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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줌인]방호복에 숨가빠도, 집에 못 들어가도…"우린 힘들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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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싸우는 백의전사' 서울의료원 간호사를 만나다

환자들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보살피는 간호사들

레벨D 방호복 부족…한번 입으면 최대한 진료

간호사 30% 집에 못 가…"예산 제약에 숙소 못 늘려"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힘든 점이요? 없어요. 환자들이 의지할 사람이 간호사밖에 없는데 우리가 힘들면 안 되죠.”

지난 20일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7층에 마련된 코로나19 전담병동 통합상황실. 이 곳에서 만난 81병동 소속 심예진(33) 간호사는 야무진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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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전담병원인 서울의료원 81병동 간호사들이 지난 20일 8층 음압병실로 올라가기에 앞서 7층 상황실 출입구 앞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사진=양지윤 기자)




심 간호사가 일하는 서울의료원은 서남병원과 함께 서울시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돼 지난달 28일 첫 입원환자를 받았다. 환자 급증으로 병실부족 대란이 현실화하자 기존 입원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고 8~13층에 음압병실 119개를 마련했다. 음압병실은 병원 내부 기압을 외부보다 낮춰 병원균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만든 병실이다.

지난 20일 현재 누적 입원환자는 124명, 이중 29명은 퇴원했고 95명이 치료 중이다. 서울의료원의 코로나19 치료전담 간호사는 370여명으로 81병동은 지난 13일부터 음압병상에 투입됐다. 수간호사를 포함해 총 33명이 8시간씩 3교대 근무를 하며 7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다.

◇방호복·고글·마스크…2시간이면 기진맥진

기자가 방문한 7층 통합상황실은 병실을 모두 비우고 마련한 ‘컨트롤타워’다. 방마다 진료기록을 관리하는 PC와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다. 81병동 상황실에 들어서자 일곱여덟명의 간호사들이 오밀조밀 모여 앉아 매의 눈으로 CCTV를 응시하고 있었다. 환자에게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레벨D 방호복을 입고 곧바로 8층으로 뛰어 올라가기 위해서다.

심 간호사는 두 시간 전 8층에 급하게 다녀왔다. 환자 팔에서 수액 주사 바늘이 빠지는 돌발상황이 터진 것. 그러나 서둘러도 준비에만 최소 5분 이상 걸린다. 방호복과 고글, N95의료용 마스크, 모자, 장갑 등 보호장비를 완벽하게 갖춘 뒤 병실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전국적으로 의료용 마스크와 레벨D 방호복 수급이 여유롭지 않은 터라 병실로 향하는 간호사들의 각오는 비장하다. 신경숙 81병동 파트장(수간호사)은 “의료용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숨쉬기가 힘들어서 2시간이 지나면 급격히 피로감이 몰려오지만 다른 지역의 레벨D 수급 사정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병실에 가면 최대한 오래 머물면서 환자를 돌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는 게 모든 간호사들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라고 했다.

간호사들은 환자들의 심리적 안정에도 각별히 신경을 쓴다. 창문도 열지 못하는 병실에서 며칠째 홀로 치료를 받아야 하다 보니 불안감을 느끼는 환자들이 어느 때보다 많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입원한 유럽인 A씨도 그 중 하나다. 입원 후 줄곧 한국어로 ‘감사하다’, ‘미안하다’고 했던 그는 전날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서자 구석으로 숨었다. 자신에게 가까이 오면 감염될 수 있어 위험하다는 이유로 의료진을 피한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 신 파트장이 손을 꼭 잡아주자 A씨는 “고맙다”고 말하며 안정감을 찾았다고 한다.

신 파트장은 “고국에서 아버지가 확진 판정을 받은 데다가 유럽 전역에서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마음이 더욱 착잡해진 것 같다”면서 “빨리 나아서 일상으로 복귀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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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층 상황실에서는 각 병동 담당자들이 CCTV를 통해 환자들의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사진=양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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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자랑스럽지만 친구들에겐 비밀이야”…81병동 간호사 3분의 1일은 집 떠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가족들과 떨어져 숙소에서 지내는 간호사들도 늘고 있다. 81병동에는 3분의 1에 해당하는 9명의 간호사가 병원에서 마련해준 숙소에서 출퇴근을 한다. 8살과 6살 아들 둘을 키우는 ‘워킹맘’ 김아름 간호사(37)도 그 중 한 명이다. 아이들은 남편이 연차를 내고 시부모님과 함께 돌보고 있다. “엄마는 환자를 치료하는 자랑스러운 일을 하러 간 거야. 훌륭한 일을 하시지만 친구들에게는 비밀이야.” 하루는 며칠째 엄마를 보지 못한 큰 아들이 울음을 터뜨리자 남편이 아들을 앉혀 놓고 타일렀다고 한다. “서울의료원에 다니는 걸 아는 어떤 엄마들이 우리 아이들이랑 놀지 말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서 남편이 틈만 나면 ‘친구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세뇌를 시키고 있다네요.” 속상할 법도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더 밝고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 집에 못 들어간 지 이제 다섯 시간 됐어요.” 김경진 간호사(29)가 재치있는 발언을 하자 상황실에서 웃음보가 터졌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언니와 함께 살고 있는 김 간호사는 알고 보면 속 깊은 딸이다. 그는 “환자를 돌보는 일이 제 일이기도 하고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따로 말씀을 안 드렸다”며 집에 알리지 않고 묵묵히 지지해주고 있는 언니는 든든한 지원군이라고 했다. “처음엔 농담 반으로 가까이 오지 말라고 했던 언니가 전담병원 지정 뒤 저보다 더 의연해졌어요. 숙소에서 지내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응원을 해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서울의료원은 간호사들의 임시 거처를 더 마련해주고 싶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 고민이 깊다. 여러 개의 숙소를 한꺼번에 구하는 것도 여의치 않을뿐더러 월세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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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2병동 간호사들이 상황실에서 환자들의 빠른 쾌유를 빌며 화이팅을 하고 있다. (사진=양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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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자 나오면 안돼’ 퇴근 후에도 외출 삼가

간호사들은 업무가 끝난 뒤에는 가급적 집이나 숙소에서 나오지 않는다. 환자를 돌보는 입장인 데다가 간호사 중 감염자가 나오면 병원 전체를 격리해야 하는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심정옥 파트장은 “종일 고된 업무를 하다 보니 8시간 업무를 넘기지 말고 될 수 있으면 빨리 퇴근하라고 한다”면서 “퇴근 후에는 환자와 지역사회, 동료들을 위해서 외출을 삼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들 빨리 코로나19 사태가 수습돼 햇볕을 쬐며 산책을 나가고 싶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매일 전쟁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병동을 지키는 간호사들은 서로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다. 간호사들은 기자와 인터뷰 중에도 음압병실에 다녀온 동료가 복귀할 때마다 앉아 있던 자리를 양보하거나 “고생했다”고 격려하며 서로를 다독였다.

신 파트장은 “모든 간호사들이 음압병실을 자원해서 당번까지 정할 정도로 적극적이다”며 “환자들이 늘어나면서 많이 두려워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밝은 모습으로 서로 의지하며 현장을 지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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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층에 마련된 코로나19 전담병동 통합상황실에서 의료진이 업무 인수 인계를 하고 있다.(사진=양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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