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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인 미디어]무전기가 켜졌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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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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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 이즈 로스트'는 바다에서 조난당한 한 남자의 표류기를 다룬다. 대략 열흘 남짓 파도와 폭풍우를 상대로 사투를 벌이는 남자의 힘겨운 버티기를 그려냈다.

주인공 로버트 레드포드는 요트를 타고 인도양 한가운데를 지나던 중 배가 컨테이너와 부딪히는 사고를 당한다. 요트에는 구멍이 뚫린다. 요트 안으로 물이 새들어오면서 전기·통신 장비는 모두 마비된다.

남자는 정신을 가다듬고 정비에 나선다. 수동 펌프질로 배 안 물을 빼고 돛대를 바로 세운다. 쪽잠을 자고 통조림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시간 이외에는 온종일 요트를 고치는 데 집중한다.

가까스로 급한 불은 끈다. 요트 외관을 멀쩡하게 수리했다. 하지만 희망고문에 불과했다. 고장 난 무전기와 내비게이션은 여전히 작동을 멈췄다. 배터리는 켜지지만 통신이 연결되지 않았다. 지도와 오랜 항해 경험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막막한 미래를 걱정하던 중 또다시 위기를 맞는다. 멀리서 밀려오는 폭풍우를 보게 된다. 만반의 준비에 나서지만 끝내 요트는 침몰하고 만다.

구명보트를 펼쳐 겨우 목숨은 건지지만 한 평 남짓 보트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보트 안도 시간이 흐를수록 처참하게 변해갔다.

지도 위 자신의 위치를 표시해가며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역부족으로 끝난다. 보트마저 전복되며 남자는 물속으로 잠기고 만다.

'만약 무전기가 켜졌더라면 구조 요청을 보냈을 텐데.' 영화를 보던 내내 들던 안타까움이다. 무전기는 찌지직 소리까지 내며 될 듯 말 듯하지만 아쉽게도 통신 연결에는 실패한다. 통신의 중요성이 새삼 느껴지는 대목이다.

국내 통신망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성능을 다시 한 번 검증받았다. 유럽에서는 인터넷 트래픽 폭증으로 '블랙아웃' 우려가 번지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유튜브, 아마존, 넷플릭스, 페이스북 등에 화질을 낮추라고 권고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도 버라이즌과 T모바일이 다른 방송통신 사업자가 할당받은 주파수를 임대해 용량을 늘리도록 하는 조치를 허가했다. 이스라엘 정부도 비슷한 대응에 나서는 등 공포가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반면에 국내는 이 같은 우려에서 비껴갔다. 3월 기준 인터넷트래픽이 1월 대비 13%가량 증가했지만 위급한 정도는 아니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이용량 최고치가 아직 통신 사업자들이 보유한 용량의 45~60% 수준이라 앞으로도 충분히 버텨낼 전망이다.

통신망에 대한 지속적 투자와 품질 관리 노력에 힘입어 누릴 수 있는 안도감이다.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통신의 가치를 재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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