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서 간호 보조사가 '검체 이송'…지침 '無'
"생명과 관련된 사안에도 원-하청 차별이 있나요"
감기 증상에도 출근 지시…콜센터 사각지대 '여전'
코로나로 민낯 드러낸 원-하청…"건강권 침해됐다"
강릉아산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간호 보조사들은 명확한 지침 없이 '쪽지'로 주의사항 등을 공유하고 있다. (사진= 내부직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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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으로 의료기관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정작 병원 하청직원들은 지침이나 정보제공 없이 현장에 투입되고 있어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 중환자실서 간호 보조사가 '검체 이송'…지침 '無'
강릉아산병원 중환자실에서 간호 보조사로 일하는 A씨(54)는 요즘 불안을 떠안고 업무를 하고 있다. 코로나19 검체 채취 '이송' 작업까지 담당하는 까닭이다. 문제는 관련해 지침이나 감염관리 교육이 전무한 상황에서 이송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이다.
A씨는 "이송하는 검체 채취가 양성인지 음성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검사실로 옮기고 있는데 정작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어떻게 옮겨야 하는지 등 지침이 없다"며 "중환자실에서 간호 보조사로 일하는 분들은 저를 포함해 모두 14명이 있는데 저희끼리 나름의 매뉴얼을 만들어 인계를 하는 실정"이라고 현실을 전했다.
실제 취재진이 내부 직원들을 통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간호 보조사들은 교대하면서 쪽지로 주의사항 등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 '쪽지'도 보조사들이 직접 적어 서로 전달하는 것으로, 체계적인 매뉴얼은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마디로 관리가 안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간호 보조사들은 강릉아산병원 하청업체 소속으로, A씨는 그 어느 때보다 "서럽다"고 토로하고 있다. A씨는 "저희 본래 업무는 주사기나 의료기구 관리 등이지만 현 시국이 시국인 만큼 검체 이송은 할 수 있다고 해도, 매뉴얼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들은 특히 전염에 취약한 이들이 머무는 만큼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 제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평소에도 원-하청 간 여러 차별이 있는데, 이번처럼 생명과 연관된 일에서 차별을 받으니 솔직히 자존심이 상한다"며 "내가 안 걸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같이 일하는 공간에서 직원이 걸리면 문제가 발생하니 다 조심해야 하는데, 여기에서도 원-하청 차별이 있는 건지 참 서럽다"고 성토했다.
무엇보다 간호 보조사들은 지난 1일 해당 병원 의료진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관련 정보를 뒤늦게 파악한 데다 정작 검사 대상에서도 제외됐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검사를 받게 해달라고 요구해서 검사가 진행됐다"며 "정보 전달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 감기 증상에도 출근 지시…콜센터 사각지대 '여전'
강릉아산병원 콜센터 직원들이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공간에서 근무하는 모습. (사진 강릉아산병원 노동조합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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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하청업체 소속 콜센터 근무자들의 안전도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강릉아산병원 노동조합위원회에 따르면 콜센터 직원 B씨(41)는 지난 27일 인후통 등 감기증상이 나타났다. 강릉지역에서는 지난 17일 확진자가 발생했던 터. B씨는 즉시 관리자인 현장 소장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열 증상은 없던 탓인지 소장은 출근을 지시했다. 동료직원 C씨(45)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구로 콜센터 집단감염 사태도 있었는데 너무 안일하다는 생각이 들어 직접 정규직 직원들에게 '이런 경우 어떤 지침이 있는지'를 물어봤다"며 "그런데 정규직 직원분들은 '열은 안 나도 목이 아파서 근무 배제가 된 적이 있다'고 말해 곧장 소장에게 건의했다"고 말했다.
C씨에 따르면 다행히 현장소장이 건의사항을 받아들여 B씨는 근무를 하지 않고 바로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C씨는 "동료가 바로 근무에 투입되지 않고 검사를 받은 것은 다행이지만, 만약 제가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아무도 관심이 없었으면 동료직원은 그냥 업무를 진행했을 것 아니냐"며 "하청업체가 지닌 '제도의 허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꼬집었다.
콜센터 직원 B씨는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명확한 지침이 없는 현시점에서 언제든 혼란이 반복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강릉아산병원 콜센터 상담원들은 현재 15평 남짓한 공간에서 17명이 다닥다닥 붙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릉아산병원 노동조합 이은경 위원장은 "전국적으로 콜센터 환경이 닭장 같다는 표현을 하는데, 이는 그동안 하청업체에 대한 관심이 없었기 때문으로 결국 콜센터 노동자들의 업무환경도 조명받지 못했다"며 "그런데 실상은 여전히 하청업체 콜센터 상담원들은 제대로 된 지침이 없어 혼란과 불안을 느끼며 업무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검체 채취 이송 역시 방호장비를 착용하고 벗는 등 안내나 설명은커녕 지휘체계도 없이 보조사들이 알음알음 내용을 전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감염위험에 노출된 상황으로, 이와 같은 현실이 바로 의료기관 내 '위험의 외주화'"라고 일갈했다.
◇ 코로나로 민낯 드러낸 원-하청…"건강권 침해됐다"
강릉아산병원 외부에 설치된 선별진료소. (사진=강릉아산병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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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코로나19 사태가 원-하청 민낯을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마스크 차별이 대표적이다.
부산도시철도 역사에서는 청소 업무를 맡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코로나19 대비용 마스크를 정규직보다 적게 지급받고 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그보다 앞서 현대자동차에서도 정규직 노동자들은 KF94 마스크 등 방역 성능이 좋은 마스크를 회사로부터 지급받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는 성능이 떨어지거나 면 마스크를 지급받아 이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여기에 더해 강릉지역 의료기관에서도 문제가 제기되면서, 전염병 재난 상황에서 하청업체 직원들의 '건강권'이 내몰렸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강릉아산병원 측은 "검체 이송 작업은 병원에서 확진자가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간호사분들이 100% 담당했지만, 이후 안정화하면서 보조사 분들이 담당하고 있는데 마스크와 방호복을 다 갖추는 등 안전수칙을 잘 지키고 있다"며 "콜센터 상담원의 경우에도 고열 등 증상이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이후 조처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원-하청 관계 속에서 하청직원들이 느끼는 소외감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저희는 감염병과 관련해 지침이나 정보제공을 제대로 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 현장에서 제대로 관리가 이뤄지는지 여부에 대해 저희도 더 들여다보고 신경을 쓰겠다"고 답변했다.
이와 관련해 노무법인 넥스트 최재원 대표는 "최근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을 보더라도 원청은 하청직원들에 대한 '건강보호 의무'가 있고, 여기서 코로나도 예외는 아니"라며 "소속과 상관없이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이라면 질병 영역에서도 최소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사각지대'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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