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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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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의 심플라이프]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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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나의 하루는 숫자에서 시작해 숫자로 끝난다. 휴대전화를 열고 서점의 협력사 네트워크에 들어가 주문과 판매 통계를 보고 달력에 숫자를 적는다. 내가 대표이자 편집자인 이미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어제 얼마나 팔렸나? 오늘 주문은 몇 부인가에 따라 하루의 색깔이 달라진다. 새벽에 기계 소리에 잠이 깨도 좋으니 제발 주문 팩스가 들어오기를…. 매일 주문이 들어오지는 않지만 ‘다시 오지 않는 것들’과 ‘돼지들에게’는 조금씩이나마 꾸준히 팔리고 있다.

코로나가 심각했던 3월의 매출은 2월의 5분의 1 수준이었는데 4월은? 코로나 이전으로 회복되지는 않더라도 3월의 판매 부수를 유지하는 게 나의 바람이다.

교보와 알라딘을 합쳐 10부가 넘으면 상쾌한 아침이고, 5부면 기본은 했다고 스스로 다독이며, 한 권도 팔리지 않은 날은 달력에 ‘0’이라 쓰고 온몸에 힘이 빠져 자리에 눕는다.

누운 채 휴대전화를 들고 그날의 일정과 날씨를 확인한다. 내가 마스크를 사야 하는 월요일을 놓치면 주말까지 기다려야 한다.

우울해도 아침체조는 해야지. 냉장고에서 음식 재료들을 꺼내 차가움이 가시기를 기다리며, 막대 체조를 하기 전에 텔레비전을 튼다. BBC 월드뉴스에서 오늘의 숫자들, 전 세계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를 확인한다. 어느새 확진자가 300만명에 육박하고 사망자가 20만명을 넘었다. 봉쇄령 때문에 외출을 못 하자 닭을 끌고 집 밖에 나와, 애완견 산책은 허용된다는데 개가 없어 닭에 목줄을 매어 끌며 걷는 사람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에 컴퓨터를 열고 배본사 프로그램에 들어가 거래처와 주문 부수를 입력하고 출고 버튼을 누른다. 채소를 썰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다. 달걀물에 묻혀 부친 명태전을 엄마와 간병인에게 주고, 남은 건 내가 저녁에 먹을 것이다. 도시락 가방을 들고 현관문을 나서며 마스크를 쓰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에는 마스크를 벗고, 요양병원 건물에 들어서며 다시 마스크를 꺼내 입과 코를 막는다. 이제는 익숙해진 코로나 시대의 일상.

입구에서 직원이 체온을 재는데, 내 귀에 직접 삽입하는 체온계의 위생 상태가 께름칙하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체온을 잰 뒤에 소독약을 뿌린다. 내 몸에는 물론 도시락 가방에도 소독약을 뿌린다. 겉에만 뿌린다지만 휘휘 흔들다가 소독약이 어미가 먹을 음식에 들어갈 것 같아, 옷에만 뿌리면 안 되느냐는 나의 하소연이 먹힐 때도 있고 안 먹힐 때도 있다.

옷에다 마구 뿌려대니까 요양병원에 갈 때는 좋은 옷을 입지 않고 가방도 가죽 소재는 피하는데, 때로 약속이 있는 날은 외투를 고르기가 난감하다.

면회 금지이나 도시락 전달은 허용해 그나마 다행.

‘어머니! 물 많이 마시세요, 도시락 통에 든 음식 먼저 먹고 두유와 과일은 나중에 드세요.’ 이런 주의사항을 적은 쪽지를 도시락 가방에 넣기도 한다.

어미에게 편지를 쓰는 건 치매인 어미가 말을 영영 잊지 않게 하려는 의도도 있다.

코로나 시대에 내가 가장 아쉬운 건 수영이다. 다니던 수영장이 문을 닫아 두 달 가까이 헤엄을 치지 못했다. 뭉친 근육과 기분을 풀고 싶은데….

코로나 이전으로 우리는 돌아가지 못하리라. 코로나와 싸우지 말고, 함께 살아갈 방도를 찾는 게 현명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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