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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교도소 복도 울리는 65명 감기기침에 공포”…재소자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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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평 방에 8~10명 집단 수용돼 방역 뚫릴 땐 속수무책 우려

수감자들, 면마스크도 사기 어려워 “확산 진원지 안 되도록 대비해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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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 불안한 마음입니다.”

경기도의 한 교도소에 수감 중인 ㄱ(31)씨는 코로나19가 확산하는 걸 지켜보며 “그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안전하기를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교도소는 감염병에 취약하다. 가로 3.5m, 세로 4m가량의 공간에 8~10명이 살을 맞대고 지내는 방에서 수감자들의 침(비말)은 쉽게 섞인다. 정신병원 폐쇄병동보다 강력한 ‘배양접시’다. 외부와 단절된 환경이라고 하지만 일부 교도소에서 교도관과 재소자가 확진 판정을 받은 일도 있다. 지난해 8월부터 수감 중인 ㄱ씨는 22일 감염병에 취약한 수감시설에 대한 걱정을 담은 편지를 <한겨레>에 보내왔다.

코로나19가 국내에서도 조금씩 퍼져나가던 지난달 초, ㄱ씨가 수감 중이던 교도소에서 감기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감기가 퍼져나간 일주일 동안 ㄱ씨는 “감옥의 생활 방식이 얼마나 전염병에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온몸으로 경험했다”고 돌이켰다. 감염 경로도 알 수 없는 감기에 ㄱ씨가 수감된 시설 2층에 있던 재소자 대부분이 무기력하게 감염됐다. “8개의 방이 공유하던 복도에서 울려퍼지는 65명의 기침과 신음 소리는 기괴한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인 고통의 시간으로 기억됩니다”라고 ㄱ씨는 적었다.

교도소 쪽의 대처는 황당했다. “목욕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방역의 기본인 위생수칙을 무시한 방침이었다. 이틀이 지나자 통제 불능한 상황으로 감기가 퍼져 65살 이상 노약자들을 격리수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ㄱ씨는 “한 청년은 참다못해 교도관에게 ‘한 달 전 중국에 방문한 적이 있어 폐렴일 수 있으니 나를 독방으로 격리수용해달라’고 호소했다”고 전했다. 다행히 복도를 뒤덮었던 기침의 정체는 감기였고, 이내 자취를 감췄다. ㄱ씨는 “만약 코로나19가 유입되면 어떤 상황이 펼쳐지게 될지 너무도 선명히 그려진다”고 했다.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은 좁은 방 안에서 24시간을 함께 보낸다. 양쪽 벽에 4명씩 앉으면 방이 꽉 찰 정도로 비좁다. “잠을 잘 때는 서로가 서로에게 부딪히지 않도록 옆으로 누워 자거나 새우처럼 구부린 자세로 잠을 자야 하지요.” 그는 또 “8명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의 유일한 청결시설이 변기 1칸과 수도꼭지”라며 이곳에서 용변을 보고 목욕, 빨래, 설거지도 해결한다고 호소했다. 교도관들이 마스크를 쓴다지만, 수용자들은 마스크를 구하기도 어렵다. 과거 일주일에 한 번 살 수 있었던 면마스크는 이제 팔지 않는다.

“좁은 공간에 격리된 수용자들은 감염병 위기 단계가 ‘심각’하더라도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ㄱ씨는 호소했다. “지금과 같은 재난 상황을 반면교사 삼아 교도소 시설도 미리 대비해두어야 격리시설이 감염병 확산의 중심이 되는 사회적 비극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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