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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는 올 초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다. 1월 29일 부산을 방문한 프랑스 르노그룹의 호세비센테 데로스 모소스 제조총괄 부회장이 “르노삼성 부산공장을 미래 자동차 첨단산업기술 공장으로 키워보자”고 오거돈 부산시장에 직접 제안했기 때문이다. 르노삼성자동차의 모기업 2인자의 이 같은 극적인 제안은 지역경기 침체를 극복하는 돌파구가 될 것으로 여겨졌다. 르노그룹에서 관련 내용을 정식 발표하는 시점에 맞춰 친환경 자동차 기술개발 지원을 위한 15억 원 투자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2월 중 진행하려던 르노와의 실무협의는 진행되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이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올해 각종 산업을 유치해 지역경제 활성의 기회로 삼으려던 지방자치단체들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위험에 놓였다. 자동차, 항공 등 핵심 산업들이 줄줄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관련 산업을 동력으로 삼고 있는 지자체들은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이달 31일 핀란드 국적사인 핀에어가 김해국제공항~헬싱키 노선을 취항하려던 계획을 7월로 잠정연기하자 부산시와 경남도는 조바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두 지자체는 첫 유럽노선인 핀에어의 취항을 계기로 인천국제공항에 이은 제2 허브공항을 동남권에 조속히 마련해야한다는 여론 조성에 나서려고 했지만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핀에어 취항뿐 아니라 일본 중국 러시아 동남아로 뻗어가던 김해공항의 국제선은 코로나19로 사실상 마비됐다. 지역 저비용항공사(LCC) 에어부산은 국제선이 모두 멈췄고, 직원들은 휴직에 들어가면서 이 지역 항공산업의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할 판이다. 항공업뿐 아니라 이와 연관한 관광, 운송 산업이 총체적 마비 상태다. 부산시 관계자는 “헬싱키 취항을 앞두고 대내외로 여러 홍보활동을 준비했던 게 모두 중단됐다”며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되면 바로 LCC를 살리기 위한 지역 캠페인을 벌일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자동차와 항공은 업종 특성상 대표 산업이 어려움을 겪으면 그 영향은 후방산업으로 고스란히 이전된다. 최근 울산시와 지역 자동차 부품사들이 현대자동차 사측과 노동조합에 현재 주 48시간인 근무 체제를 주 60시간으로 한시적 연장해줄 것을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자동차 공장이 멈추면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사도 그만큼 매출 손실을 입고, 공장 근로자들에 의한 지역 내 소비활동도 타격을 받는다. 현대차는 올해 팰리세이드, 그랜저를 비롯해 제네시스 차종들의 판매호조를 예상했기에 코로나19 타격으로 인한 생산중단은 더욱 뼈아프다.
새롭게 지역의 산업지형을 바꿔보려던 지자체는 첫 걸음조차 떼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전북 부안군은 올 초 유럽의 유명 완성차 업체로부터 연료전지 연구개발(R&D) 관련 문의를 받았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이 있는 부안의 신재생에너지단지에서 수소연료전지차에 필요한 R&D가 이뤄지고 있음을 주목한 것이다. 이 회사의 R&D 임원들은 2월 말 부안군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방한을 취소한다고 통보해왔다. 부안군 관계자는 “해당 업체에서 직접 부안군에 연락을 해왔다는 점에서 어떤 논의를 나눌지 기대가 컸다”며 아쉬워했다. LCC 플라이강원 취항을 계기로 양양국제공항 중심의 항공·관광산업 진흥을 기대했던 강원도는 당장 플라이강원의 생존을 걱정해야할 처지다.
김영수 산업연구원 부원장은 “지역들이 추진했던 사업들은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우리의 미래 먹을거리”라며 “추진 동력이 꺼지지 않도록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거래 상대방들과의 교류가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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