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에서 채권 발행 주관 업무를 맡고 있는 임원은 23일 "시장의 자금 흐름을 풀어주지 못할 경우 기업의 도산 등 심각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며 이렇게 말했다. 현 상황은 (금융, 증권 회사가 모여있는) 여의도가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실제 최근 돈의 활로를 풀어줘야 하는 자본시장 곳곳에서 경고음이 들린다. 회사채 발행, 유상증자, IPO(기업공개), 투자, M&A(인수합병) 등 모든 영역에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자본시장 개점휴업'이나 마찬가지다.
(서울=뉴스1) 김진환 기자 =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유례없는 패닉장세를 겪고 있는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가 전 거래일 대비 95.95 포인트(6.13%) 하락한 1470.20를 나타내고 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246.5원)보다 26.5원 오른 1273.0원에 출발했다. 2020.3.23/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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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채 발행, 수요가 없다" 올해 116조원 만기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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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회사채 4월 위기설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하나은행(신용등급 AA), 포스파워(AA-), 키움캐피탈(BBB+)이 자금조달을 위해서 회사채 발행 수요예측에 나섰지만, 모두 목표 금액을 채우지 못했다. 신용등급이나 기업의 체력과 관계없이 회사채 발행 시장 전반적인 투자 수요가 눈에 띄게 위축됐다.
이 같은 시장 기조가 이어질 경우 안 그래도 위축된 DCM(부채자본시장) 시장 분위기는 더욱 침체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3월 남은 기간 동안 대림산업(AA-)을 제외하면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 나서는 기업이 없다. 수요가 없으니 발행 의지도 꺾인 셈이다.
회사채 발행 시장이 얼어붙은 가운데 오는 4월 대규모 사채의 만기가 예정돼 있어 기업의 자금 경색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그 규모가 6조5495억원으로 금투협이 통계를 발간한 1991년 이래 최대다. 정부의 신속한 정책 지원이 없을 경우 일부 기업의 유동성에 심각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김은기 삼성증권 수석 연구위원은 "정부가 채권시장안정펀드 카드를 들고 나왔는데, 2008년 효과를 봤던 만큼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며 "하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당장의 단기자금시장의 경색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3월말까지 단기자금 만기의 차환이 필요해 채권시장안정펀드보다 단기자금시장에 유동성 공급을 위한 조치가 시급하다"고 분석했다.
시기를 올해 상반기, 연말로 넓히면 우려는 더 커진다.
SK증권에 따르면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금융채 제외)와 CP, 전단채(전자단기사채)는 총 116조원 규모다. 이 중 회사채가 약 37조원, CP 및 전단채가 약 79조원이다. 오는 6월 이전 만기가 도래하는 A0 이하 등급 회사채는 총 1조7390억원 규모다. 대한항공 2400억원, 하이트진로 1430억원, 코오롱인더스트리 1300억원 등이다.
윤원태 SK증권 연구원은 "연간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와 CP 등을 고려하면 채권시장안정펀드 10조원은 부족해 보인다"며 "보수적으로 올해 상반기 만기 도래 회사채와 CP, 전단채의 50% 이상이 상환이 안 된다고 보면 대략 15조원 이상은 있어야 안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코로나19)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23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환전소 안내판에 환율이 1268.00원을 나타내고 있다. 2020.3.23/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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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는커녕..포트폴리오 기업 부실 걱정하는 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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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M(주식자본시장) 시장도 마찬가지다. 상장사 중 밸류에이션이 청산 가치보다 떨어진 기업이 속출하면서, 증자를 통한 자금조달도 막혔다.
투자 심리도 악화일로다. 주식 유통 시장이 급격히 무너지면서 투자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적 위기로 접어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 시장 전반적으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금융기관 역시 자금 집행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투자 집행을 검토하기보다 이미 투자한 자산의 부실을 어떻게 막느냐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내 투자 시장에서 엑시트(투자금 회수)의 가장 큰 활로인 IPO(기업공개)가 막히면서 기업에 자금을 대야 할 벤처캐피탈(VC)이나 PE(프라이빗에쿼티)의 활동에도 제약이 불가피하다.
실제로 최근 IPO(기업공개)에 나선 기업 중 한국거래소의 상장심사를 통과한 뒤 공모 과정에서 투자 수요를 끌어내지 못하고 마지막 문턱에서 주저앉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이렇다 보니 투자 철회 사례도 잦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보유중인 코스닥 상장사 카프로 주식 382만5740주를 우현 및 울산스틸이엔지에 매각하는 계약을 지난 2월 28일 체결했지만, 지난 20일 주식매매계약을 철회했다고 공시했다. 코스닥 상장사 매직마이크로는 코리아리츠를 대상으로 300억원 규모의 CB(전환사채) 발행을 추진했지만, 결국 지난 20일 사채대금 미납에 따라 발행을 철회했다.
한 벤처캐피탈 관계자는 "IPO를 통해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데, IPO가 안 되니 새로운 투자처에 대한 자금 투입 자체가 어려워진 상황"이라며 "최근 증시 급락으로 밸류에이션이 단기간에 크게 변하다보니, 대부분의 벤처캐피탈이 투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투자 운용역은 "우선 주식시장이 안정돼야 목표 수익률도 산정도 가능한데 지금은 어디가 바닥인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크다"며 "투자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기보다 이미 투자한 포트폴리오의 기업의 부실을 막는 데 더 집중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도윤 기자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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