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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은 사라질 뿐 ‘우주망원경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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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임무 종료 ‘스피처우주망원경’ 등 수명은 극과 극

스피처, 냉각재 부족·원거리 통제 불능 탓 16년 만에 전원 차단

허블, 수시로 보수 장기 복무…퇴역 ‘케플러’ 방대한 유산 남겨

경향신문

오는 30일 기능 정지에 들어가는 스피처우주망원경의 상상도. 2003년 발사돼 적외선 관측을 수행해 왔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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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선 이례적인 행사가 열렸다. 오는 30일 임무가 종료되는 어느 우주망원경의 ‘지난 인생’을 짚어보는 자리였다. 형식은 영락없는 텔레비전 토크쇼였다. 스튜디오에 등장한 진행자가 해당 우주망원경을 운영했던 선후배 과학자들을 불러 이 망원경이 해낸 임무와 성과를 찬찬히 짚었다.

갑작스럽게 은퇴하는 톱스타 같은 대접을 받은 주인공은 바로 ‘스피처우주망원경’이었다. 2003년 8월25일 발사돼 16년간 우주에 카메라를 정조준했던 ‘노병’을 위한 명예로운 은퇴식은 NASA가 운영하는 인터넷 방송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스피처우주망원경은 가시광선이 아닌 적외선을 감지한다. 약한 열을 내는 별을 찾는 데 안성맞춤이다. 지구에서 39광년 떨어진 별인 ‘트라피스트-1’에 7개 행성이 딸렸다는 점을 규명했는데, 사실 스피처망원경은 외계 행성을 찾도록 고안된 것이 아닌데도 이런 성과를 만들어냈다. 스피처망원경은 또 자신이 찍은 천체 사진 200만장을 모아 우리 은하를 360도 파노라마 사진으로 표현했다. 약한 열을 감지할 수 있는 기능은 가시광선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지구 근접 소행성’을 잡아내는 데도 활용됐다.

하지만 결국 세월 앞에 장사는 없었다. NASA에 따르면 원래 스피처망원경은 적외선 4개 파장을 볼 수 있었지만 2009년 냉각재가 바닥나면서 볼 수 있는 파장이 2개로 줄었다. 적외선, 즉 열을 감지하는 스피처망원경은 자신의 몸을 극도로 차갑게 해 관측에 방해를 받지 않아야 하는데 결정적인 문제가 생긴 것이다. 게다가 스피처망원경은 지구에서 2억5000만㎞ 떨어져 있는데, 이 거리가 점점 벌어지면서 통제가 힘들어지고 있는 점도 영구적인 전원 차단을 결정하게 된 배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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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처우주망원경이 찍은 ‘고양이 발톱 성운’. 지구에서 4200~5500광년 떨어져 있다. 적외선을 이용하기 때문에 먼지에 가려진 별들도 선명히 볼 수 있다. NAS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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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건 우주에는 스피처망원경보다 더한 ‘노병’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나이는 서른 살로 스피처보다 13살이나 많다. 웬만한 동물보다 긴 수명을 유지하고 있고, 지상의 전자제품이었다면 벌써 폐기 처분됐을 만한 기간이다. 주인공은 1990년 발사된 ‘허블우주망원경’이다.

2013년 개봉한 미국 영화 <그래비티> 도입부에서 라이언 스톤(샌드라 불럭) 박사와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 우주비행사가 수리하려고 애쓰던 소형 버스만 한 물체가 바로 허블망원경이다.

성운, 성단 등 지금까지 찍은 천체 사진만 150만장에 이를 정도로 세계 천문학의 핵심 장비이다.

NASA 홍보대사인 폴 윤 미국 엘카미노대 수학과 교수는 “허블우주망원경은 2025년까지는 유지될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내년 NASA가 발사할 최신형 장비인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우주로 올라가도 당분간 ‘투 톱’ 체제로 우주망원경 시대를 이끌 거라는 얘기다.

허블망원경이 ‘장기 복무’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과학계에선 허블이 다른 우주망원경보다 비싸 꼼꼼하게 유지·보수를 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특히 우주비행사가 직접 기술 지원을 할 수 있는 약 500㎞ 저궤도를 돌고 있다는 점을 꼽는다. 검진과 치료가 수시로 이뤄져 장수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1990년대와 2000년대 미국 우주왕복선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허블망원경 성능 개선이었다.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허블우주망원경은 5차례에 걸쳐 보수를 했다”며 “탑재된 기기를 바꾸거나 구멍 뚫린 태양전지판을 교체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허블망원경이 우주의 노병이라면 지상에는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이 있다. 이 망원경은 카리브해 연안 국가인 푸에르토리코에 있는데, 대형 접시 안테나를 갖고 있다. 안테나의 지름은 무려 300m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건설 시점인데, 바로 1963년이다. 사람으로 치면 환갑이 가까운 나이지만 엄연한 현역 장비이다. 전파는 외계의 별에서 뿜어져 나오는 중요한 정보인데, 보통의 광학망원경으로는 도저히 관측할 수가 없다. 중국에서 2016년 지름이 500m에 이르는 초대형 전파망원경을 만들면서 ‘세계 최대’ 자리는 넘겨줬지만 이런 대형 전파망원경은 여전히 흔치 않다.

이미 차가운 무덤 속으로 들어갔지만 ‘유산’을 남긴 망원경도 있다. ‘케플러우주망원경’이다. 2009년 발사된 케플러망원경의 임무는 외계 행성을 찾는 것이었다. 별 주변을 도는 행성은 별보다 너무 어두워 식별하기 힘들다는 점을 극복하기 위해 ‘통과 관측법(transit method)’이라는 방법을 썼다. 밝은 전등 앞을 파리가 지나가면 미세하지만 밝기가 떨어지는 것처럼 별 앞을 행성이 공전할 때 별빛이 살짝 어두워지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카메라를 장착했다. 케플러망원경은 2018년 10월 퇴역했지만 과학자들은 아직도 케플러망원경이 수집한 자료를 들여다보고 있다. 과학계에선 자료가 방대해 2020년대 말까지는 분석을 이어가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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