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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금)

감염자 세계 5위인데.. 독일 사망자 적은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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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환자 평균 63세·독일은 47세

1인당 보건 예산 독일이 스페인의 2배

이탈리아와 달리 환자의 지역 쏠림 없어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장 심각한 곳은 이제는 발원지 중국이 아니라 유럽이다. 유럽의 사망자는 21일을 기점으로 중국의 2배가 됐다. 유럽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둘러싼 미스터리가 있다. 유독 독일의 사망자가 적다는 게 눈에 띈다. 22일까지 독일은 감염자는 2만4852명으로 세계에서 5번째, 유럽에서 3번째로 많다. 그러나 독일 내 사망자는 94명에 그친다. 숨진 사람이 이탈리아 5476명, 스페인 1756명, 프랑스 674명인 것과 비교하면 놀랄 만큼 적은 숫자다. 독일의 감염자 대비 사망자 비율은 0.38%로서 세계 평균치(4.4%)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유독 독일에서 인명 피해가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독일의 환자들이 젊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로 지목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고령자에게 특히 취약하다. 어떤 연령대의 환자가 감염되느냐가 사망률과 직결된다. 일간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감염자 평균 연령이 독일은 47세이고, 이탈리아는 63세라고 보도했다. 고령자가 집중적으로 감염되는 이탈리아와 젊은이들이 감염되는 독일의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한국의 질병관리본부에 해당하는 로베르트코흐연구소(RKI)도 독일 내 감염자의 70%가 20세에서 50세 사이라고 분석했다. 일간 베를리너모르겐포스트는 “독일의 코로나 환자 중에는 스위스, 이탈리아 등에 스키 여행을 갔다가 감염된 젊은이들이 많고 이들이 또래에 옮겼다”고 했다. 독일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1%로서 23%인 이탈리아보다 고령자 비율 자체가 낮다. 또한 독일은 노인복지시설의 위생 상태나 시설 수준이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한수 위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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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연합뉴스 지난 18일 독일 뮌헨의 한 공원에서 경찰관들이 한 데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는 젊은이들에게 떨어져 앉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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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인 관점의 원인 분석도 이뤄진다. 이탈리아가 북부 롬바르디아주에서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번지면서 정부가 손을 쓰지 못한 것과 다르게 독일에서는 국지적으로 여러 지역에 환자가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 지역사회별로 대응할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주간지 슈피겔은 “특정 지역에 환자 쏠림 현상이 벌어지지 않으면서 거의 모든 지역이 아직까지는 중환자를 전부 감당하고 있다”고 했다. 독일은 주(州)별로 의료행정이 완전히 독립돼 있다. 각 주별로 지역사회 감염을 막기 위한 총력 대응이 펼쳐지고 있고, 주 보건당국끼리 정보 공유도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비참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이탈리아 북부는 공업지대가 밀집돼 있어 유럽 내에서 가장 대기오염이 심각한 지역으로 꼽힌다. 반면 독일은 공장이 특정한 지역에 집중 분포돼 있지 않기 때문에 대기의 질이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다. 이탈리아가 평소 폐질환을 앓는 고령자가 많은 가운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급습하자 사망자가 많이 나오는 반면 독일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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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 18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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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중환자를 살릴 수 있는 의료 장비를 유럽에서 가장 잘 갖추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이다. 생사(生死)를 가르는 핵심 잣대인 인공호흡기 숫자에서 독일이 다른 나라들을 압도한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와 프랑스의 르피가로에 따르면, 독일은 전국에 중환자용 병상을 2만8000개 갖추고 있으며, 그중 2만5000개 병상에 인공호흡기를 구비하고 있다. 프랑스가 1만2400개의 중환자용 병상을 갖고 있고 그중 약 5000개 병상에만 인공호흡기를 갖춘 것과 비교해 훨씬 앞서 있다. 영국 역시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인공호흡기가 5000개 남짓에 그친다. 인명피해가 집중된 이탈리아는 약 3000개의 인공호흡기로 전국민이 버티고 있다. 인구 1000명당 병상 숫자(OECD 2017년)도 독일은 8개로서 프랑스(6개), 이탈리아(3.2개), 스페인(3개), 영국(2.5개)을 압도한다.

독일이 의료 장비를 월등히 잘 갖춘 이유는 유럽 최대 경제대국으로서 건실한 재정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대다수 유럽 국가들은 사회주의 복지 모델을 기본틀로 채택하고 그에 따라 공공 서비스 중심으로 의료 체계가 굴러간다. 시스템상으로는 대동소이하다는 얘기다. 따라서 정부가 얼마나 보건·의료 부문에 투자할 여력이 되느냐가 의료 수준을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국민 1인당 보건 예산(세계은행 2016년)으로 독일은 4714달러를 썼다. 프랑스(4263달러), 영국(3958달러)보다 눈에 띄게 높고, 이탈리아(2738달러), 스페인(2389달러)과 비교하면 2배에 가깝다. 독일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에 투자할 능력이 있는 반면, 포퓰리즘에 기반해 퍼주기식으로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한 남유럽 국가들은 보건·의료 분야에 돈을 쓸 여력이 부족하다. 나라 살림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인 경제규모(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2019년 IMF)을 보면 독일이 58%로서 G7(선진 주요 7개국)에서 가장 낮다. 이 비율이 영국(85%), 프랑스(99%), 이탈리아(133%) 스페인(96%)은 독일보다 두드러지게 높다.

조선일보

/AP 연합뉴스 지난 18일 독일 서부 도시 오르반하우젠에서 드라이브인 방식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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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률이 낮다고 해서 독일이 안심할 처지는 아니다. 슈피겔은 “독일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 아직은 초기 단계”라며 “독일보다 먼저 바이러스가 퍼진 이탈리아에서 감염 후 3~4주간 사투를 벌인 사람들이 최근 들어 숨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독일 내 감염자가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사망자가 크게 늘어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환자들 중에 젊은이가 많다는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서로간에 무차별적으로 빈번하게 접촉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독일은 아직도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과 달리 전국민 이동 금지령을 내리지 않고 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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