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 랜딩]온탕 냉탕을 오가는 물가 관련 보도가 불안과 혼란만 부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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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4일 발표한 1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그동안 0% 대에 머물렀던 소비자물가가 1.5%의 상승률을 기록해 거의 1년여 만에 1% 대를 회복했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배춧값, 기름값, 택시비 등 생활물가가 확 뛰어서 서민 부담 크게 늘어났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지만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한국 경제가 디플레이션 초입이라느니, 디플레이션의 첫 글자인 ‘D’를 빌어서 ‘D의 공포’가 엄습한다는 우려가 미디어를 가득 메웠다. 심지어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장기 불황을 경험한 일본 경제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주장도 넘쳐났다.
실제로 지난해 소비자물가지수는 1월부터 0.8%로 내려앉았고 0%대를 지속하면서 9월에는 –0.4%로 물가 통계 사상 처음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래서 한국 경제도 일본처럼 디플레이션에 빠져든 것 아니냐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만 했다.
더욱이 지난해 미중 무역갈등으로 초래된 국내외 경기침체로 한국 경제의 1분기 경제성장률이 –0.4%로 고꾸라졌고, 2분기 1.0%, 3분기 0.4% 등으로 부진한 모습을 나타내자 ‘D의 공포’가 현실화되는 듯 한 불안감이 크게 고조됐다.
하지만 디플레이션은 단지 소비자물가가 0%대, 혹은 단기적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고 해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디플레이션이란 재화와 용역에 있어서 적어도 1~2년 이상 지속적인 물가의 하락을 의미하며, 이는 근본적으로 수요 부족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생산 감소, 고용 침체, 가계 소득의 감소로 이어져 다시 소비를 하락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함으로써 결국 국가 경제의 장기적인 침체와 불황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물가 급등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보다 오히려 디플레이션에 빠지는 것이 더 힘든 일이라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디플레이션 사례는 1930년대 경제대공황이나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딱 2가지를 들 수 있는데 이를 보면 한 국가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진다는 것이 얼마나 드물고 또 특수한 일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물가와 관련된 각종 언론 보도를 검색해보면 ‘디플레이션’이라는 용어가 이러한 배경이나 경제상식과는 전혀 상관없이 너무 헤프다 싶을 정도로 빈번하게 사용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심지어 일부 경제학자나 경제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까지 디플레이션이라는 용어를 과감하게 사용하면서 가뜩이나 불안한 경제 심리를 자극했다.
하지만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질 것 같았던 한국 경제가 지난 4분기 전기 대비 1.2%의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반등했고,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나타냈던 OECD 경기선행지수와 통계청의 경기선행지수 순환변동치도 모두 9월 이후 상승세로 반등하면서 경기 반등의 기대감이 높아졌다.
그리고 올해 1월 소비자물가지수가 1.5%를 기록하자 ‘D의 공포’는 사라지고 이젠 물가가 급등해서 서민 경제가 힘들어 질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으니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
하지만 과연 한국 경제는 디플레이션을 말할 정도로 침체되고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물가 하락에 빠져들었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만 ‘NO’에 가깝다.
물론 지난해 국내 소비자물가가 0%대로 낮았던 것은 사실이며 국내 수요가 다소 부진했던 측면도 일부 지적할 수 있다. 미약한 고용 증가세와 불안한 대내외 경기 상황 등에 따른 수요 부족이 전반적인 물가 상승 압력을 제약하는 요인이라고 해석할 여지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경제가 디플레이션 위기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과장된 이야기다. 단적으로 지난해 12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디플레이션 우려를 제기하는 기자들에게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과도하게 제기된 측면이 있었고, 어느 정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일축했다.
한은도 물가안정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성장세 둔화와 석유류 및 농축수산물 가격 하락, 교육·의료 관련 복지정책 강화 등이 물가를 낮추는 요소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한은의 지적대로 지난해 저물가는 농축수산물과 국제유가 하락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특히 2018년 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인해 폭등했던 농산물 가격이 지난해 안정화되면서 전년 동월 대비 물가상승률을 끌어내리는 역할을 했다.
또한 급등했던 석유류 가격이 지난해 미중 무역갈등으로 하락세를 나타냈고, 이전의 석유가격 급등에 따른 서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우려한 정부의 유류세 감면 조치가 이어지면서 전반적인 석유류 관련 물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참고 기사: 생활물가 오른다고 난리였는데 이젠 'D 공포' 걱정)
1% 대로 회복된 새해 소비자물가와 관련한 뉴스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 경제가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는 건지 아님 인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는 건지 국민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정말 국민들의 경제심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디플레이션 혹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작은 수치 변동에도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과장된 주장들이 아닐까.
최성근 이코노미스트 skchoi7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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