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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소라넷 폐쇄 8개월…세상은 바뀐 게 없다[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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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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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원문은 2017년 2월 24일 작성됐습니다>

‘음란사이트 소라넷 전격단속’이라는 제목의 경향신문 기사는 “강남경찰서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회원수 60만명의 소라넷을 운영한 임모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호주에 체류 중인 사이트 대표 박모씨 등 4명을 인터폴과 공조해 추적 중”이라고 보도했다. “원천봉쇄 차원에서 일괄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경찰 관계자의 목소리를 담은 이 기사는 무려 2004년 6월18일자다. 이 기사 밑에 달린 “2013년 5월31일, (지금도) 소라넷 잘 돌아가네요^^”라는 댓글은 소라넷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준다.

2016년 6월6일 소라넷이 공식 폐쇄를 선언했다. 소라넷의 천적은 경찰도, 언론도 아닌 2015년 10월 개설된 ‘소라넷고발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작은 단체였다. 이른바 ‘골뱅이 범죄’. 초대남(공범)을 모집해 술 취한 여성을 대상으로 강간 모의를 하는 정보 창구 역할을 했던 소라넷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이를 사법당국에 고발했던 그 단체는 과연 소라넷 폐쇄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뒤 예정된 해피엔딩을 맞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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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디지털성폭력아웃(http://www.dsoonline.org/, 이하 DSO)’의 하예나 대표를 만났다. “소라넷이 없어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취중 강간에만 집중하다보니 소라넷뿐 아니라 인터넷 전반에 광범위하게 확산된 ‘몰카’ 성폭력에 힘을 쓰지 못한 것이 아쉬워졌죠.” 그래서 이들은 2016년 3월 팀을 재결성했다. DSO의 조사에 따르면, ‘몰카’ 게시물은 휴대폰 카메라가 상용화된 2001년 온라인에 올라오기 시작해 스마트폰이 보급된 2011년부터 급증했다. 상승세가 잠시 주춤했던 때는 휴대폰 촬영 시 ‘찰칵’ 하는 신호음이 의무화된 2006년 무렵이 유일했다.

결성 초반에는 하 대표가 아르바이트를 해 활동비를 채웠다. 강연 요청이 늘어나며 수입이 생기고 후원금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월세 내기도 빠듯하다. 열악한 환경을 지탱하게 하는 힘으로 하 대표는 동료를 꼽았다. 3기까지 이어져오며 많은 대화를 통해 운영방식을 개선해왔다. 20대 초반의 하씨가 대표를 맡은 것이나 서로의 본명을 언급하지 않고 닉네임(활동명)으로 뭉친 것은, 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본관 점거농성을 할 때 서로를 벗으로 부르면서 수평적인 입장에서 연대했던 이화여대생들을 연상시킨다.

하 대표의 닉네임인 ‘하예나’는 모계사회를 이루는 대표적인 동물 하이에나에서 따왔다. 지구력이 강한 면도 닮고 싶다고 했다. “부모님이 아들인 오빠에게는 재수를 허락하면서 저에게는 안된다고 하셨어요. 실제 재수학원에 가보니 남자반은 4개인데, 여자반은 한 반밖에 없더라고요. 성장하면서 느껴왔던 의문이 실제 불합리한 차별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학업을 미루고 페미니즘 활동을 하다가 이곳에 합류하게 됐죠.”

DSO 사무실에는 상주 활동가 4명 외에 고양이 3마리가 있다. 하루 종일 인터넷에서 성범죄 영상을 찾아다녀야 하는 정신적 고통을 정화하기 위해 의지하는 존재들이다. 모니터링팀에서 강간 모의를 포착해 직접 경찰서를 찾은 것이 지난달만 해도 4번이다. 아마추어였던 멤버들은 어느덧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과 관련 법률의 달인이 됐다. 하 대표는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강간 모의를 신고해도 장난일 거라며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경찰”이라고 했다. ‘내가 피해자가 되더라도 경찰은 도와주지 않겠구나’ 싶은 생각은 하 대표가 이 일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직접 문을 두드리는 피해자에게 대응 절차를 안내하는 것도 무게를 두는 업무 중 하나다.

최근에도 DSO는 남성이 우는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강간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 한 건을 신고했다. 그 영상은 지금도 인터넷에서 검색이 가능하다고 했다. ‘야동’의 전파력은 바퀴벌레에 비할 수 없을 정도다. 하 대표는 “ ‘야동’이 아니라 ‘성범죄영상’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시트콤을 통해 ‘야동 순재’ 캐릭터가 인기를 끌었을 당시 음란물 관련 검색트렌드가 3~4배 증가했다. 귀여움을 끼얹은 ‘야동’이 익숙한 대중어가 되는 사이 죄의식은 지워졌다는 것이다.

야한 동영상, 야릇한 동영상의 주인공은 직업 배우가 아니라 일반인으로 대체된 지 오래다. 한국에서 포르노 유통 및 제작은 엄연히 불법이지만, 일반인 여성 대상 성범죄 동영상은 ‘국산 야동’이란 애칭까지 얻어 유통되고 있다. 하 대표가 개인 간 파일을 공유하는 P2P사이트에서 ‘국산’이란 단어를 검색창에 넣자 1만3800개의 게시물이 쏟아졌다.

그는 “음란물이라는 말 자체를 사용하면 안된다. 음란물 자체가 가해자 시점의 단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중생을 집단 강간한 후 유기해 사망에 이르게 한 가해 학생들은 방송 인터뷰에서 포르노를 보고 따라했다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게 포르노였을까요? 그들이 본 것은 ‘범죄 영상’이었어요. 성범죄를 즐기고 범죄를 성으로 인식한 거죠.”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몰래카메라 피해자의 95%는 여성이고 그중 절반 이상인 54%가 10~20대였다.

성범죄 사이트는 반드시 단짝과 함께한다. DSO의 조사에 따르면 해당 사이트의 85.7%에서 성매매 광고가, 59.5%에서 최음흥분제 같은 불법 약물 광고가 발견됐다. 여성의 성적 대상화도 심각한 수준이다. ‘일반인 여성’ 카테고리가 버젓이 존재한다.

교복 입은 여고생의 단체 사진, 일반 여성의 얼굴 셀카도 단골 게시물이다. “이제 여성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음란물’이 되었다”며 한숨을 내쉬던 하 대표는 “무서운 건, 그 사진을 올리는 이들이 그 사람들의 지인이라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스마트폰 보급률 90%가 넘는 대한민국에서 누구나 몰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이제 진부할 정도지만, 가해자에 대한 관련 법률이나 처벌은 여전히 미미하다. 경찰청 카메라이용촬영 범죄 통계에 따르면, 2015년 관련 범죄 신고율은 5년 전보다 6배가량 증가했고, 검거율은 97.6%에 달했다. 그러나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기소율은 31.2%에 불과했다.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찍힌 사람 잘못 아니야?”라는 말은 2차 가해와 다를 바 없다. 그러다보니 피해자들은 법의 힘보다 자신의 모습이 찍힌 불법 동영상을 삭제하기 위해 ‘디지털 장의사’에게 의지하게 된다. 하 대표는 “피해자들이 불법 동영상 삭제를 업체에 맡기면 한 달에 드는 돈만 300만원이라더라. 12개월분을 결제하면 할인해 준다는 얘기도 들었다”면서 “피해자 보호를 위한 사법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신호등이 있다고 모든 교통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지 않나”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하 대표의 얼굴 사진을 촬영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게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얼굴이 노출되면 하예나라는 여성 개인을 지키는 것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가장 컸다. DSO는 그동안 남성혐오 조장을 위해 만들어진 단체라는 비난부터 여성가족부 산하 조직이라는 오해까지 받아왔다. “원초적인 욕설은 오히려 공공기관에 디지털 성범죄의 현실을 전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할 정도로 단단해졌지만, 시위에 나선 이대생들의 얼굴을 가린 마스크처럼 아직 이 땅의 여성들에게는 최소한의 방패가 필요하다. 하 대표는 “더 이상 저희가 이런 활동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여성의 기본권을 지킬 수 있는 엄격한 법안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글의 원문은 2017년 2월 24일 작성됐습니다>



장회정 기자 longcut@kyunghyang.com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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