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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김학균의 금융의 속살]IT공룡 기업들에 대한 ‘공적 통제’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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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증시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기업은 지난해 12월에 상장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에너지기업 아람코다. 지난 12일 현재 시가총액은 1조7000억달러이다. 화석 연료시대의 총아였던 아람코는 엄청난 공룡기업이지만, 앞으로는 성장보다 쇠락의 길이 더 넓어 보인다. 신규 상장 이후 주가 흐름도 신통치 못하다.

경향신문

아람코 뒤에는 줄줄이 미국의 기술주들이 서 있다. 시가총액 1조4000억달러인 애플이 2위, 마이크로소프트가 간발의 차이로 3위, 4·5위인 아마존과 구글의 시가총액도 1조달러 위에 올라섰다. 애플의 시가총액만으로도 한국 코스피시장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을 넘어섰고, 미국 4대 기술주들의 시가총액을 합치면 중국 상하이증시와 일본 도쿄증시보다 크다. 세계 증시는 미국 기술주들이 접수한 것이다.

이들의 지배력은 주식시장을 넘어 경제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 영향력이 너무 크다 보니 미국 연방거래위원회가 이들 기업에 대한 반독점 조사에 나섰다. 주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뜀박질을 하고 있지만 IT 공룡 기업에 대한 공적통제의 움직임은 뚜렷하게 가시화되고 있다.

경쟁이 가져오는 항구적 긴장은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지켜온 동력이기에 독과점은 체제의 적이다. 그러나 독과점의 폐해를 구체적으로 계측하는 일은 쉽지 않다. 특정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진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글로벌 유통업계의 공룡이 됐지만 아마존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피해를 본 게 있을까. 오히려 더 싸고, 편리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반독점법의 정신은 소비자들의 피해가 당장 가시적으로 나타나지는 않더라도 높은 시장 점유율을 바탕으로 가격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생기는 것을 막는 데 있다. 경쟁의 효율성은 모든 시장 참여자들이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을 수용(Price Taker)한다는 전제하에서 성립한다. 가격 결정권자(Price Maker)가 존재하는 시장은 이미 경쟁시장이 아니다. 반독점법은 당장의 소비자 피해보다 가격 결정권자의 등장으로 장기적으로 소비자들의 후생이 침해받을 수 있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 검색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구글이 일부 고급검색 기능을 유료화하게 되면 상당수 소비자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 분야는 참여자들의 수가 검색의 질을 결정한다. 즉 네트워크 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에 구글의 과금을 피해 다른 검색 엔진을 사용하게 되면 검색의 만족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구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내가 구글에서 검색함으로써 검색 엔진의 퀄리티를 높였는데, 그 때문에 더 벗어나기 어려워진다는 역설이 존재하는 셈이다. 이미 유튜브는 ‘유튜브 프리미엄’을 통해 과금을 시작하고 있다.

한편 IT 공룡 기업들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기보다 매우 파괴적인 형태로 기존 공급질서를 붕괴시키고 있다는 점도 규제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아마존은 미국의 오프라인 유통 업체들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한국의 유통업도 마찬가지이다. 이마트가 작년에 사상 최초의 분기 적자를 기록했고, 지난주 롯데쇼핑은 부진한 실적과 함께 매우 공격적인 오프라인 점포 축소 계획을 발표했다.

경제의 총량적인 성장이 둔화되는 국면에서 정책은 약자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 한국의 유통 대기업들이 약자는 아니지만, 이를 자영업으로 바꾸면 문제는 달라진다. ‘타다’ 논란, ‘배달앱’ 논란도 마찬가지이다.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공정을 가장한 포퓰리즘이라 비판하기도 하지만, 원래 포퓰리즘은 경제가 어려울 때 고개를 드는 법이다. 다양한 이견이 나올 수 있는 이슈지만, 이 모든 논란 속에서도 플랫폼을 장악하고 있는 기업의 주주들만 부자가 되고 있는 현상이 지속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김학균 |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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