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만에 산문집 '아무도 하지 못한 말' 펴낸 최영미 시인. /사진=최영미 시인 페이스북 |
고은 시인의 성추행을 폭로하며 ‘미투’ 운동에 불을 지핀 최영미(58) 시인은 ‘아직 끝나지 않은 운동’임을 강조하듯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던 운동권 문화의 이면을 역시 성추행 사건으로 들춰냈다.
지난 2015년부터 4년간 페이스북 등을 통해 이미 공개된 글 122개 이야기를 시간순으로 묶은 산문집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통해서다.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이후 9년 만의 신작이다.
책은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의 병간호를 시작으로 자신의 소소한 일상의 기록들로 대부분 채우지만, 마지막 챕터에선 여전히 불편하지만 하지 않으면 안되는 성추행 관련 이야기들을 적나라하게 담았다.
1992년 등단 이후 성추행을 했던 남자가 4명이라든가, 운동권 시절 시위에 참가한 후 남자 동기 집에서 벌어진 ‘잠든 사이 성추행’ 같은 일들의 소환이 그렇다.
최 시인은 “돌아가기 싫은 그 시절을 다시 불러들인 것은 80년대가 강요한 여성들의 희생이 무엇이었는지 말하고 싶어서였다”며 “지금 유명한 정치인, 국회의원, 법조인이 된 그들은 민주주의, 자유, 평등 같은 거룩한 단어를 내뱉지 마시라”고 적었다.
그는 또 “나는 싸우려고 시를 쓴 게 아니라, 알리려고 썼다”며 “‘미투’는 남성과 여성의 싸움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싸움이다. 우리는 이미 이겼지만, 남자와 여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그 날을 위해 더 전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은 80년대 민주화 운동에 대한 기억과 방황, 시 ‘괴물’ 발표 이후 ‘미투’의 중심에 서며 시작된 고민과 투쟁 등을 비롯해 계절 음식 예찬 같은 생활 속 이야기들이 잔잔하게 이어진다. 또 1인 출판의 세계에 진출한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도 담겼다.
최 시인은 “원칙을 지키는 것은 쉽지만 타협을 배우는 건 결코 쉽지 않다”며 “끝없이 타협을 배우면서도 그 과정에서 스스로 망가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 밑바닥을 기록한 이야기들이 시대의 일기로 읽히길 바란다”고 했다.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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