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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은미희의동행] 트로트와 동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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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요즘에는 동요 듣기가 어렵다.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를 듣노라면 어수선한 마음이 가라앉곤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는 윤극영 선생이 지으신 ‘반달’이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루 한 그루…’로 시작하는 이 동요는 당시 나라를 잃은 국민들에게 위안을 줌과 동시에 나라를 잊지 말라는 암묵적인 주문을 넣기도 했다. 반달이 지어진 해가 1924년이니 올해로 꼭 97년이 되었다. 한 세기가 다 되도록 반달은 빛을 잃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하얀 쪽배’라는 곡명으로 중국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으니 한편으로는 한류의 원조 격인 셈이다. 윤극영 선생은 반달 외에도 우리에게 많은 동요를 남기셨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제께고요, 라는 ‘설날’ 역시 선생의 작품이다. 동요는 이렇듯 시대를 넘어 전승되면서 한 민족의 정서를 대변한다. 그러니 어찌 동요가 아이들만의 노래일까. ‘고향 땅’이나 ‘과꽃’이나 ‘섬집아기’처럼 세대를 아우르는 좋은 동요가 우리 주변에는 얼마든지 많다. 헌데 언제부턴가 그 동요의 자리를 트로트가 대신하고 있다. 레트로의 열풍과 함께 다시 찾아온 트로트의 반격에 아이들까지 가세하면서 동요가 더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정말 요즘 트로트 신동들이 대세다. 일찌감치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능력을 찾아내 계발하고 그 능력을 진작시키는 일이 어찌 나쁜 일이겠는가마는, 그래도 마음 한구석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동요와는 달리 인생의 애환과 희망을 노래한 것이 트로트이다. 신산하고 지난한 인생살이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회한이나 상처를 나름의 곡조로 만든 것이 트로트인 것이다. 그러니 트로트는 인생경험이 많은 성인이 불러야 제격이고 제맛이다. 굴곡진 삶의 가사가 들어 있는 노래들을 아직 아동기도 지나지 않은 아이들이 구성진 바이브레이션까지 넣어가며 부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뉴슈가를 맛본 기분이 든다. 아이들의 재롱에 그 감흥과 정서를 제대로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삶의 아픔이 없겠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성인들이 감내해야 할 삶의 무게는 아니지 않겠는가? 어쨌든 그 아이들이 성인의 흉내를 내면서 흥감스럽게 부르는 것을 볼 때면 대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딘지 조금은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하긴 그 트로트 신동들뿐일까. 연예인을 동경하면서 트로트나 가요를 부르는 아이들이 많다. 기실 인생에는 시기마다 해야 할 놀이와 공부가 다르다. 그 시기에 맞는 놀이들을 통해 아이들은 성장해 나간다. 아동기나 유아기 때 들려주고 부모가 함께 부르는 동요는 아이들의 정서발달은 물론 언어 발달과 뇌의 발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아이들은 동요를 통해 세상과의 관계를 생각하고, 꿈을 키워나가며, 정서를 공유하며 공감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러니 동요, 더 많이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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