 바이) 방식으로 판매한다. 키캡 놀이 초보에겐 공동제작 참여나 해외구매가 어렵다. 최근에는 중국 엔조이피비티(PBT), 맥스키 등 좋은 평가를 받는 해외 제작 키캡을 소개하는 국내 판매처도 늘었다. 키캡과 스위치 전문판매업체 키아노를 비롯해 쓰리알시스, 아콘스토어 등이 수입 키캡을 취급한다. 국내 브랜드 엠스톤도 키캡 종류가 넉넉하다. 란토코리아는 국내 키캡 생산업체다.

유선주 객원기자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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