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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善惡 그리고 신과 구원… 의미 되묻는 종교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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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베스트셀러]◇사람의 아들/이문열 지음/민음사(절판)

동아일보

신동해 웅진씽크빅 단행본사업본부 편집주간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갓 당선된 서른두 살의 문학도가 계간문예지 ‘세계의 문학’에 원고지 400장짜리 중편소설을 발표한다. ‘사람의 아들’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추리소설 같기도 하고 종교소설 같기도 한, 이 문제작은 곧바로 저자에게 ‘오늘의 작가상’을 안기며 기린아의 등장을 알린다. 8년 뒤 1300장의 장편소설로 개작되면서 수많은 젊은이에게 선과 악, 신과 구원의 의미를 물었던, 이문열이라는 걸출한 작가의 시작이었다.

사람의 아들은 당시 한국문학사의 맥락에서는 좀 이례적인 작품이다. 같은 시기 김성동의 ‘만다라’가 불교소설로 큰 사랑을 받았고 곧이어 등장한 조성기의 ‘라하트 하헤렙’, 1990년대 고은의 ‘화엄경’, 이외수의 ‘벽오금학도’ 등으로 이어지는 종교소설의 계보가 없진 않지만 이 책만큼이나 종교사 전체를 집요하게 탐구한 책도, 200만 부 넘게 팔리며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작품도 없다.

동아일보

이 액자소설의 바깥 이야기는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형사물이지만, 속 이야기는 아하스 페르츠라는 한 청년이 기독교 신과 구원의 의미를 찾는 편력기를 담고 있다. 바깥 이야기의 주인공인 민요섭과 조동팔은 기독교의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고 하면서도 믿음을 조건으로만 구원을 약속하는 이율배반을 따져들면서 더 인간다운 신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쓴 소설의 주인공이 아하스 페르츠다(성경에서 말하는 사탄으로 묘사된다). 그는 광야에서 시련 중인 예수에게 다가가 “독선의 말씀과 공허한 천국의 약속을 거두어달라”고 하면서 “고통스러운 조건 없이 우리에게 내릴 참행복은 없는가”라고 묻는다.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인간의 방식대로 따르는 게 가장 나을 것”이라는 것이 액자 안과 밖의 주인공들이 다다른 결론이다.

작가는 이후 ‘황제를 위하여’ ‘젊은 날의 초상’ ‘금시조’ ‘영웅시대’ ‘변경’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시인’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기는 한편 ‘삼국지’를 평역하면서 명예와 부를 모두 거머쥔 가장 성공한 한국 작가가 됐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작품을 이야기할 수 있는 폭과 깊이의 작가가 드물다는 점에서 최근의 정치적인 행보와는 별개로 그 위상은 우뚝할 것이다. 그래도 내게 이문열은 여전히 ‘사람의 아들’의 작가다.

종교학에 한창 빠져 있던 대학 1학년 때 읽은 후 25년 만에 다시 읽어보니 그때는 잘 이해할 수 없었던 민요섭의 막판 회심(回心)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수백 권의 독서와 몇 만 장의 메모가 필요했을 저자의 집필 과정도 머릿속에 그려진다. 당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 대심문관 부분과 함께 읽으면서 무척 빠져들었는데 지금 청년 독자에게도 권하고 싶다. ‘데미안’이 그렇듯 좋은 청년문학을 제때에 읽는다는 것은 인생의 큰 축복이니 말이다.

신동해 웅진씽크빅 단행본사업본부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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