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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원 연구생 최철한은 1997년 5월 프로 세계에 들어갔다. 12세2개월이었다. 거의 1년 뒤 동갑내기 연구생 원성진이 초단을 땄다. 박영훈은 연구생을 나와 아마추어 대회를 다녔다. 아저씨 강자들은 아마추어대회에 나온 어린이 볼을 꼬집었다. 어린이는 강자들과 실전으로 나날이 강해졌다. 초등학생은 1997년 전국대회에서 우승이란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1998년 아마대회 4관왕 '어린왕자'는 1999년 12월 프로로 넘어간다. 열여섯 살 박영훈은 2001년 전국대회인 천원전에서 우승했다. 2단이란 낮은 단으로 우승한 기록은 여전히 공동 1위로 남아 있다. 3단 최철한은 2000년과 2001년 잇달아 농심신라면배 예선을 뚫고 한국 대표로 뛰었다. 원성진은 청소년대회에서 두 차례 2위에 올랐다. 바둑 동네에서는 소띠 셋을 묶어 '송아지 3총사'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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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로 지키지 않았다. 박영훈은 흑51로 급소를 두드리고 53으로 쫓았다. 손을 빼고 둔 곳이니 백54, 56으로 밀어 낮은 자리에서 사는 모양을 갖추는 것이 창피한 일은 아니다. <그림1>과 <그림2>는 어떤가. 백이 얼른 가운데로 나갔지만 알맹이는 흑이 갖는다. 하나는 위쪽 흑집이 불어난다. 다른 것은 왼쪽 흑 모양이 넓어진다.
[김영환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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