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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폐업 비디오를 찍냐고요? 누군가는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영업자의 어려운 현실을…."
경북 예천군 호명면에서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이환건 씨(49)는 최근 점포를 정리하는 모든 과정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유튜브에 올렸다. 1997년 외환위기 때만 해도 멋모르는 청년이었던 그는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처음으로 생존 위기를 느꼈다고 토로한다. 현장 자영업자들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고자 폐업 과정을 세심하게 기록한 그는 "내 점포를 포함해 1년 만에 이 일대 공인중개사 사무소가 25개 가까이 폐업했다"고 말했다.
1997년 외환위기로 실직과 폐업의 고통을 겪은 한국 사회가 23년 만에 다시 절규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쇼크에 짓눌린 자영업자들이 잇달아 폐업을 선택하면서 현장의 고통을 녹취한 동영상이 최근 유튜브에 넘쳐나고 있다.
환란 당시 실직 위기에 몰린 제일은행 직원들의 육성을 담은 '눈물의 비디오'가 다시 살아나 한국 경제의 위기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유튜브에 올라온 제2 눈물의 비디오 사례들은 정부 통계로는 알 수 없는 현장의 처절한 모습을 보여준다.
'김포 민물장어 사장님의 눈물' '일산 중심상가의 줄폐업' '투잡 뛰는 사장님' 등 관련 영상에서 대한민국 자영업자들은 "기존 양호했던 인천 차이나타운 상권마저 몰락하고 있다" "임차료 부담에 재계약을 못하고 폐업을 택했다"고 호소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경험한 현 40~60대 세대의 뇌리에는 외환위기 공포를 상징하는 강력한 두 개의 단어가 박혀 있다. 바로 '대마불사(대기업은 죽지 않는다)' 신화의 붕괴, 그리고 보통 사람들의 숨통을 죈 '대량 실직'이었다. 환란 20년이 흐른 2017년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진행한 설문을 보면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실업의 공포에 대한 아픔이 여실히 확인된다.
KDI가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에게 "환란이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고 묻자 응답자들의 손가락은 모두 '실직'을 가리킨 것이다. 'IMF 외환위기'가 연상시키는 이미지로 응답자들은 '금 모으기 운동'(42.4%)에 이어 '대량 실업'(25.4%)을 지목했다. 세 번째로 많은 응답이 몰린 '기업 파산'(17.6%)을 압도하는 응답률이었다.
향후 정부의 대응 과제에서도 응답자들은 '일자리 창출·고용 안정성 강화'(31.1%)를 최우선으로 지목했다. 대량 실업의 충격과 아픔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는 트라우마가 국민의 뇌리에 각인된 것이다.
그러나 새해 벽두부터 코로나19 사태가 한국 경제에 몰고 온 충격파는 1997년으로 시곗바늘을 되돌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지방노동청 일자리플러스센터에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온 박 모씨(64·서울 은평구)는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외환위기 때도 버텼는데 지금은 자신이 없다. 34년 직장 생활에서 이런 생존의 위협은 처음"이라고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34년간 유명 버스회사 운전기사로 일했던 그는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하자 회사로부터 "미안하다. 계약 연장이 어려울 것 같으니 실업급여를 신청하라"는 해고 통보를 받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 조처로 고속버스 이용객이 급감하자 회사는 대규모 감차에 돌입했고, 결국 계약직부터 해고 조치를 단행한 것이다. 그는 "앞으로 6월까지 월 160만원의 실업급여로 아내와 이 현실을 버텨야 한다"고 답답해했다.
위기의 대한민국 자영업 현실은 '노란우산공제'라는 소상공인 보호 시스템에서도 확인된다.
노란우산공제는 소기업·소상공인이 폐업 등에 대비해 매달 일정 금액을 적금처럼 납입해 폐업·사망·고령 등 사업을 더 이상 영위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연복리 이자를 적용해 적립된 공제금을 받는 제도다.
그런데 올해 들어 팬데믹 쇼크가 본격화한 3월까지 노란우산공제 해지 건수는 3만1893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가량 늘었다. 또한 공제를 임의로 중도 해지하는 사례는 전월 대비 26% 급증했다. 임의 중도 해지의 경우 실수령액이 납부 원금에 못 미칠 수 있다. 이 같은 불이익을 감내하고라도 해지해야 할 만큼 소기업과 자영업 소상공인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고임금과 안정성으로 샐러리맨에게 성공의 지표가 됐던 '대기업 일자리' 여건도 갈수록 열악해지는 흐름이다. 매일경제가 2015~2019년 고용 창출 상위 대기업 11곳을 상대로 임직원 변동 현황을 파악한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다. 전체 11곳 중 삼성전자(6.3%), 현대차(12.4%), SK하이닉스(27.6%) 등 불과 3개사에서만 일자리가 5% 이상 증가했다. 반대로 LG디스플레이는 5725명(-17.6%), 삼성중공업은 3553명(-26.2%)이 감소해 두 자릿수 이상 감소율을 기록했다. 유통 업계의 일자리 화수분인 이마트마저 3428명(-11.7%)이 감소했다.
고용의 질도 문제다. 2010년 572만명 수준이었던 비정규직(시간제·기간제·일용직·파견·용역 등)은 지난해(748만명) 처음으로 700만명대 천장을 뚫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휴수당 등 노동정책의 변화가 직격탄이 됐다. 이에 따른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비율은 2010년 33.2%에서 지난해 36.4%까지 올랐다.
코로나19발 실직 공포에 시달리는 박씨는 이 비정규직 일자리가 3~4개월 뒤 다시 살아나기를 오매불망 기다린다.
한편 서울지방노동청에서 만난 박씨는 최근 실업급여 신청 과정에서 국가에 큰 실망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실업급여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 소일거리 알바를 구하려고 하는데, 이 알바 소득만큼 160만원이 차감되거나 아예 실업급여가 중단되기 때문이다. 그는 "34년 동안 매달 고용보험료를 꼬박 국가에 납부해 온 사람에게 이런 제한 조치는 부당하다"며 "최소한 10년 이상 중단 없이 고용보험을 납부한 이들에게는 각종 차감과 지급 중단 조치가 예외로 인정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특별취재팀 = 이진우 산업부장 / 노영우 유통경제부장 / 황형규 부장 / 이승훈 기자 / 이재철 기자 / 박준형 기자 / 이승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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