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부동자금 1000조원, 현금의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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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은행 대출 행렬이 끝이 없다. 정부의 예대율 완화 대책의 수혜가 신용도가 좋은 몇몇 기업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신용 사각지대에 놓인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돈이 골고루 퍼지는 게 아니라 특정한 곳으로 쏠리는 현상이 뚜렷하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0일 현재 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 등 시중 5대 은행의 대기업 대출잔액은 87조5184억원이다. 3월 말보다 5.8% 증가했다. 유동성 위기에 대비한 대기업들의 현금 확보 경쟁이 지난달(10.9% 증가)에 이어 다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개인사업자(소호) 대출잔액은 248조1408억원으로 1.3% 늘어나는데 그쳤다. 금융위원회가 시중 14개 은행에 3조5000억원 규모 소상공인 이차보전 대출에 나서도록 하면서 개인사업자 대출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지난달(1.2% 증가)과 별 차이 없었다.
예비비 확보 성격이 강한 대기업 대출과 달리 소상공인 대출은 생계비에 가깝다. 정부가 소상공인 유동성 지원에 신경을 써 온 이유다. 이 때문에 이들을 대상으로 시중은행과 기업은행,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에 모두 12조원을 긴급 지원했다. 지난 22일에는 1.5% 금리 대출을 4조4000억원 추가하고, 신용등급 별로 1.5% 금리를 선별적으로 높이는 10조원 규모 2차 프로그램도 내놓았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23일 “금융회사가 타당한 이유 없이 (소상공인 대출) 접수를 지연·거절하거나 지원에 소극적이라는 불만이 제기되지 않도록 걸림돌을 해소해 달라”는 특별주문도 했다.
‘대출격차(?)’를 바라보는 은행들의 시각은 다르다. ‘선택적’ 대출의 결과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업이나 소상공인 모두 신용조사 같은 대출 과정과 시간은 큰 차이가 없지만 대기업은 한 번에 뭉칫돈을 대출받고 소상공인은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을 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신용조건별로 소상공인을 가르다 보면 대출 집행률이 대기업보다 낮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예대율 한시적 완화 혜택은 대기업에 더 편중될 수 있다. 예대율은 대출총액이 예금총액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금융위는 6월 말까지 5%포인트 이내에서 예대율을 위반해도 은행들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면서 개인사업자 대출의 위험 가중치를 100%에서 85%로 낮추겠다고 했다. 15% 만큼의 추가 대출 여력이 생기는 것이다.
대출여력이 대기업에 집중된다고 해도 저지할 장치도 없다. 소상공인 대출에 대한 구속력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대율 완화 조치와 맞물려 소상공인 대출 의무 비율 같은 방안이 나오지 않는 한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소상공인 대출을 받기가 쉽지 않은 여건이지만 일부 모럴 해저드도 드러났다. 1차 소상공인 이차보전 지원 과정에서 현금 여유가 있음에도 중복으로 대출을 받아 기존 대출금을 갚거나 투자재원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나타난 것이다. 2차 프로그램에서 신용에 따라 금리를 1.5%에서 더 높이기로 한 배경이다.
그렇다고 금융위원회가 대출에 세세히 관여할 수도 없다는 게 고민거리다. 지나친 시장 개입으로 비칠 수 있어서다. 금융위 관계자는 “개인사업자 대출 가중치를 낮춘 건 일종의 인센티브”라며 “정부가 은행 대출 구성을 제한하거나 자산구성에 관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지산 기자 s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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