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연통TV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북한 소식을 다루는 '북문으로 들었소'의 맹찬형입니다.
오늘은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스위스 유학 시절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합니다.
저는 2009년 7월부터 2012년 7월까지 제네바 특파원으로 일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소식은 2009년 1월 연합뉴스의 단독보도로 처음 알려졌고, 이후 세계 주요 언론들이 김정은이 누구인지에 대해 취재 경쟁을 벌이게 됩니다. 제가 특파원으로 부임했을 때는 이미 후계자 김정은에 대한 세계 주요 언론들의 뜨거운 취재 열풍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을 때였습니다.
김정은은 여동생인 김여정과 1998년 9월부터 2000년 가을까지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두 사람이 국제학교가 아닌 공립학교에 다녔다는 점입니다. 김정은은 '박은'이라는 가명으로 베른에 있는 리베펠트-슈타인횔츨리 공립학교에 다녔고, 김여정은 헤스구트 공립학교에 다녔습니다.
아마 보안 때문에 그랬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통상 북한의 고위층 자제들이나 외교관 자녀들이 스위스 국제학교에 다니는데 낯선 북한 학생이 입학하면 각국의 정보기관들이 주목하게 되고 누구의 자녀인지에 대해 파악에 나서게 됩니다. 그래서 일부러 주목을 덜 받는 공립학교에 보낸 거죠.
스위스 학교는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를 매우 꼼꼼하게 기재합니다. 성적은 물론이고 행동 양식, 습관, 잘했던 점과 잘못했던 것들을 빠짐없이 기록합니다. 그래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의 권력승계가 알려진 후 각국 언론들이 생활기록부 공개를 끈질기게 요구하자 학교 측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서 생활기록부를 공개하지 않겠다고 발표까지 하게 됩니다.
그래서 김정은의 학교생활은 주로 단짝 친구였던 스위스 사람 즈아오 미카엘로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겁니다. 즈아오 미카엘라에 따르면 열여섯살 김정은은 조용하고 평범한 학생이었고, 다른 학생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농구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농구를 좋아했고, 영화와 게임, 컴퓨터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성적은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스위스 일간지 '르 마탱'이 2012년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김정은은 자연과학, 수학, 문화, 사회, 독일어 등에서 과락을 겨우 넘었고, 음악과 기술에서는 우수한 성적을 냈습니다.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서 결석도 잦은 편이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김여정의 스위스 학교생활은 '정순'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오빠보다는 4살 어린 12살 때 유학을 갔기 때문에 수업 난도가 낮고 인종적 장벽도 낮아서 오히려 적응하기가 수월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해봅니다.
김정은과 김여정 남매는 베른에 주택가에 있는 3층짜리 연립주택에서 생활했습니다. 김정철은 1998년에 이미 스위스 국제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김정은과 김여정은 유학 기간에 둘이서 지냈을 것입니다. 그런 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와 유대가 두텁겠지요. 요즘 김여정에게 비중 있는 역할을 맡기는 데는 그런 토대가 깔려있기 때문이죠.
당시 김정은 남매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 외무상과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지낸 리수용입니다. 제가 유엔 인권회의 때 사진을 찍다가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바람에 유엔경비들한테 쫓겨난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스위스 유학 시절 얘기를 해봤습니다. 내용이 유익했다면 구독과 좋아요 꾹 눌러주세요.
▶관련 영상 [북한 TOP10]
프로듀서_김지혜
편집·CG_ 민지영
구성·크리에이터_맹찬형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북한 소식을 다루는 '북문으로 들었소'의 맹찬형입니다.
오늘은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스위스 유학 시절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합니다.
저는 2009년 7월부터 2012년 7월까지 제네바 특파원으로 일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소식은 2009년 1월 연합뉴스의 단독보도로 처음 알려졌고, 이후 세계 주요 언론들이 김정은이 누구인지에 대해 취재 경쟁을 벌이게 됩니다. 제가 특파원으로 부임했을 때는 이미 후계자 김정은에 대한 세계 주요 언론들의 뜨거운 취재 열풍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을 때였습니다.
김정은은 여동생인 김여정과 1998년 9월부터 2000년 가을까지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두 사람이 국제학교가 아닌 공립학교에 다녔다는 점입니다. 김정은은 '박은'이라는 가명으로 베른에 있는 리베펠트-슈타인횔츨리 공립학교에 다녔고, 김여정은 헤스구트 공립학교에 다녔습니다.
아마 보안 때문에 그랬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통상 북한의 고위층 자제들이나 외교관 자녀들이 스위스 국제학교에 다니는데 낯선 북한 학생이 입학하면 각국의 정보기관들이 주목하게 되고 누구의 자녀인지에 대해 파악에 나서게 됩니다. 그래서 일부러 주목을 덜 받는 공립학교에 보낸 거죠.
김정은의 형 김정철이 1994년 9월부터 1998년까지 박철이라는 가명으로 스위스 국제학교에 다녔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김정철의 신상이 서방언론에 노출되자 동생 남매를 보낼 때는 공립학교로 보낸 게 아닌가 추정해봅니다.
스위스 학교는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를 매우 꼼꼼하게 기재합니다. 성적은 물론이고 행동 양식, 습관, 잘했던 점과 잘못했던 것들을 빠짐없이 기록합니다. 그래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의 권력승계가 알려진 후 각국 언론들이 생활기록부 공개를 끈질기게 요구하자 학교 측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서 생활기록부를 공개하지 않겠다고 발표까지 하게 됩니다.
그래서 김정은의 학교생활은 주로 단짝 친구였던 스위스 사람 즈아오 미카엘로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겁니다. 즈아오 미카엘라에 따르면 열여섯살 김정은은 조용하고 평범한 학생이었고, 다른 학생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농구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농구를 좋아했고, 영화와 게임, 컴퓨터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성적은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스위스 일간지 '르 마탱'이 2012년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김정은은 자연과학, 수학, 문화, 사회, 독일어 등에서 과락을 겨우 넘었고, 음악과 기술에서는 우수한 성적을 냈습니다.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서 결석도 잦은 편이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성적이 좋지 못한 건 어쩌면 당연합니다. 스위스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토착어인 로망슈어 등 4개의 공용어를 사용하는데 베른은 독일어권이어서 공립학교 수업도 독일어로 진행됩니다. 당연히 독일어에 서툰 김정은이 수업과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겠죠.
김여정의 스위스 학교생활은 '정순'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오빠보다는 4살 어린 12살 때 유학을 갔기 때문에 수업 난도가 낮고 인종적 장벽도 낮아서 오히려 적응하기가 수월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해봅니다.
김정은과 김여정 남매는 베른에 주택가에 있는 3층짜리 연립주택에서 생활했습니다. 김정철은 1998년에 이미 스위스 국제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김정은과 김여정은 유학 기간에 둘이서 지냈을 것입니다. 그런 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와 유대가 두텁겠지요. 요즘 김여정에게 비중 있는 역할을 맡기는 데는 그런 토대가 깔려있기 때문이죠.
당시 김정은 남매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 외무상과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지낸 리수용입니다. 제가 유엔 인권회의 때 사진을 찍다가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바람에 유엔경비들한테 쫓겨난 적이 있습니다.
리수용은 스위스 대사를 할 때 리철이라는 가명을 썼는데 김정은 남매를 잘 보살폈고, 권력승계 후에 출세 가도를 달렸고 작년 말에 은퇴했습니다. 스위스 인맥의 덕을 본 거죠.
오늘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스위스 유학 시절 얘기를 해봤습니다. 내용이 유익했다면 구독과 좋아요 꾹 눌러주세요.
---
프로듀서_김지혜
편집·CG_ 민지영
구성·크리에이터_맹찬형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