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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항공·호텔 하청 노동자들 무급휴직·해고 ‘잔인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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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 쪽 강요 잇따라 생계위기

정규직 예정 인턴직 신입도 잘려

고용유지지원금 제도 있지만

업체 쪽 임금 25% 부담마저 회피

노조 “영종 고용위기지역 지정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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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파라다이스 시티호텔에서 10년간 카지노 방문 외국인들을 위한 리무진 서비스를 맡았던 운전원 ㄱ(50)씨는 지난 12일 아침 동료 21명과 함께 날벼락 같은 해고 통보를 받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카지노 고객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일본 관광객이 줄어 이미 15일부터 운전원 39명이 1~2주 간의 무급휴직에 들어가기로 회사와 합의한 상태였다. 하지만 회사는 무급휴직 사흘 전에 돌연 입장을 바꿔, 17명을 제외한 나머지 운전원의 ‘감원’에 나섰다. 1년마다 근로계약을 다시 맺는 도급업체 소속 직원인 그는 23일 “지난 10년 동안 소속회사가 수차례 바뀌어도 고용승계가 안 됐던 적은 없었다. 운전원 대부분이 외벌이 가장인데, 당장 생계가 막막한 상황”이라며 “메르스나 사드 사태 때도 해고는 없었는데, 회사가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답답해했다.

코로나19로 공항과 호텔이 텅 비는 등 관련업계가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항공사와 호텔 등의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해고나 무급휴직을 강요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우선적으로 유급휴직을 실시하는 원청과 달리 이들은 곧바로 생계의 어려움에 내몰리는 격으로, 원청-1차 하청-2차 하청으로 내려갈수록 극심해지는 격차가 코로나19로 인한 일자리 위기로 또 한 번 확인된다.

대한항공 자회사의 하청업체 소속으로 대한항공 여객기 기내청소를 담당하는 청소 노동자 380여명은 최근 다음달 22일까지 전 직원의 80%가량이 무기한 무급휴직이나 권고사직에 동의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김태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장은 “회사는 최소 인력인 70명만 빼고, 나머지 310여명은 다음달 22일까지 모두 나가라는 입장”이라며 “심야조는 이달부터 6월까지 4개월간 무급휴직에 들어갔고, 촉탁직 40여명도 이미 권고사직으로 퇴사하는 등 직원들의 의사에 반한 강제적인 조처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의 해고 통보는 없더라도 수습기간인 인턴의 정규직 전환을 ‘볼모’ 삼아 정규직에게 무급휴직 신청을 압박한 경우도 있었다. 아시아나항공의 지상여객서비스를 담당하는 협력업체 ‘케이에이’(KA)에선 최근 6개월의 수습기간을 거쳐 다음달 14일 정규직 전환이 예정됐던 인턴직 신입사원들이 해고 통보를 받았다. 김지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아시아나지상여객서비스(KA)지부장은 “무급휴직 신청자가 적은 출입국팀의 경우 ‘(정규직 전환이 예정된) 인턴들을 안고 가려면, 무급휴직자가 늘어야 한다’며 직원들의 신청을 유도했지만, 결국 계약을 갱신하기 어렵다며 이달 중순께 4명의 인턴에게 해고를 사전고지 했다”며 “무급휴직에 들어간 정규직 역시 연장근로수당이 빠지면 최저임금을 받는 20대가 대부분인데, 지방에서 올라와 공항 근처에서 월세를 사는 직원들은 타격이 크다”고 상황을 전했다.

해당 업체들은 해고와 무급휴가를 밀어붙이는 이유로 “특별고용지원 업종에 포함되지 않아 휴업수당 신청이 불가능하다”거나 “휴업수당을 선지급할 자금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있다. 정부가 지난 16일 지정한 특별고용지원 업종은 여행업과 관광숙박업·관광운송업·공연업 4가지다. 코로나19로 큰 피해를 입은 이들 업종은 6개월간 휴업·휴직수당의 최대 90%를 정부에서 보전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하청업체들은 ‘기타 업종’으로 등록돼있어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부 지원이 전무한 건 아니다. 고용유지지원금 제도를 활용해 휴업·휴직수당의 최대 75%까지 보전받을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일까지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한 업체는 1만7866곳으로, 이 가운데 약 94%가 상시근로자 수가 30명 미만인 영세업체다. 항공사·호텔 하청업체들의 설명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사업주들이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으면 부담해야 하는) 25%의 지출마저도 거부하며, 노동자들의 희망퇴직·권고사직을 병행(유도)하면서 고용유지 노력을 하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공공운수노조는 특별고용지원 업종을 확대하는 한편, 인천공항 종사자의 약 30%가 거주하는 영종 지역(인천 중구)과 인천공항을 고용위기 지역으로 지정하고, 인천공항 전체 노동자의 ‘60일간 해고 금지’를 선포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고용위기 지역으로 지정되면 실업급여 수급기한 연장, 지역고용촉진지원금 지원, 취업지원서비스 등 종합취업지원대책 등의 시행된다. 이와 관련해 고용노동부 쪽은 “관련 고시에 따라 고용위기지역 신청 직전 1년간 고용보험 피보험자 증감률·구직급여 신규 신청자 수 등이 일정 요건을 넘어야 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한 피해 확산은 두 달이 채 안 된 상황”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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