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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전문가의 세계 - 이명현의 별별 천문학](42)대중의 상식에서 ‘교양’으로 자리매김하는 과학기술문화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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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교양으로서의 과학

경향신문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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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대중화’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다. 일반인들로 하여금 과학에 대해서 알도록 하자는 취지였을 것이다. 이 말은 다분히 과학적 현상과 지식을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전달하자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조금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과학에 대해 무지한 일반인들을 계몽하자는 선의의 오만함도 묻어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과학적 현상이나 지식을 쉽게 접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어느 정도 일반인들이 과학을 접하고 이해하는 데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 방향으로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가르치는 ‘과학의 대중화’는 그 자체가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는 힘겨워 보였다. ‘대중의 과학화’라는 말이 이어졌다. 비슷한 말이지만 주체를 바꿔놓았다. 과학자들이 일반인들에게 일방적으로 계몽한다는 느낌을 벗어나 일반인들이 스스로 과학을 습득하고 깨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하겠다. 과학을 배우는 주체가 일반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을 전달하는 한계를 극복하고 일반인 스스로 과학을 습득하는 주체가 되도록 가르치자는 것이다. 역시 계몽주의적 뉘앙스가 풍긴다. 과학 현상과 지식의 전달이 좀 더 강조되는 말들이다. 과학을 접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이런 시도는 그 자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요구에 맞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시대가 바뀌면서 그 한계가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과학의 대중화’와 ‘대중의 과학화’라는 말에 이어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라는 말이 화두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과학을 지식으로만 보지 않고 이해하고 내재화시켜야 할 인식체계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들 구호가 하나가 없어지고 다른 하나로 완전히 대체되는 것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필요에 따라 여전히 ‘과학의 대중화’를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면서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시대정신으로 던지고 그 실현을 위한 작업을 하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이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려주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과학의 본질에 대한 탐구와 이해를 정리해 일반인들에게 알리는 작업이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덕분에 과학을 동떨어진 신기하고 경이로운 다른 세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을 갖추는 데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활동들이 큰 기여를 했다.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 ‘과학에 대한 대중의 참여’라는 화두가 등장했다. 일반인이 주체적인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과학자나 과학커뮤니케이터가 판을 만들지만 일반인들은 과학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단계를 벗어나 주체적으로 향유하고 소비하는 시대가 되었다. 일반인들을 위한 과학 행사에서 그들의 참여 여부는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했다. 이 단계에 접어들면서 과학자와 일반인 사이의 간극을 메꾸고 연결시키는 과학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이 무척 중요해졌다. 요즘은 일반인들이 과학적 연구에 직접 참여하는 ‘시민의 과학’이 유행이다. 과학자들과 일반인들이 함께 자료를 모으고 분석해 논문으로 발표하는 일은 이제 꽤 흔한 과학 수행 방법론이 되었다.

‘과학의 대중화’, ‘대중의 과학화’,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 ‘과학에 대한 대중의 참여’ 그리고 ‘시민의 과학’이 시간의 흐름 속에 차례로 확립된 개념이긴 하지만 일직선으로 진화한 것은 아니다. 지금 시대의 주된 화두가 ‘시민의 과학’이라고 해서 다른 것들이 사장된 것은 아니다. 대상별로 생애주기별로 적합한 방식이 있을 것이다. 목적에 따라 가장 적합한 방식도 있을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어떻게 과학을 인식시킬 것인가 하는 것은 앞서 그 상황에 따라서 말한 여러 방식 중 하나 또는 다수를 채택해 활용하면 될 것이다. 실제로 일반인을 위한 과학 활동이 그런 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과학문화’라는 말은 많이 쓴다. 그냥 ‘과학’이라고 이야기할 때보다 훨씬 더 우리들의 삶과 연결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문화’라는 말 속에는 향유한다는 의미가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과학을 지식체계로만 보지 않고 삶의 향유 방식으로 인식한다는 말의 결정체가 ‘과학문화’라고 생각한다.

과학과 기술은 엄격하게 따지자면 분리해서 생각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문화’를 이야기할 때는 오히려 형식적인 분류가 본질을 놓칠 수도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문화’라는 말을 쓰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일반인들이 능동적으로 과학 활동에 참여하는 시대적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그런 활동을 통해 과학기술이 ‘과학기술문화’로 정착하도록 하는 것이 이 시대 과학자와 과학커뮤니케이터의 마땅한 사명일 것이다.

인적, 물적 자원이 정부와 학계에 집중되어 있던 시절에는 이들 집단이 ‘과학기술문화’를 일반인들에게 건네는 활동의 주체가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민간의 역할이 모든 분야에서 중요해졌다. 일반인들의 주체적인 참여의 폭이 넓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자본주의적 방식의 영향을 받아야만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인식을 반영해 ‘과학기술문화산업’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조금은 작위적인 느낌을 떨쳐버리기 힘든 조어지만 한편으로는 시대의 요구를 잘 반영했다고도 하겠다. 과학대중화의 흐름은 이제 문화를 거쳐 산업에까지 이르렀다.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나는 천문학자로 경력을 이어가다가 과학저술가로 활동을 하고 있다. 요즘은 과학책방의 대표를 맡아서 활동한다. 위에서 언급했던 과학대중화의 단계를 같이 밟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향신문에 그동안 연재했던 별과 우주에 대한 글도 이런 내 삶의 궤적에서 나온 산물이다. 글을 연재하는 내내 어떻게 하면 일반인들이 과학의 경이로움을 같이 느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과학적 현상에 대한 경이로움뿐 아니라 과학자들이 그 현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그 과정의 경이로움을 같이 공유하고 싶었다.

제한된 지면이지만 현재 시점에서 일어나고 있는 과학적인 논쟁을 생중계하듯 전달하려고 나름 애를 썼다. 한 과학커뮤니케이터의 작은 실천의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즐거웠거나 생각의 지평이 넓어졌거나 과학에 관심이 생긴 사람이 있다면 필자 입장에서 너무 기쁠 것이다.

사실 조금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과학기술문화’ 또는 ‘과학기술문화산업’ 시대가 정착되고 지속 가능한 세계로 접어들도록 하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무엇이든 정착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수적으로 투자되어야 한다. ‘과학기술문화’ 또는 ‘과학기술문화산업’의 시대가 구축되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세상을 향유하자면 그 토대가 탄탄하게 구축돼야만 할 것이다. 그러자면 과학이 향유하는 문화를 넘어서, 아니 그 바탕이 되는 교양으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현대인에게 교양이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덕목이다. 세상에 대한 인식을 하는 기본틀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과학대중화를 기치로 내세웠던 시절부터 달려온 종착역에 과학을 교양으로 자리매김하는 시대적 사명이 있다. 과학이 모든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할 교양으로 자리 잡는 날을 꿈꿔본다. ‘핵심교양으로서의 과학’이 요즘 내 화두다.

‘핵심교양으로서의 과학’이 바탕이 된 ‘과학기술문화’가 구축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체가 각자 방식으로 기여를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본적인 판을 만드는 것이다. 기본의 기본이 되는 것 중 하나가 법제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제3차 과학기술문화 기본계획(2020~2025)’을 의결했다. 국민의 과학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고, 고품질의 과학문화 서비스를 강화하고, 민간과 지역의 과학문화를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과학기술과 국민이 소통하며 함께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본이 되는 법적 근거를 확보하려는 것이 ‘제3차 과학기술문화 기본계획(2020~2025)’의 입법 취지다.

이 기본계획은 시대정신을 반영해 과학대중화를 이루려는 지향점을 확실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법제화되어야 실행의 근거가 확립되는 것이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과학기술문화 구축에 필수적인 작업이라고 하겠다. 그동안 과학기술문화를 향유하는 계층이 주로 어린이와 청소년이었다면 ‘일반인과 소외계층까지 전 국민의 과학 이해 증진 및 참여 확대’를 내세운 이번 기본계획은 아주 적절한 의제를 던지고 있다고 하겠다. ‘지역과 민간이 주도하고 새로운 소통 미디어를 활용하자’는 제안도 시대정신을 잘 반영한 결과라고 하겠다.

실제로 이 기본계획의 비전을 바탕으로 2025년까지 과학기술문화 구축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도 제시했다. 과학기술문화에 대한 계층 간, 지역 간 접근성을 좁혀 ‘전 국민의 과학문화 향유 기회 확대’가 첫 번째 추진 전략이자 목표다. 새로운 매체와 민간의 과학기술문화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전문적인 과학커뮤니케이터를 양성해 ‘전문성 기반의 과학문화 서비스 강화’가 두 번째 추진 전략으로 이어진다. 세 번째로는 이런 ‘과학문화 추진체계 고도화’를 위해 ‘법적 근거 마련 및 재원 다각화’와 ‘한국과학창의재단 역할 재정립 등 추진체계 정비’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선언했다.

‘과학의 대중화’로부터 시대정신을 반영하면서 ‘시민과학’까지 확장해온 과학대중화 활동은 큰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제3차 과학기술문화 기본계획(2020~2025)’은 ‘과학기술문화’의 향유가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핵심교양으로서의 과학’을 정착시키는 데 법적 토대를 마련해줄 것이다. 시대정신의 적절한 반영은 어느 시대나 늘 큰 화두일 것이다.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방식으로 반영이 되어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시대정신이 반영된 문화를 동시대적으로 향유할 수 있다. ‘제3차 과학기술문화 기본계획(2020~2025)’은 말하자면 그런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해주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다. ‘핵심교양으로서의 과학’이 그냥 상식이 되어 ‘과학기술문화’를 동시적인 인식으로 누리는 세상을 꿈꿔본다.

<시리즈 끝>

▶필자 이명현

경향신문

초등학생 때부터 천문 잡지를 애독했고, 고등학교 때 유리알을 갈아서 직접 망원경을 만들었다. 연세대 천문기상학과를 나와 네덜란드 흐로닝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네덜란드 캅테인 천문학연구소 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 연세대 천문대 책임연구원 등을 지냈다. 외계 지성체를 탐색하는 세티(SETI)연구소 한국 책임자이기도 하다. <이명현의 별 헤는 밤> <스페이스> <빅 히스토리 1>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과학책방 ‘갈다’ 대표.


이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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