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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긴급재난지원금

'재난지원금+α' 기부 분위기 띄우는 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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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대통령부터 할 텐데… 동참 안하고 배기겠나" 우려

여권 "공직자·기업 동참 기대, 수조원 걷힐 것"

1호 기부자로 文대통령 언급 "제2의 금모으기로 위기 극복"

재계 "벼랑끝 몰린 기업들에 오너 사재 내놓으라는 애기"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다음 달 전 국민에게 지급될 긴급재난지원금의 기부 활성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여권은 재난지원금과는 별도로 코로나 극복을 위한 국민 모금에 공직 사회가 참여하는 것도 검토하면서 "정부가 주도하고 민간에 강요하는 '관제 기부'와는 다르다"고 했다. 그러나 기업들은 "대통령부터 참여할 텐데 거부할 수 있겠느냐"고 우려하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공직 사회가 기부에 동참하고, 대기업·고소득자는 물론 국민적 기부 분위기가 잡히면 수조원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상위 30% 지급 대상인 분들이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상당 부분 기부할 것"이라고 했다. 홍 부총리는 "당연히 저는 (지원금을) 받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공무원 강제 사항은 아니다. 자발적으로 (택할 문제)"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호 기부자'로 나서 재난지원금에 '플러스알파(α)'를 기부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를 두고 '관제 기부'라는 지적이 나오자 당·정·청(黨政靑)은 "국난 극복을 위한 전 국민의 자발적 기부"라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모금 운동을 따로 추진할 계획은 현재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문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들이 앞장서고 친문(親文) 지지층이 분위기를 잡는 방식으로 공무원들과 기업, 국민이 따르도록 하면 사실상 '관제 기부'로 변질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재계에선 "정부의 기부 장려 움직임이 사실상 기부 운동이 될 것"이란 목소리가 나왔다. 기부에 참여하더라도 그 규모 등에 따라 여권 지지층을 중심으로 '기업 압박' 분위기와 반(反)기업 정서가 커질 수도 있다며 우려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기업은 쓰러지기 직전인데 수십억원 이상 기부금까지 내놓는 게 당연한 것처럼 몰고 갈까 걱정"이라고 했다.

당·정·청은 긴급재난지원금 기부와 관련해 제기되는 '관제 기부' 지적을 의식해 연일 "정부 주도가 아닌 자발적 기부"라고 강조하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난 24일 "고소득자를 압박한 적도 전혀 없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이라며 "모든 기부는 자발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과거 IMF 외환 위기 사태 때처럼, 이번 코로나 국면에서 '제2의 금 모으기'성 캠페인이 위기 극복 토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 기업은 사실상 정부가 주도하는 기부 운동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 민주당에선 "우리부터 기부하는 모습을 보여 주자"며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한 의원은 "의원들이 급여 이상을 기부하면 고소득자들에 대한 독려가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여권 관계자는 "기부자 상당수는 기부 때 받는 15% 세액공제 혜택도 포기할 것"이라고 했다. 소셜미디어에선 문 대통령 강성 지지층을 중심으로 "지원금을 받지 말자"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공직 사회는 물론 기업들이 기부에 적극 동참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경영 상태가 악화한 기업들까지 떠밀리듯 '플러스알파' 기부에 참여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런 기부 형태는 미국 등에서 IT 기업 재벌 등이 스스로 코로나 백신 개발 등 용처를 정해 기부하는 '자발적 민간 기부'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재계 일각에선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청년희망펀드'를 만들어 기부 운동을 벌였던 사태가 재연될 것이란 말도 나온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1호 기부자로 나선 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사재 200억원을 내놨고, 최태원 SK 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이 은행 빚을 내 각각 사재 60억원, 70억원을 출연했다.

20대 그룹 고위 임원은 "이미 우리 회사 임직원은 연봉이 깎였고, 주요 기업은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수십억~수백억원씩 기부금을 내놨다"고 했다. 실제 현대차그룹과 롯데그룹은 임원 급여 20%를, 두산그룹과 금호타이어는 30%씩을 반납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도 직급별로 임금 20~100%를 반납하고 있다. 또 삼성 300억원, 현대차·SK·LG 각 50억원 등 기업들이 낸 코로나 기부금만 1000억원이 넘는다. 5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재판 문제 등이 걸려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00만원을 받았으니 '자발적으로' 100억원을 기부한다고 나선다면 다른 그룹 회장들이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고 했다.

[신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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