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된 '양대 지침' 내용인 저성과자 해고 등 공개적으로 요구
양대 노총 "노동자 벼랑 끝으로 몰아…반사회적 작태"
끝이 안 보이는 코로나19… 글로벌 경제 쇼크 우려 (CG) |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 위기를 이유로 경영계가 '쉬운 해고'를 가능하게 하는 입법을 공개적으로 요구해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져 기업의 경영난이 심화할 경우 이 문제를 둘러싸고 노사 갈등이 격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경영계를 대표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23일 경영계가 요구하는 입법 과제를 담은 '경제 활력 제고와 고용·노동시장 선진화를 위한 경영계 건의'를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경총은 건의에서 한국 경제가 코로나19 사태로 '역사적으로 가장 심각한 위기 국면'에 들어섰다고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40개의 입법 과제를 제시했다.
특히, 경총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위해 '직무 수행 능력이 현저히 부족한 저성과자'는 합리적 기준과 절차에 따라 해고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할 것을 제안했다. '일반 해고'를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경영상 이유로 해고할 경우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규정을 완화해 '(인력 감축 등) 경영 합리화 조치가 필요한 경우'도 해고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총은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하려면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도록 한 근로기준법 규정도 개정할 것을 요구했다. 경영 환경 변화로 불가피할 경우 '노사 협의'만으로도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 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는 2016년 1월 박근혜 정부가 행정 지침인 이른바 '양대 지침'으로 도입했던 것으로, 노동계의 격렬한 반발을 샀다. 당시 노동계는 일반 해고가 고용 안전망이 취약한 한국 사회에는 부적합하며 노조 탄압에 악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16년 1월 양대 지침 폐기를 요구하는 노동계 집회 |
'노동존중사회'를 내걸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2017년 9월 양대 지침을 공식 폐기했다. 이후 일반 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는 노사관계의 이슈로 떠오르지 않았다.
경총이 한동안 수면 아래 있던 요구 사항을 다시 꺼낸 것은 코로나19 사태로 기업의 경영난이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둔 선제 조치라는 관측이 나온다. 경기 악화가 본격화하면 고용 안정 문제를 둘러싸고 노사 갈등이 첨예해질 수 있다.
경총은 노동시장 유연화 제고 방안 외에도 법인세와 상속세 인하, 사업장 내 시설 점거 형태의 쟁의행위 금지, 쟁의행위 기간 대체근로 전면 금지 규정 삭제, 사용자 부당노동행위 처벌 규정 삭제, 경영인의 경제 범죄 가중 처벌 기준 완화 등을 국회에 건의했다.
노동계는 국가적 위기를 맞아 힘을 모아야 할 시기에 경영계가 '탐욕'을 채우기 위한 요구로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에서 "전 세계가 코로나19를 빠르게 극복하기 위해 긴장하고 있고 코로나19 이후를 내다보며 경제 대책을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해고를 자유롭게 해달라는 게 과연 정신이 있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민주노총은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전 국민이 어떻게 단결해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할 것인가 고민하고 지혜를 모아야 하는 지금, 재난을 기회로 자본의 탐욕을 채우려는 반사회적 작태"라고 지적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경총의 법인세 인하 요구에 대해 "법인세는 사업에서 생긴 소득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소득이 없는 경우 부과하지 않는다"며 "경총은 지금의 위기를 틈타 또다시 재벌 대기업의 배를 채우려고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ljglo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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