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기민 기자] 위탁기업의 기술유용 입증책임 등이 담긴 상생협력법 개정안으로 인해 위탁거래 축소로 이어져 국내 중소기업에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경제연구원과 중견기업연합회는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에 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컨퍼런스센터에서 ‘상생협력법 개정안,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세미나를 열고 이같이 주장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개회사에서 “혁신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출현하면 기업들은 자유롭게 그 기업과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장경제의 기본원리”라며 “개정안은 기술유용 분쟁 우려로 이러한 혁신기업과의 거래관계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4차 산업혁명을 저해하는 법안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회에 계류중인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는 위탁기업이 기존 수탁기업 생산물품과 유사한 물품을 자체제조하거나 제 3자에게 위탁할 경우나 위·수탁 관계가 종료됐음에도 불구하고 수탁회사 물품을 위탁회사가 시장에서 계속 거래하면 위탁기업의 기술유용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사실이 아니라는 입증책임은 위탁기업이 부담하게 된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가 ‘대·중소기업상생협력법 개정안의 문제점과 대안’을 주제로,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가 ‘상생협력법개정안상 입증책임 전환의 문제점’을 주제로 각각 기조발제를 했다. 이어 최 교수와 전 교수를 비롯한 양준모 연세대 교수,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전우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강영기 고려대 금융법센터 교수가 종합토론을 진행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서서 “상생협력법이 개정되면 국내 대기업들은 기술유용분쟁 등의 우려로 거래처를 오히려 해외업체로 변경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정부가 추진하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 방침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일본 수출규제 대응에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개정안은 중기부 처벌권한 강화 등 규제일변도 내용이어서 ‘대·중소기업 간 자율적 협력관계 도모’라는 상생협력법 입법취지도 훼손한다”면서 “이미 공정위와 중기부는 거래 당사자 간 계약, 사업활동, 대금지급 단계에서 중복조사가 빈번한데 개정이 되면 중기부 처벌권한 강화로 양 기관 간의 중복처벌은 물론 상이한 처벌도 가능하게 되어 그렇지 않아도 힘든 기업에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기술유용 입증책임을 위탁대기업에 일방적으로 전환하는 것은 입증책임의 일반 법리에 맞지 않다”며 “기술자료 개념이 모호하여 명확성 원칙에도 위배되고, 하도급법 등 타법과도 충돌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위탁기업에 대한 입증책임 전환에 대해 전 교수는 “공법 영역에서 입증책임을 민간에 전가하는 경우 특정대상에 대한 마녀사냥이 가능하므로, 이러한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범죄행위 증거를 국가기관이 입증해야 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배할 경우 위헌논란이 초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개정안이 하도급법 등 타법과 충돌할 우려가 있다고도 지적했다. 전 교수는 “공정한 하도급거래질서 확립에 목적을 둔 하도급법에서도 입증책임을 전환하지 않고 있다”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호협력이 목적인 상생협력법에서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것은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종합토론에서도 상생협력법 개정안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조 명예교수는 기술유용 입증책임을 위탁기업에 부담시키는 것에 대해 “‘맞은 사람이 아닌 때린 사람이 때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그 이어 “개정안은 ‘강자 대 약자’라는 2분법적 논리가 전형적으로 적용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법안 시행 시 위탁기업 자체생산 확대 등으로 수탁기업의 사업기회가 원천적으로 박탈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 교수도 이어 “중기부 직접처벌 강화, 조사시효 부재 등은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 제한이 될 것”이라면서 “과잉규제를 자제해야 일자리 확대와 기업활력 제고가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 교수도 상생법 개정안에 대해 “계약자유 내용 중 상대방 선택의 자유를 사실상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위탁기업의 권리 및 이익을 제약하는 내용들이 상생법 입법목적에 적합한지 등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유환익 한경연 혁신성장실장은 “세미나에 참석한 발제자 및 토론자 모두가 상생법 개정안이 법리적·경제적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음을 지적했다”며 “상생법 개정안은 재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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