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편지… "봉, 조금만 쉬고 돌아와"
"‘기생충’ HBO 드라마, 5~6편 TV 시리즈로 만들 계획"
"한국 영화계, 상업·독립영화 양극화 안타까워"
"1년간의 오스카 캠페인은 우리 팀이 코피 흘리며 열정으로 뛴 게릴라전이었다." (봉준호)
"세계를 돌며 난 작아졌고, 타인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았다. 위대한 예술가를 통해 많은 걸 느꼈다." (송강호)
‘아카데미 4관왕’ 기록을 쓰고 금의환향한 영화 ‘기생충’ 주역들이 아카데미 시상식 뒷얘기와 소감을 전했다.
19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영화 '기생충'의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기념 기자회견을 마친 기생충팀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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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한국 영화 최초 아카데미 4관왕을 달성한 영화 ‘기생충’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에는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배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박소담, 이정은, 장혜진, 박명훈,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한진원 작가, 이하준 미술감독, 양진모 편집감독 등이 참석했다.
‘기생충’은 지난 1년여간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총 174개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지난해 한국 영화 최초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데 이어, 지난 9일(현지 시각)에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 영예상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했다. 비영어권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건 ‘기생충’이 최초로,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영화사에 새 역사를 썼다.
이번 기자회견은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공식 석상으로 주목을 받았다. 기자회견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250여 개 매체의 500여 명 국내외 취재진이 몰려 뜨거운 인기를 실감케 했다.
19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영화 '기생충'의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수상 기념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지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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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코세이지 감독한테 편지받아… 조금만 쉬고 돌아오라 해"
‘기생충’ 팀은 이 자리에서 아카데미 4관왕 쾌거에 대한 소감과 지난 1년여간의 성과, 아카데미 캠페인 등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팀원들은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였다.
봉 감독은 "여기서 제작발표회를 한 지가 1년이 됐다. 그만큼 영화가 긴 생명력을 가지고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마침내 여기 다시 오게 돼서 기쁘다"고 말문을 뗐다. 그는 "오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에게 편지를 받았다. 개인적으로 보낸 거라 공개할 순 없지만 ‘그동안 수고했고, 좀 쉬어라. 대신 조금만 쉬어라. 다들 차기작을 기다린다’고 써줬다. 감사하고 기뻤다"고 했다. 앞서 봉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스코세이지 감독을 수상 소감에서 언급하며 "존경한다"고 밝혔다.
봉 감독은 이어 "2017년 ‘옥자’를 찍고 번아웃 증후군을 앓았는데 없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기생충’을 찍었다"며 "촬영 기간보다 오스카 캠페인이 더 길었지만 행복하게 마무리해 기쁘다. 좀 쉬어볼까도 했지만, 스코세이지 감독님이 쉬지 말라고 해서 일을 해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영화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 송강호가 19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 지난해 시상식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전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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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택’ 역을 맡은 배우 송강호는 "봉 감독과 지난해 8월부터 6개월 정도 영광된 시간을 보냈다"며 "좋은 성과를 거뒀고, 전 세계 관객에 뛰어난 한국 영화를 선보이고 돌아와 기쁘다"고 말했다.
곽 대표는 "처음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해 무려 작품상까지 받아오게 됐는데, 작품상은 개인보다 이 작품에 참여한 모든 분들에게 영광, 기쁨, 좋은 경력이 되는 상이라 더 기뻤다"고 했다.
아카데미 시상식 캠페인에 관한 후일담도 털어놨다. 봉 감독은 "북미 배급사 네온은 설립된 지 얼마 안 된 중소 배급사여서, 우리가 처한 상황은 마치 ‘게릴라전’ 같았다"며 "거대 스튜디오나 넷플릭스 등에 비하면 훨씬 못 미치는 예산을 갖고 열정으로 뛰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인터뷰만 600개 이상, 관객과의 대화도 100회 이상 했다"며 "경쟁작들은 LA 시내 광고판, 신문 전면광고 등 물량 공세를 펼쳤지만, 우리는 CJ, 바른손, 배우들이 팀워크로 똘똘 뭉쳐 물량의 열세를 커버했다"고 했다.
송강호는 "6개월간 예술가들과 함께 호흡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은 내가 아니라 타인들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며 "우리 작품을 통해 세계 영화인과 어떻게 호흡하고, 소통과 공감을 할 수 있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고 했다.
아울러 봉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을 ‘로컬(지역영화제)’이라고 칭한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밝혔다. 그는 "‘로컬’은 영화제 성격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아카데미는 미국 중심 아니겠냐고 생각해 나온 단어일 뿐이었다. 미국 젊은이들이 트위터에 많이 올렸다고 하더라. 전략을 갖고 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 "‘우리’의 문제 다뤄 많은 공감 받은 듯"
‘기생충’ 팀은 영화가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은 요인으로 ‘공감할 만한 스토리’를 꼽았다. 봉 감독은 "‘괴물’과 ‘설국열차’는 SF적 요소가 많은데, 이번 영화는 동시대 이야기"라며 "배우들이 실감 나게 연기를 했고, 현실에 기반한 분위기로 폭발력을 가지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가) 빈부격차 등 현대사회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씁쓸한 면이 있다"며 "이 부분을 관객들이 불편해하고 싫어할 수 있지만, 그것이 두려워 달콤한 장식으로 영화를 끌고 가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시대를 솔직하게 그리는 것이 대중적인 측면에서 위험해 보일 수 있어도 이 영화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문광’ 역의 배우 이정은은 "동시대적 문제를 재밌고 심도있게 표현했다. 선과 악은 없는데, 서로에게 가해자, 피해자가 되는 것이 우리들의 인간 군상과 너무 흡사하다"고 거들었다.
봉 감독과 함께 ‘기생충’ 각본을 집필한 한진원 작가는 "‘기생충’에는 선과 악이 이분법적인 대립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모두에게 연민이 갈 수 있다는 점이 색다른 즐거움이라고 본다"고 했다.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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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 영화 현실 지적… "신인 감독에 충분한 기회 줘야"
봉 감독은 한국 영화 산업의 현실과 숙제에 대해서도 소신을 밝혔다. 신인 감독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봉 감독은 "요즘 신인 감독이 ‘플란다스의 개’, ‘기생충’과 한 글자도 다르지 않은 시나리오를 썼을 때 과연 투자받을 수 있을까. 1999년 데뷔 이후 20여년 간 한국 영화계가 눈부신 발전을 이뤘지만, 동시에 젊은 감독들이 모험적 시도를 하기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독립영화와 상업 영화가 평행선을 이루는 부분이 안타깝다. 데뷔 초 독립영화와 상업 영화 간에 상호 침투와 충돌이 있었고, 그런 활력을 되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된다"고 말했다. 이어 80~90년대 인기를 끌었던 홍콩 영화의 쇠락을 예로 들어 "한국 산업이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고 더 도전적인 영화를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생충, 영화 자체로 기억되길"
봉 감독은 미국 HBO에서 제작되는 드라마 ‘기생충’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봉 감독이 드라마 프로듀서로, ‘빅쇼트’ ‘바이스’ 등을 연출한 아담 맥케이 감독이 작가로 참여한다.
봉 감독은 "영화의 주제 의식과 빈부격차에 대한 이야기를 블랙코미디와 범죄 드라마 형식으로 깊게 파고들어 5~6편의 에피소드로 완성도 높은 TV시리즈를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할리우드 배우 마크 러팔로와 틸다 스윈튼의 캐스팅설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사안은 아니다. 현재 이야기의 방향과 구조를 논의하는 단계"라고 일축했다.
영화 '기생충'의 흑백판 개봉을 앞두고 봉준호 감독이 직접 고른 '디렉터스 초이스 미공개 스틸컷. /CJ엔터테인먼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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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개봉을 앞둔 ‘기생충’ 흑백판에 대해서는 "거창한 의도가 있다기 보다는 고전 영화나 옛 클래식 영화들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며 "알록달록한 색이 사라지면 배우들의 눈빛에 집중하는 측면이 있어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기생충’ 주역들의 차기작, 추후 계획에 대해서도 관심이 뜨거웠다. 봉 감독은 "평소 하던 대로 준비하고 있다"며 "‘기생충’ 역시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찍었다. 예기치 못한 성과를 얻었지만, 평소대로 완성도 있는 영화를 만들어보자 했다. 그 기조가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할리우드 러브콜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이에 송강호는 "할리우드가 아니라 국내에서라도 일을 좀 했으면 좋겠다. 마지막 촬영이 지난해 1월인데 13개월째 일이 없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연교’ 역의 조여정은 "아직 한국말로 하는 연기도 어렵다. 할리우드 진출은 고민을 많이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봉 감독은 "칸영화제부터 오스카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건과 이벤트가 있었고, 이는 큰 경사"라며 "영화사적 사건처럼 기억될 수밖에 없지만,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 스태프가 장인 정신으로 만들어낸 장면, 거기에 들어가 있는 (저의) 고민 등 영화 자체가 기억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선목 기자(letswin@chosunbiz.com);최지희 기자(h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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