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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매경포럼] 추락하는 오프라인 유통, 날개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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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대형마트에 갔던 게 언제였던가' 기억을 되짚어봐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마트에서 일주일치 장을 봐서 냉장고를 채우던 일상은 이제 과거의 일이 됐다. 변화에 둔감한 나도 신선식품은 새벽배송으로, 일반 상품은 최저 가격 보장 인터넷 쇼핑으로 해결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오프라인 유통이 쇠퇴하고 있다는 얘기는 계속 흘러나왔다. 그러나 '상점의 몰락'이 시작됐다고 할 정도로 추락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국내 오프라인 유통산업에 요란한 경고음이 울린 것은 지난해 2분기 이마트가 창사 26년 만에 첫 적자를 내면서다. 그러더니 최대 유통기업인 롯데쇼핑이 지난 13일 고강도 구조조정 계획을 내놨다. 백화점, 마트, 슈퍼 등 700여 개 점포 중 수익성이 떨어지는 200여 개를 정리하겠다는 충격적인 선언을 했다. 롯데쇼핑은 마트의 부진 탓에 지난해 영업이익이 4279억원으로 전년보다 28.3% 감소했고, 순손실은 8536억원에 달했다. 온라인 공세와 사드, 노(NO)재팬 등 악재로 비틀거리던 '유통 공룡'은 코로나19 공습으로 더 버티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마트 역시 지난해 전년보다 67.4% 줄어든 1507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일본의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했던 '삐에로쑈핑'도 1년 만에 접기로 했다.

전통 유통업의 몰락은 비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126년 전통의 백화점 체인인 '시어스'가 파산했고, 최대 장난감 업체 '토이저러스'와 의류브랜드 '포에버21'이 무너졌다. 162년 역사의 백화점 체인 '메이시스'도 향후 3년간 점포 20%를 폐점하겠다고 발표했다. 유통업 줄파산에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소매업 종말(retail apocalypse)'을 예언했다.

한국은 지난해 온라인 매출 비중이 41%에 달할 정도로 유통의 무게중심이 온라인으로 넘어가는 속도가 빠르다. 오프라인 유통 추락에 우려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일자리 감소, 상가 부동산 침체 등 경제적 충격파 때문이다.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 실직 태풍은 불가피하다.

한때 잘나갔던 유통업은 왜 이 지경이 됐을까. 1993년 등장한 대형마트 1호 이마트는 유통 혁신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상품, 편리한 배송을 앞세운 온라인 유통업체의 혁신으로 대형마트는 위기에 처했다. 쿠팡, 마켓컬리 등 후발주자가 로켓배송, 새벽배송 등 서비스를 선보일 때 이를 무시하고 혁신을 미룬 결과다. 강희태 롯데쇼핑 부회장도 "급변하는 오프라인 유통 환경에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골목상권 보호를 명분으로 2012년 단행된 신규 출점, 월 2회 의무휴업 규제 등도 대형마트의 경쟁력을 갉아먹은 주범이다. 대형마트가 전통시장을 위협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규제가 수익성이 악화된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누가 봐도 불합리하다. 복합쇼핑몰에도 의무휴업을 강제하자는 시대착오적 법안이 국회에 올라와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벼랑 끝에 선 유통업체들은 돌파구 마련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롯데쇼핑은 '유통회사'를 버리고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서비스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고객의 소비보다 시간을 빼앗겠다"며 칼을 갈고 있다.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동원했던 가격 파괴, 자체브랜드(PB) 상품 등 오프라인에만 기댄 승부수는 추락하는 유통기업의 날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프라인의 강점을 살리되 온라인이라는 대세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 살길을 찾으려면 아마존의 습격에도 굳건한 월마트를 스터디해 볼 만하다. 월마트는 온·오프라인을 연계하는 옴니채널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구매하고 가까운 오프라인 매장에서 가져가는 '픽업 서비스'로 매년 매출이 성장하고 있다. '상점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언에 맞설 수 있는 무기는 혁신밖에 없다. 국내 유통공룡들은 어떤 생존 전략을 준비하고 있나.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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