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신년기획①] 아이켄베리 프린스턴대 교수의 아메리카 퍼스트 비판
※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정책에 지금 세계는 몸살을 앓고 있다. 대선의 해인 2020년 미국의 움직임과 이에 맞서는 중국, 일본, 유럽의 대응 방향을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미국이 스스로 만든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파괴하는 무질서의 시대에 진입했다."
자유주의 국제정치학자인 존 아이켄베리 프린스턴대 교수가 지난 17일 연구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효식 워싱턴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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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아이켄베리 미국 프린스턴대 석좌교수(66·국제정치학)는 1월 17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지금 국제질서의 가장 큰 도전은 미국이며, 그래서 우리는 곤혹스럽고 불안하다"고 단언하면서 한 말이다.
새해 벽두 미국·이란 군사적 충돌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여객기가 격추돼 176명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비극에 대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있다"고 개탄했다. "쇠퇴와 혼돈의 계절이 왔지만 새로운 제도와 질서를 건설할 진정한 정치 계절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하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외교정책에 전략은 없고 오직 충동과 오바마 정부에 대한 거부뿐"이라며 "소득 불평등을 치유할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백인 중산층과 중부 주민의 비백인 이민자에 대한 증오와 분열, 공포를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중국에 대해서도 워싱턴의 보수적 강경파와는 다른 처방을 했다. "(미·소 냉전 때 같은) 봉쇄는 가능하지도, 현명하지 않다"며 "우리 자신의 정치경제 체제를 개혁하고 강화해 중국보다 더 나은 모델임을 보여주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유주의 국제정치학을 대표하는 그는 "덜 미국적이라 해도 다자주의와 자유무역, 국제기구와 국제법, 동맹·동반자 관계로 이뤄진 국제질서를 복원해야 한다"는 신념을 강조했다. 우드로우 윌슨 대통령의 국제주의 전통을 대표한다. 윌슨 대통령이 1915년 1차 세계대전의 중립을 강조해 '아메리카 퍼스트'를 처음 대선 공약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100년 이후 트럼프의 공약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이켄베리 교수는 현재 경희대 석좌교수(Eminent Scholar)이기도 하다. 다음은 주요 인터뷰 문답.
Q : 지금은 새로운 질서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혼란은 아닌가.
A : 나는 거꾸로 '무질서의 시대(age of disorder)'로 들어서고 있다고 생각한다. 분열과 해체, 부패, 대중적 반발과 민족주의적 격변, 다극 경쟁이란 무질서를 지나면 도대체 무엇이 나타날지 분명하지 않다. 당분간 이런 시기가 계속될 것이고, 확연히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를 재구성할 가능성은 있다.
2019년 6월 플로리다에서 연설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존 아이켄베리 교수는 2020년 미국 대선은 미국을 두 개의 다른 길로 인도할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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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2020년 지역·글로벌 차원의 도전 가운데 가장 큰 도전은.
A : 2020년 세계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순간은 미국 대선이다. 미국을 두 개의 다른 길로 인도할 것이다. 트럼프가 재선하면 국제 질서를 되살리는 건 아주 어려워지고 '용감한 신세계'로 들어갈 것이다. 트럼프 2기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탈퇴하거나 동아시아 안보 공약을 재고할 수도 있다. 반대로 새 대통령이 탄생해 국민 과반수 생각대로 무역과 동맹, 다자주의, 모든 국제적 약속과 제도, 동반자 관계를 재확인할 수도 있다. 이미 ‘포스트 아메리카’를 똑똑히 지켜봤기 때문에 기존 질서를 훼손하기보다 개혁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Q :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를 보면 어떤 결과가 나와도 혼란이 벌어질 것 같다
A : 수많은 혼란에도 불구하고 미국 민주주의 체제의 미덕은 권위주의, 일당독재, 종신 대통령제인 중국을 압도한다고 생각한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분열과 혼란을 다루기 위해 균형을 이루는 다양한 장치와 권력을 분할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최근 선거인단 투표와 일반 국민투표에서 승리한 정당이 달랐지만, 트럼프가 다시 선거인단만 승리해도 미국 헌법상 대통령이 된다. 반대로 민주당 후보가 선거인단 과반수를 얻는다면 트럼프도 백악관을 비울 것이다.
존 아이켄베리 프린스턴대 국제정치학 교수가 지난 17일 연구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효식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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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트럼프를 만난다면 어떤 조언을 하고 싶나.
A : 그가 강대국들이 수십년간 투자한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수수께끼다. 부동산업자라도 한 조각 땅에 투자할 때 건물을 올린 후 미래 가치를 볼 줄 알아야 하는 데 이상하다. 이것은 미국이 우방들과 70년간 해온 일이고, 국제 질서에 대한 투자다. 나는 35년간 학자로서 선입견 없이 선두 국가가 다른 나라와 연대해 힘을 정당한 목적에 행사하고, 장기적이고 계몽적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Q : 거꾸로 동맹이 미국을 이용한다고 대놓고 비판한다.
A : 미국은 세계 역사에서 동맹을 맺는 유일한 위대한 강국이다. 중국은 그렇지 않고, 세계사를 보면 다른 강대국들은 그러지 않았다. 동북아시아 입장에서 미국은 멀리 바다 건너에 있지만, 우방을 위해 기울어진 지역적 균형을 잡는 걸 도와주는 나라였다. 동북아는 미국에 좋은 일이 한국과 일본은 물론 지역 전체에 좋다는 동맹의 아주 성공적인 사례였다. 한국엔 권위주의 군사통치에서 민주주의로, 낮은 수준의 초기 개방적인 자본주의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 국가 중 하나로 성장하는 데 기본 틀도 제공했다. 그래서 이 동맹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Q : 트럼프가 힘을 얻은 건 중부 주 빈곤, 소득 격차 같은 구조적인 원인도 있지 않나.
A : 트럼프는 증상일 뿐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나도 중서부 캔자스 출신이지만 그는 문화적, 경제적 분열을 자극하고 사람들을 격정적 분노와 증오에 사로잡히게 악용했다. 이것이 미국 백인 중산층, 농촌 주와 나머지 국민 사이의 분열이다. 국민 절반이 나머지 절반에 공포심을 갖도록 하는 게 그의 유일한 정치적 생존 수단이다. 하지만 빨간 모자를 쓰고 ‘아메리카 퍼스트’란 청량음료를 사도 그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농업·제조업은 쇠락하고,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류허 중국 부총리가 1월 15일 백악관에서 미중 무역 1단계 합의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 [로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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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미·중 패권 경쟁에서 1단계 무역협정은 어떤 의미인가.
A : 휴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트럼프로선 대선 전 농산물 수출을 성사시키고 싶었다. 지지 기반인 농촌 주가 콩·옥수수 대중 수출에 의존해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초 목표보다 더 적은 것에 안주한 셈이다. 중국은 긴장을 완화하고 싶었고 지식재산권과 산업정책·보조금·투자 등 더 큰 이슈를 양보하지 않는 대신 트럼프에 국내 정치적 근거를 조금은 제공할 의사가 있었다. 대신 중국이 세계 질서와 국제 규범과 전혀 다른 경제 체제를 가진 데 따른 거대한 문제들은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채, 더 깊숙이 미해결로 남았다.
Q : 냉전처럼 미·중이 자유경제와 중국 주도 경제권으로 갈라설 가능성은.
A : 우리는 두 종류의 다른 세계관 사이에서 장기적인 투쟁을 하고 있다. 1990년대 우리 일부는 중국이 개혁하고 서구 주도 국제 질서에 통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중국은 일정 정도는 그렇게 했다. 그러나 더 깊은 차원에서 중국은 분명 개혁과 자유민주주의 없이 세계 지배국가가 될 수 있다는 도박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근대성의 다른 비전을 가진 상대와 글로벌 경쟁으로 향하고 있다. 다만 다시 세계가 강대국의 세력권, 진영으로 나뉘거나 세계적 디커플링이 미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Q : 중국이 내부 모순을 안고 세계 패권국이 오를 수 있을까.
A : 빅데이터 권위주의, 사회적 신용시스템 감시를 통해 국가와 당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을지 두고 봐야 한다. 소련은 근대성과 발전이라는 가장 높은 단계와 양립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중국 공산당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전히 성장하는 경제와 권위주의 국가를 동시에 유지한다. 그러나 중국 사회와 과학계·학계, 다른 나라들이 이를 계속 참아낼지, 결국 더 많은 대표성과 법치, 책임성을 요구할지 아직 모른다. 나는 결국 이 폐쇄적 시스템에서 정치개혁의 움직임이 나타날 것으로 본다. 홍콩·대만 문제도 그렇다. 이것은 21세기를 향한 투쟁이다.
Q : 민주주의 동맹은 중국의 패권을 저지해야 하나.
A : 워싱턴은 1990년대 우리가 중국을 WTO에 초대하는 실수를 했고, "우리가 괴물을 창조했다"는 일반적인 합의가 있다. 나는 그런 입장을 이해는 해도 완전히 수용하지 않는다. 나는 핵심 초점을 우리 자신의 시스템을 강화하는 데 두자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자본주의, 민주주의 3자 세계가 번창한다면, 불평등과 경제적 실패에 대응해 우리의 집을 개혁한다면, 우리 모델이 그들 모델보다 더 낫다는 것을 보여주고 우리 입장을 강화할 것이라고 믿는다. 중국에 대한 봉쇄는 아마도 가능하지도 않고 현명하지도 않다. 우리가 힘을 가진 위치에서 중국을 상대하려면 우리 정치경제 체제를 강화하고 개혁하는 것이 최선의 정책이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왼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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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폼페이오·에스퍼 국무·국방장관이 함께 "한국은 부양대상이 아니다"라며 방위비 분담을 압박했다.
A : 미국 지도자들이 ‘내가 정한 돈을 내면, 보호해줄게'라며 보호비를 갈취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동맹을 괴롭히는 행동으로 비치고 역효과만 낳는다. 바로 마피아가 하는 식이다. 대부분의 미국인이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한국과의 매우 강한 유대는 1억 달러, 10억 달러의 문제가 아니다. 기한 내 돈을 갚지 않으면 집으로 가겠다는 식의 실존적 위협을 해선 안 된다. 우리는 한·미동맹을 통해 동북아시아에서의 발언권과 지역 안정의 기반이라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막대한 이익을 얻는다. 민주적 가치의 공유라는 토대 없이 세계질서를 구축하려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다.
Q : 북한·이란 모두 '최대의 압박'만 보이는 데 목표가 모호하다
A : 맞다. 정권교체를 위한 건지, 억제가 목표인지 모호하고 역효과를 낳는다. 압박에 강경노선을 포기할 것이란 건 환상이며, 세계사를 잘못 읽었다. 핵 개발을 막으려면 협상을 통해 합의해야지, 강압으론 할 수가 없다. 미국이 신뢰할 수 없는 국가란 생각도 퍼졌다. 트럼프가 내일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르는데 북한이나 이란이 왜 합의를 하겠는가.
Q : 우리가 이 세계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A : 2020년을 살아가며 우리는 아침마다 이렇게 자문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10년, 20년 전엔 이런 질문이 필요 없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우리 가치를 공유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늘 중국이 이런 가치들을 공유하지 않고, 심지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 앉아 있는 몇몇 사람도 이들 가치 대신 거래와 이익을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가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프린스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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