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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성착취물 실태와 수사

성착취물 자동 다운로드도 소지죄?...'고의성' 적용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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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6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n번방’ 관람자 전원의 엄중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호욱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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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이용 중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이 내 컴퓨터에 자동 다운로드돼 소지하게 됐다면 처벌될 수 있을까. 법조계에서는 소지의 개념과 고의성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n번방’ 관람자가 법망을 빠져나갈 수 없게 하려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소지 개념이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11조 5항은 ‘아동·청소년 음란물임을 알면서 소지한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2013년 개정을 통해 ‘알면서’라는 표현을 추가해 소지에 대한 고의성 요건을 갖췄지만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불법 성착취물에 대한 ‘소지’ 개념은 불분명하다. ‘소지’에 대한 판단은 수사기관의 유권해석에 의존해왔다. 26일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법무부 집계 결과 2014년부터 2019년 10월까지 아동 음란물 소지죄로 구속된 인원은 3명에 불과하다.

n번방 사건에서 ‘소지죄’ 적용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다운로드되지 않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소지로 볼 수 있는지부터 해석이 엇갈린다. 돈을 내고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영상이 유포되는 특정 방에 들어갔다면 고의성은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다운로드되지 않은 상태가 ‘소지’ 개념에 해당하는지는 해석의 여지가 있다. 법학계는 형법상 ‘소지’ 개념을 ‘자신의 지배하에 두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를 디지털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에 적용하면 ‘타인의 방해 없이 저장하거나 복사하고 편집할 수 있는 형태로 두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운로드하지 않았더라도 저장·복사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소지죄’가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수원지법 안산지원 형사1부(재판장 서현석)는 18세 여성의 신체 사진을 스마트폰에 저장하지 않은 채 앱을 통해 업로드한 ㄱ씨에 대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당시 법원은 앱에 사진이 업로드된 상태를 ‘지배하에 두어 보관된 것’으로 봤다.

n번방에서 유포된 아동·청소년 성착취 스트리밍 영상이 저장·복사·편집이 자유롭지 않은 상태였다면 ‘소지’ 개념을 적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 미국에서는 2002년 컴퓨터에 남은 아동 성착취물 캐시 파일을 근거로 ‘소지죄’를 적용한 판례가 있지만 통상적이진 않다. 2012년 뉴욕주 고등법원은 PC 임시 파일 공간에 자동 저장된 파일은 소지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또 다른 쟁점은 텔레그램 ‘자동 다운로드’ 기능이다. 이 기능이 켜져 있으면 대화방에서 특정 용량의 이미지·영상이 자동으로 다운로드된다. 이를 두고 ‘알면서 소지한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n번방 참여자 중엔 입장료를 받지 않는 이른바 ‘맛보기방’에서 무료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에 접근한 경우가 있다. 이들의 휴대전화 등에서 아동 성착취물이 나오는 경우 소지의 고의성이 인정될지 불투명하다.

자동 다운로드의 고의성이 인정된 해외 판례는 있다. 미국 제9연방항소법원은 2006년 아동 성착취물을 삭제하기 전까지 화면에 이미지를 키워 몇분간 본 일련의 과정을 ‘소지’로 보고 ‘자동 저장된 줄 몰랐다’는 피고인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무부 관계자는 “n번방 이용자 각각이 영상을 본 과정, 저장한 방식이 수사를 통해 어떻게 입증되는지에 따라 소지죄 의율이 달라질 수 있다”며 “현 단계에서는 캐시 파일 형태의 다운로드를 소지로 볼 수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했다.

윤지원·이혜리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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