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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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은 ‘중앙일보 밀레니얼 실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밀도있는 밀착 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박사' 조주빈(왼쪽)과 공범 '부따' 강훈.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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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고인 A는 미성년자 4명에게 총 168개에 이르는 음란물을 찍도록 했다.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한 성매수도 두 차례 저질렀다. 공범에게 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을 제작하도록 의뢰했고, 공범은 13세 피해자를 협박해 동영상 2개를 촬영했다. 검거 당시 A씨가 소지했던 아동·청소년 음란물은 1만 7900여개에 이르렀다.
#2. 피고인 B는 2017년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제공하는 사이트에 0.7비트코인을 송금해 음란물을 다운받았다. B는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총 87회에 다운로드 받고 이를 보관했다.
위 사건 피고인 A와 B는 법원으로부터 어떤 벌을 받았을까요? 판결문에 따르면 A는 징역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40시간)를 명령받았고,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과 장애인 복지시설에 5년간 취업이 제한됐습니다.
B에 대해 법원은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법원이 결정한 형량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 성범죄의 양형 기준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졌습니다. 20대 청년들의 관심도 많죠. 밀실팀은 지난 13~15일 20대 남녀 100명에게 '박사' 조주빈과 'n번방 관전자'들에게 어떤 처벌이 적절한지 이메일 등을 통해 설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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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빈, 관전자 모두 무기징역 1위…'물리적 거세''이득 몰수'도
그래픽=이지수, 정유진 인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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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자 대다수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20대 100명의 응답을 집계하니 '박사' 조주빈에 대한 적절한 처벌로 무기징역(38%)을 꼽은 이들이 가장 많았어요. 이어 사형(30%), '10년 이상'의 징역형(28%) 순이었습니다. '1년 이상 10년 미만'으로 답한 20대는 4%에 그쳤죠.
20대들은 'n번방 관전자'에 대해서도 강력한 처벌을 원했습니다. 관전자들의 형량에 대한 응답은 무기징역(35%), 10년 이상의 징역형(30%), 사형(20%), 1년 이상 10년 미만 징역형(15%) 순으로 많았습니다.
응답자들은 "법 조항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아 감정적인 답변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형법을 잘 몰라 현실적인 답변인지 모르겠다"는 단서를 달면서도, 스스로 밝힌 처벌 기준과 이유를 빼곡히 적었습니다.
무기징역이라고 답한 한 설문 참여자는 "원래 범죄자는 교화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사건을 통해 불가능하다는 의견에 가까워졌다"며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이들을 사회와 영원히 격리해야 한다"고 답했고요. 사형이 적절하다고 답한 다른 응답자는 "내가 낸 세금으로 그들이 교도소에서 밥 먹고 옷 입는 게 싫다"고 했습니다.
응답자들은 강도 높은 처벌이 있어야 경각심이 높아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어떤 응답자는 "이 정도(사형)는 해야 한국 남성들이 당분간이라도 조심할 거다. 그 조심스러움이 변화의 시작이다"고 주장하더군요. 몇몇은 "물리적 거세를 해야 한다", "자료 업로드로 얻은 금전적 이득을 모두 몰수해야 한다"고도 답했습니다.
경계의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한 응답자는 "국민에게 처벌 기준을 묻는 건 포퓰리즘적"이라고 했습니다. "'처벌의 강도'보다 중요한 건 '처벌의 확실성'이다.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면 '무조건 인생 망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어야 재범을 방지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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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만든 결과물" VS "젠더 프레임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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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은 남성과 여성의 시선이 조금 달랐습니다.
설문에 참여한 여성 중엔 n번방 사건이 사회·문화적인 문제들과 관련 깊다는 지적을 하는 응답자가 많더군요. 한 응답자는 "n번방은 어릴 적 '아이스케키'처럼 잘못된 방식으로 여자애한테 관심을 표현할 때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 문화, 여성에 대한 폭력이 깔린 포르노를 쉽게 접할 수 있던 사회가 만들어낸 결과가 n번방"이라고 지적했고요.
다른 응답자는 "디지털 성범죄로 유포되는 촬영물을 ‘야동’으로 소비하고, 여성을 대상화한 '야동'을 '호기심에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위기 때문에 이런 범죄가 벌어졌다"는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내 주변 남자들이 n번방 참여자가 아니라고 괜찮은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여성 혐오적이고 강간문화가 만연하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었죠.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 시위 운영진들이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열린 'n번방 사건 관련자 강력처벌 촉구시위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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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응답자들의 생각은 다소 갈렸습니다. 한 남성 참여자는 "이 사태에 '젠더 프레임' 씌우려는 사람들이 있어 이건 아니다 싶었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남성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나 공범으로 보는 듯한 시선엔 동의할 수 없다는 거죠.
반면 어떤 남성 응답자는 "실제 많은 남성이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여기고 품평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성범죄가 완전히 사라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다른 남성 응답자는 "한국 남자들을 문제 삼는 분위기에 굉장히 위축되고 어지러운 심정"이라며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남성으로서 여성들이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데 나 역시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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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각심은 높은데…법은 시대를 못 따라와
화난사람들 대표 최초롱 변호사(오른쪽)는 국민 2만 180여명으로부터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 대한 의견을 모았다. 그래픽=백경민 인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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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공동소송플랫폼 화난사람들(대표 최초롱 변호사)은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 대한 '국민 의견'을 모았는데요. 약 두 달 동안 국민 2만 180명이 디지털 성범죄 처벌기준에 대한 의견을 냈고, 이 중 78%가 20대였습니다.
이들은 범죄의 죄질이 나쁠 경우, 피해자가 미성년자·장애인 등 범행에 취약한 계층일 경우, 영상의 유포 규모가 클 때 등은 가중 처벌을 해야 한다고 답했고요. 응답자의 43.6%는 디지털 성범죄자는 '어떤 사유에선 형을 감경해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n번방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를 처벌할 양형기준이 없을뿐더러, 스토킹 범죄 처벌특례법 역시 제정되지 않은 상태죠. 그래서 20대의 높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법이 시대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집니다.
'박사' 조주빈, '부따' 강훈이 구속기소 된 상태인데요. 이제 관심은 이들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에 향하고 있습니다. 설문에 참여한 한 20대는 설문 말미에 이런 말을 적었습니다. "재판부가 어떤 결정을 하는지에 따라 앞으로 디지털 성범죄 증감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김지아·최연수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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