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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계절을 느낀다는 것[내가 만난 名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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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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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랑 작가·뮤지션


‘나의 뇌에는 자연경관이 주는 위로가 필요하다.’

―에마 미첼 ‘야생의 위로’

일도 사람도 음악도 위로가 되지 않는 날이 있다.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고 나 스스로가 너무 하찮게 느껴지는 날에는 일찍 잠에 빠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마음이 어려운 날엔 잠조차 어렵다. 나는 십수 년간 프리랜서 창작자로 살아오며 내 것을 만들어 왔고, 슬럼프나 스트레스는 자극적인 것들로 풀어 왔다. 하루 종일 게임을 하거나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인다. 이렇게 자기 파괴적 스트레스 풀기는 한시적으로 효과적이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더 효과적인 것은 어두운 마음에 빛을 쬐어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마음건강을 챙기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머릿속이 진흙탕으로 가득 차 무언가 뚜렷하게 볼 수 없을 때마다 나는 식물의 이파리를 만지는 긴 산책을 나간다. 어디서나 찾을 수 있는 풀 한 포기, 도시의 용감한 나무들을 한참 바라보고 그 사이를 거닐고 나면 머릿속에도 차가운 바람이 한 차례 불고 지나가는 듯한 효과를 얻는다. 봄에는 봄꽃을 구경한다. 언제 겨울이었냐는 듯 피어나는 봄꽃이 아름답다. 여름에는 수분이 가득한 여름 과일을 먹으며 열을 식히고, 가을에는 낙엽을 즐긴다. 겨울에는 눈을 밟고 겨울의 나무들을 응원한다.

그 계절에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열심히 느끼고, 그 계절에만 볼 수 있는 것,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잊지 않고 먹는다.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연경관이 주는 위로를 챙긴다. 그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좋은 것들을 몸과 마음속 어딘가에 차곡차곡 저장해 두는 기분이 든다. 늘 존재하던 것들, 그래서 더 지키고 싶은 것들, 우리 이전부터 자리하고 있으며 아름답게 빛나던 것들이 모두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부드럽게 마음을 만져준다.

임이랑 작가·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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